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 -
정약용(丁若鏞)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이 71세에 지은
한시이다. 6수로 이우어진 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는 자신의 노년 모습과 일상의 이야기를 읊었다. 다산은 늙어서 머리와 치아가 빠지고 눈과 귀가
어두어지는 것을 한탄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다산에게 머리카락은 애초에 군더더기였다. 치아는 다 빠지니 아플 일이 없어서 좋다고
말한다.
눈귀가 어두우니 좋은 점이 더 많다. 글도 조선시로 쓰고 바둑도 꼭 이기려고 하지 않으니 좋다. 역발상으로 노인이 되어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격식을 따지지 않고 마음이 내키는데로 살아가는 노년의 여유가 느껴진다.
결국 나이듬도 마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마음만 먹으면 십쾌사도 가능하다.
현대인들도 나이먹으며 좋은 점을
찾아보자.
첫 번째
老人一快事 /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髮鬜良獨喜 / 민둥머리가 참으로 유독 좋아라
髮也本贅疣 / 머리털은 본디 군더더기이건만
處置各殊軌 / 처치하는 데 각각 법도가 달라
無文者皆辮 / 예문 없는 자들은 땋아 늘이고
除累者多薙 / 귀찮게 여긴 자들은 깎아 버리는데
髻丱計差長 / 상투와 총각이 조금 낫기는 하나
弊端亦紛起 / 폐단이 또한 수다하게 생기었고
巃嵷副編次 / 높다랗게 어지러이 머리를 꾸미어라
雜沓笄總縰 / 쪽 짓고 비녀 꽂고 비단으로 싸도다
網巾頭之厄 / 망건은 머리의 재액이거니와
罟冠何觸訾 / 고관은 어이 그리 비난을 받는고
今髮旣全無 / 이제는 머리털이 하나도 없으니
衆瘼將焉倚 / 모든 병폐가 어디에 의탁하리오
旣無櫛沐勞 / 감고 빗질하는 수고로움이 없고
亦免衰白恥 / 백발의 부끄러움 또한 면하여라
光顱皓如瓠 / 빛나는 두개골은 박통같이 희고
員蓋應方趾 / 둥근 두상이 모난 발에 어울리는데
浩蕩北窓穴 / 널따란 북쪽 창 아래 누웠노라면
松風洒腦髓 / 솔바람 불어라 머릿골이 시원하구려
塵垢馬尾巾 / 말총으로 짠 때 묻은 망건일랑
摺疊委箱裏 / 꼭꼭 접어 상자 속에 버려두나니
平生拘曲人 / 평생을 풍습에 얽매이던 사람이
乃今爲快士 / 이제야 쾌활한 선비 되었네 그려
두 번째
老人一快事 /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齒豁抑其次 / 치아 없는 게 또한 그 다음이라
半落誠可苦 / 절반만 빠지면 참으로 고통스럽고
全空乃得意 / 완전히 없어야 마음이 편안하네
方其動搖時 / 한창 움직여 흔들릴 적에는
酸痛劇芒刺 / 가시로 찌른 듯 매우 시고 아파서
鍼灸意無靈 / 침 놓고 뜸질해도 끝내 효험은 없고
鑽鑿時出淚 / 쑤시다가는 때로 눈물이 났었는데
如今百不憂 / 이제는 걱정거리 전혀 없어
穩帖終宵睡 / 밤새도록 잠을 편안히 잔다네
但去鯁與骨 / 다만 가시와 뼈만 제거하면은
魚肉無攸忌 / 어육도 꺼릴 것 없이 잘 먹는데
不唯呑細聶 / 잘게 썬 것만 삼킬 뿐 아니라
兼能吸大胾 / 큰 고깃점도 능란히 삼키거니와
兩齶久已堅 / 위아래 잇몸 이미 굳은 지 오래라
頗能截柔膩 / 제법 고기를 부드럽게 끊을 수 있으니
不以無齒故 / 그리하여 치아가 없는 것 때문에
悄然絶所嗜 / 쓸쓸히 먹고픈 걸 끊지 않는다오
山雷乃兩動 / 다만 턱이 위아래로 크게 움직여
嗑嗑差可愧 / 씹는 모양이 약간 부끄러울 뿐일세
自今人病名 / 이제부터는 사람의 질병 이름이
不滿四百四 / 사백 네 가지가 다 안 되리니
快哉醫書中 / 유쾌하도다 의서 가운데에서
句去齒痛字 / 치통이란 글자는 빼 버려야겠네
세 번째
老人一快事 /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眼昏亦一快 / 눈 어두운 것 또한 그것이라
不復訟禮疏 / 다시는 예경 주소 따질 것 없고
不得硏易卦 / 다시는 주역 괘사 연구할 것도 없어
平生文字累 / 평생 동안 문자에 대한 거리낌을
一朝能脫灑 / 하루아침에 깨끗이 벗을 수 있네
生憎汲古板 / 급고각 판본은 가증스럽기도 해라
蠅頭刻纖芥 / 자디잔 글자를 티끌처럼 새겼는데
六卿郊外去 / 육경은 교외로 나갔거니와
再閏何時掛 / 재윤은 어느 때에 걸 것인고
嗟哉望經注 / 슬프다, 경문의 주석을 엿보건대
