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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金時習) 시집 2

글모음(writings)/한시(漢詩)

by 굴재사람 2015. 11. 1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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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루탄(屋漏歎)-김시습(金時習)

새는 집을 탄식하다-김시습(金時習)

屋漏淋泠意不平(옥누림령의부평) : 집에 물 새니 마음이 불편하여
拋書偃臥壓愁城(포서언와압수성) : 책 던지고 드러누워 근심을 눌러본다
廉纖疏雨千山暝(염섬소우천산명) : 오락가락 성긴 비에 천 산이 어둑하고
料峭長風萬樹鳴(요초장풍만수명) : 쌀쌀한 긴 바람에 일만 나무 울어대는구나
志士胸襟存節義(지사흉금존절의) : 지사의 마음 속엔 절의가 있는데
壯夫氣槪立功名(장부기개립공명) : 장부의 기개는 공명을 세우려 하는구나
功名節義皆吾事(공명절의개오사) : 공명과 절의는 모두 내 일인데
得失相傾恨莫幷(득실상경한막병) : 득실이 틀어져 아룰러 하지 못함이 한스럽다

 

 

 

감시(感時)-김시습(金時習)

시절을 느끼어-김시습(金時習)

千村萬村蕎花開(천촌만촌교화개) : 천마을, 만고을 메밀꽃 피어있고
一聲兩聲鴻雁來(일성양성홍안래) : 한 소리, 두 소리 기러기 떼 날아온다
節物崢嶸人已老(절물쟁영인이노) : 철 만난 사물들 쟁영한데 사람은 늙어가고
感時騷客心悠哉(감시소객심유재) : 시절을 느낀 시인은 마음이 유장도 하여라
已聞村舍收新稌(이문촌사수신도) : 마을 집에는 이미 새 곡식 걷었다는데
復道火菑種牟來(부도화치종모래) : 화전에 보리 심고 온다고 다시 말하는구나
老子山中有生涯(노자산중유생애) : 산중의 늙은이 생계 있으니
小圃紫豆垂纍纍(소포자두수류류) : 작은 밭에 붉은 콩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十年爲客西復東(십년위객서부동) : 십년을 나그네 되어 동으로 서로 다니다가
不覺寒暑相推移(부각한서상추이) : 추위와 더위가 바뀌어 온것도 몰랐도다
如今衰病臥山丘(여금쇠병와산구) : 지금처럼 쇠하고 병들어 산 언덕에 누워
細觀一歲春復秋(세관일세춘부추) : 한 해가 봄 되고 가을 됨을 자세히 보았도다
功名世上好事耳(공명세상호사이) : 세상 공명이란 좋은 일인데
我獨無心空白頭(아독무심공백두) : 나만 홀로 무심히도 덧없이 백발로 늙었도다

壯志未磨歲月遒(장지미마세월주) : 큰 뜻 닦지 못하고 세월만 빨라
亭畔蟪蛄鳴啁啾(정반혜고명조추) : 정자 가, 쓰러라마와 땅강아지 울어대는구나

 

 

만유(漫遊)-김시습(金時習)

마음대로 놀다-김시습(金時習)

川澤遨遊慣(천택오유관) : 자연에 노는 것 버릇 되어
紅塵夢已忘(홍진몽이망) : 세상의 꿈은 이미 잊었다오
如童放學館(여동방학관) : 아이들 학관에서 방학한 듯 하고
似馬走毬場(사마주구장) : 말이 격구장을 달리는 듯 하다오
屐齒遍山麓(극치편산록) : 나막신 신고 산기슭 두루 다녀
新詩盈草堂(신시영초당) : 새로 지은 시가 초가에 가득하다
後人應笑我(후인응소아) : 후세 사람들 나를 비웃을 것이니
天地一淸狂(천지일청광) : 천지간에 한 멀쩡한 미치광이 있었다고

 

 

우의(寓意)-김시습(金時習)

뜻을 붙이다-김시습(金時習)

