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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고개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3. 10. 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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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고개

                              - 이 성 부 -

 

 

 

고개는 낮은 곳에서 길을 잡아 나를 이끈다
처음부터 제 머리를 치켜드는 법이 없다
내 걸음걸이 더디게 되면서부터
자꾸만 산 뒤편으로 저를 감춘다
땀방울들 하나씩 흙에 떨어질 때마다
고개는 성깔을 드러내어 된비얄을 만든다
버려야 할 것들 모두 버린 다음에라야
나도 마루에 올라 가쁜 숨 몰아쉰다

고개가 높은 곳에서 길을 잡아 나를 끌어내린다
저어 아래 저를 꿈틀거리면서 금세 사라진다
살아오고 살아갈 길이 저런 숨바꼭질을 닮았는지
아니면 큰 파도 일렁임인지 알 수 없다
편안함이란 잠시 힘을 빼고 내려가는 것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할 산 쳐다보인다
낮은 길이 좌우로 퍼질러 앉아서
자동차들도 넘나들거나 쉬어 가는 곳이 되었다

나도 이쯤에서 주저앉아 뒷사람 기다리기로 한다
아래에서 올라오거나 위에서 내려오거나
여기서는 누구나 발걸음들 멈추어 저를 돌아본다
몸과 넋이 따로 잘 노는 것 보인다
눈시울 붉히며 네거리 돌아서던 사람도
다시 찾아야 할 고향마을도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고개가 가는 대로 나는 걸어
땀방울 맑게 빛나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 십자(十字)고개 : 고개는 보통 산봉우리와 산봉우리 사이의 안부에 있기 마련이다.

이쪽에서 저 산 너머로 가기 위해서는 낮은 데서부터 올라가 고개를 넘어야 하고,

능선길로만 걷는 종주대는 산봉우리에서 내려가야 고개를 만나게 된다.

백두대간 마루금에는 이런 십자고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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