後人依樣畫 / 후인들은 옛사람 본만 따라서
唯知駁宋理 / 송나라 이학 반박할 줄만 알고
不恥承漢註 / 한대의 오류 답습함은 수치로 안 여기네
如今霧中花 / 이젠 안개 속의 꽃처럼 눈이 흐리니
無煩雙決眥 / 눈초리를 번거롭게 할 것 없고
是非旣兩忘 / 옳고 그름도 이미 다 잊었는지라
辨難隨亦懈 / 변난하는 일 또한 게을러졌으나
湖光與山色 / 강호의 풍광과 청산의 빛으로도
亦足充眼界 / 또한 안계를 채우기에 충분하다오
네 번째
老人一快事 /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耳聾又次之 / 귀먹은 것이 또 그 다음이로세
世聲無好音 / 세상 소리는 좋은 소리가 없고
大都皆是非 / 모두가 다 시비 다툼뿐이나니
浮讚騰雲霄 / 헛 칭찬은 하늘에까지 추어올리고
虛誣落汚池 / 헛 무함은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며
禮樂久已荒 / 예악은 황무한 지 이미 오래이어라
儇薄嗟群兒 / 아, 약고 경박한 뭇 아이들이여
譻譻螘侵蛟 / 개미가 떼지어 교룡을 침범하고
喞喞鼷穿獅 / 생쥐가 사자를 밟아 뭉개도다
不待纊塞耳 / 그러나 귀막이 솜을 달지 않고도
霹靂聲漸微 / 천둥소리조차 점점 가늘게 들리고
自餘皆寂寞 /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黃落知風吹 / 낙엽을 보고야 바람이 분 줄을 아니
蠅鳴與蚓叫 / 파리가 윙윙대거나 지렁이가 울어
亂動誰復知 / 난동을 부린들 누가 다시 알리오
兼能作家翁 / 겸하여 가장 노릇도 잘할 수 있고
塞黙成大癡 / 귀먹고 말 못해 대치가 되었으니
雖有磁石湯 / 비록 자석탕 같은 약이 있더라도
浩笑一罵醫 / 크게 웃고 의원을 한번 꾸짖으리
다섯 번째
老人一快事 /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縱筆寫狂詞 /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마구 씀일세
競病不必拘 / 경병을 굳이 구애할 것이 없고
推敲不必遲 / 퇴고도 꼭 오래 할 것이 없어라
興到卽運意 / 흥이 나면 곧 이리저리 생각하고
意到卽寫之 / 생각이 이르면 곧 써 내려 가되
我是朝鮮人 / 나는 바로 조선 사람인지라
甘作朝鮮詩 / 조선 시 짓기를 달게 여길 뿐일세
卿當用卿法 / 누구나 자기 법을 쓰는 것인데
迂哉議者誰 / 오활하다 비난할 자 그 누구리오
區區格與律 / 그 구구한 시격이며 시율을
遠人何得知 / 먼 데 사람이 어찌 알 수 있으랴
凌凌李攀龍 / 능가하기 좋아하는 이반룡은
嘲我爲東夷 / 우리를 동이라고 조롱했는데
袁尤槌雪樓 / 원굉도는 오히려 설루를 쳤으나
海內無異辭 / 천하에 아무도 다른 말이 없었네
背有挾彈子 / 등 뒤에 활을 가진 자가 있거늘
奚暇枯蟬窺 / 어느 겨를에 매미를 엿보리오
我慕山石句 / 나는 산석의 시구를 사모하노니
恐受女郞嗤 / 여랑의 비웃음을 받을까 염려로세
焉能飾悽黯 / 어찌 비통한 말을 꾸미기 위해
辛苦斷腸爲 / 고통스레 애를 끊일 수 있으랴
梨橘各殊味 / 배와 귤은 맛이 각각 다르나니
嗜好唯其宜 / 오직 자신의 기호에 맞출 뿐이라오
여섯 번째
老人一快事 /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時與賓朋奕 / 때로 손들과 바둑 두는 일인데
必求最拙手 / 반드시 가장 하수와 대국을 하고
掉頭避强敵 / 강한 상대는 기필코 피하노니
行其所無事 / 힘들지 않는 일을 하다 보면
恢恢有餘力 / 얼마든지 남은 힘이 있기 때문일세
業道求賢師 / 도를 닦자면 어진 스승을 구하고
學算就巧曆 / 산을 배우자면 교력에게 가야 하며
實事宜躋攀 / 실다운 일은 성취하는 게 타당하나
虛嬉貴閑適 / 헛놀이는 한적함을 귀히 여기거늘
何苦對勍寇 / 뭐하러 고통스레 강적을 마주하여
自取遭困阨 / 스스로 곤액을 당한단 말인가
一念射蜚鴻 / 한편으론 다른 생각을 가지어
猶然不敗績 / 오히려 상대에게 패하지 않고
恒以逸待勞 / 항상 안일로써 괴로움을 상대하니
怡然順無逆 / 순조롭기만 하고 거슬림이 없어라
頗怪世上人 / 자못 괴이해라 세상 사람들은
志趣乃乖僻 / 그 지취가 어그러지고 편벽하여
於德悅卑諛 / 덕에 있어선 낮고 아첨함을 좋아해
庸愚充上客 / 어리석은 자를 상객으로 앉히고
於戲不自量 / 놀이에 있어선 제 힘을 못 헤아려
國手思對席 / 국수와 서로 대국하기를 생각하네
聊以送炎曦 / 이것으로 소일이나 하면 그만이지
精進竟何益 / 정진한들 끝내 어디에 유익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