三十年前學豢龍(삼십년전학환룡) : 삼십 년 전, 벼슬할 일 배웠지만
三十年後看無蹤(삼십년후간무종) : 삼십 년 후, 자취마저 없어진 것 보았다
世人莫笑浪遊遨(세인막소랑유오) : 사람들이여, 쓸데없이 논다고 비웃지 말라
固余自喜多龍鍾(고여자희다룡종) : 진실로 나는 너절한 일 많음을 좋아한다오
多事不如省事好(다사부여성사호) : 일 많은 것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하고
有心何似無心悰(유심하사무심종) : 유심이 어찌 무심의 즐거움과 같겠는가
日長庭院蓬簾下(일장정원봉염하) : 해 긴 정원의 쑥대발 아래서
細讀陶詩情亦濃(세독도시정역농) : 도연명 시를 세심히 읽으니 마음이 짙어진다

 

 

병중언지1(病中言志1)-김시습(金時習)

병중에 뜻을 이야기하다-김시습(金時習)

世味多端我自如(세미다단아자여) : 세상 맛 다양하나, 난 언제나 나

是身天地一籧篨(시신천지일거저) : 천지간에 이 한 몸은 천상바라기어라

山堂日午寂無事(산당일오적무사) : 오후의 산 속 집엔 할 일도 없어

臥曝腹中千卷書(와폭복중천권서) : 누워서 뱃속 천여권 책을 말리노라

 

 

병중언지2(病中言志2)-김시습(金時習)

병중에 뜻을 이야기하다-김시습(金時習)

七尺幻軀榮辱外(칠척환구영욕외) : 일곱 척 헛된 몸, 영욕 밖에 살아

百年人世笑談中(백년인세소담중) : 백년 인간세상 담소 속에서 보낸다

但知此物非他物(단지차물비타물) : 이 물건이 다른 물건 아님만 아나니

笑殺瑞巖呼主公(소살서암호주공) : 스스로 주인이라는 서암을 웃어죽인다

 

 

등하1(燈下1)-김시습(金時習)

등잔 아래서-김시습(金時習)

燈下茶聲咽(등하다성인) : 등 아래 차 닳이는 소리
惺惺坐似株(성성좌사주) : 말갛게 앉으니 나무 그루터기 같아
是身如幻沫(시신여환말) : 이 몸은 물거품 같고
此影竟塗糊(차영경도호) : 이 그림자는 끝내 멍청하구나
夜雪敲窓冷(야설고창랭) : 밤눈이 차갑게 창문을 두드리고
山雲羃地無(산운멱지무) : 산구름은 땅을 덮어 없어지는구나
花明餘燼落(화명여신낙) : 불꽃 밝더니 남은 재 떨어지고
堗暖卷氍毹(돌난권구유) : 구둘 따뜻하여 담요를 걷어부친다

 

 

등하2(燈下2)-김시습(金時習)

등잔 아래서-김시습(金時習)

南寺僧來後(남사승래후) : 남쪽 절에서 스님 온 뒤로
東山月上初(동산월상초) : 동산의 달이 떠오르기 처럼이라
閑心多放曠(한심다방광) : 한가한 마음 자주 방탕 허술하여
靜意似籧篨(정의사거저) : 고요한 생각, 천상바라기 같아라
積雪明林薄(적설명림박) : 쌓인 눈은 나무숲 엷게 밝히고
寒風入帳疏(한풍입장소) : 차가운 바람 성글게 휘장에 분다
可庭霜桂影(가정상계영) : 뜰에 서리 맞은 계수나무 그림자
分與爾爲居(분여이위거) : 그대에게 나누어 주어 살게 하리라

 

 

희심주제(戲甚走題)-김시습(金時習)

희롱이 심해 붓을 달려 짓다-김시습(金時習)

江淹五色筆(강엄오색필) : 강엄의 오색붓
釘鉸五色毬(정교오색구) : 정교의 오색 공
千古漫悠悠(천고만유유) : 천년을 부질없이 아득하여
已往不可求(이왕부가구) : 지나간 일을 찾을 수가 없도다
眼前有生涯(안전유생애) : 눈 앞의 살아가는 일들
筆下雲煙繆(필하운연무) : 눈 아래 구름과 연기처럼 얽혀있다
詩成自有韻(시성자유운) : 시 지어지면 자연히 운치 있고
戛戛如鳴球(알알여명구) : 부딪힘이 방울 울리는 소리 난다
我願得其妙(아원득기묘) : 나는 그 묘리 얻기를 원하노니
不勞空哦咻(부로공아휴) : 수고하지 않고 공연히 노래부른다
淸溪咽如笙(청계인여생) : 맑은 개울물 흐느낌 생황소리 같고
草堂淸而幽(초당청이유) : 초가집 분위기 맑고도 그윽하구나
景物自蕭條(경물자소조) : 경치는 저절로 쓸쓸한데
宛轉盈雙眸(완전영쌍모) : 분명하게 두 눈동자 채워진다

朗吟詩數篇(랑음시수편) : 낭낭히 시 몇 편을 읊으니
靄靄春雲浮(애애춘운부) : 뭉게뭉게 봄구름이 떠오른다
擲地不成響(척지부성향) : 땅에 던져버려도 소리나지 않으니
罰我三千觩(벌아삼천구) : 나에게 삼천 말이나 되는 벌주를 주오

 

 

우서(偶書)-김시습(金時習)

우연히 짓다-김시습(金時習)

禿筆如刓木(독필여완목) : 몽당붓은 끊은 나무 같고
新詩似走丸(신시사주환) : 새로 지은 시, 구르는 구슬 같다
掣分三峽水(체분삼협수) : 삼협의 물길 잡아 가르고
擘破九華山(벽파구화산) : 구화의 높은 산을 쳐서 쪼개었다
濩落交遊絶(호낙교유절) : 텅 비니 사귀었던 친구들 끊어지고
淸貧世事艱(청빈세사간) : 청빈하니 세상살이 어렵구나
孤峯離物我(고봉리물아) : 외로운 봉우인냥 물아가 떨어지니
相對大無端(상대대무단) : 마주 대해도 너무나 할 일이 없구나

 

 

십년(十年)-김시습(金時習)

십년동안-김시습(金時習)

十年泉石洗心肝(십년천석세심간) : 십년간을 자연에 마을 씻었어도
身世都如醉夢闌(신세도여취몽란) : 몸은 모두가 취한 듯 꿈꾸는 듯 하여라
未盡甘英窮海外(미진감영궁해외) : 달고 쓴 것 닿지 않아 바다 밖을 하하고
空留戲墨滿人間(공류희묵만인간) : 공연히 장난글 남겨 인간 세상 가득하도다
山阿眞隱前生願(산아진은전생원) : 산과 언덕에 숨어삶이 전생의 소원인데
雲水仙遊此日歡(운수선유차일환) : 구름 따라 물 따라 사니 이런 날이 기쁨이다
安得如椽王氏筆(안득여연왕씨필) : 어찌 서까래 같은 왕씨의 붓으로
一揮豪氣壓儒酸(일휘호기압유산) : 한번에 호기롭게 휘갈겨 선비의 고리타분함 눌러줄까

 

 

예예(翳翳)-김시습(金時習)

어둑하여라-김시습(金時習)

翳翳雲遮日(예예운차일) : 어둑하게 구름이 해를 가리니
團團雪覆松(단단설복송) : 동그란 흰 눈이 소나무를 덮었구나
遠山尖更好(원산첨경호) : 먼 산은 뾰죽하여 더욱 좋고
幽興淡還濃(유흥담환농) : 그윽한 흥취 담담하다 짙어지고
對客排愁悶(대객배수민) : 손님을 대하고는 근심과 우울 덜고
課詩可盪胸(과시가탕흉) : 시짓기를 일과 삼아 가슴을 씻어낸다
外人如問我(외인여문아) : 세상 사람들 나에게 묻는다면
天地一疏慵(천지일소용) : 천지 간에 한 사람 게으름뱅이라 하리오

 

 

만성(謾成)-김시습(金時習)

까닭 없이 짓다-김시습(金時習)

早歲身強健(조세신강건) : 젊어서 모이 강건하더니
殘年病入脾(잔년병입비) : 만년에는 시병 몸속에 든다
徑行從所好(경행종소호) : 지름길로 좋은 대로 따라
茶飯任便宜(다반임편의) : 마시고 먹는 것 편한대로 했도다
木落山容瘦(목낙산용수) : 나뭇잎 떨어지니 수척한 산모양
庭空月色奇(정공월색기) : 뜰은 비어있는데 달빛은 기괴하다
呼兒供藥餌(호아공약이) : 아이 불러 약 먹과 먹을 가져오라
困來且支頤(곤래차지이) : 피곤함이 몰려오니 또 턱을 고인다

 

 

서회(書懷)-김시습(金時習)

회포를 적다-김시습(金時習)

頭邊歲月苦奔流(두변세월고분류) : 머릿가의 세월 괴로이 달려 흘러가
不覺推遷又白頭(부각추천우백두) : 모르는 사이에 옮아 백발이 되었구나
雉岳去年鋤火種(치악거년서화종) : 지난 해, 치악산에서 화전 갈아 씨 뿌리고
鼇岑昔日治春疇(오잠석일치춘주) : 옛날에는 금오산에서 봄농사를 지었도다
飮峯啄澗吾生願(음봉탁간오생원) : 산에서 마시고 개울에서 먹는 것이 내 평생 소원
枉道從人已不求(왕도종인이부구) : 도를 어기로 사람들 따라도 이미 구하지 못하노라
更擬好山移住處(경의호산이주처) : 다시 좋은 산 본받아 거처를 옮겨가리니
碧雲秋色屬雙眸(벽운추색속쌍모) : 푸른 구름 가을빛이 두 눈동자에 와 닿으리라

 

 

학랑소(謔浪笑)-김시습(金時習)

웃고 떠들며-김시습(金時習)

我會也我會也(아회야아회야) : 나는 안다, 나는 안다
拍手呵呵笑一場(박수가가소일장) : 박수치며 깔깔대고 한바탕 웃어본다
古今賢達俱亡羊(고금현달구망양) : 고금의 현달한 사람들 모두가 본질을 잃으니
不如結茅淸溪傍(부여결모청계방) : 맑은 개울가에 초가집 짓고 사는 이만 못하도다
畏途側足令人忙(외도측족령인망) : 길 비탈져 두려워 사람을 바쁘게 함은
不如安坐曝朝陽(부여안좌폭조양) : 편히 앉아서 아침 햇볕 쪼이는 것만 못하구나
百年熟黃梁(백년숙황량) : 백년 되어야 누런 조밥 익힐 것이고
談笑防龜桑(담소방구상) : 담소를 나눌 때는 거북과 뽕나무처럼 말함을 막하야 하리라
百了千當(백료천당) : 백 가지 일 마치면, 천 가지 일 생기리니
不如坐忘(부여좌망) : 가만히 앉아서 잊어버림만 못하리라

碧山峨峨(벽산아아) : 푸른 산 높고
碧澗泱泱(벽간앙앙) : 푸른 개울물 콸콸 흐른다
自歌自舞(자가자무) : 스스로 노래부르고, 춤을 추니
憂樂兩忘(우락양망) : 근심과 즐거움 모두 잊어진다
或偃或臥(혹언혹와) : 혹 쓰러지고 혹 눕고
或行或坐(혹행혹좌) : 혹 걷다가 혹은 앉아있고
或拾墮樵(혹습타초) : 혹 줍고 혹은 베며
或摘甜蓏(혹적첨라) : 혹은 열매를 따는데
一領布衫(일령포삼) : 한 벌 베 적삼은
半眉裸臂(반미라비) : 반쯤 벗겨진 팔뚝에 그러난다
骨癯麤筋瘰野(골구추근라야) : 뼈는 약하고 힘줄은 추하고 옴딱지 붙어있다
冠粗粗纓下嚲(관조조영하타) : 갓은 촌스럽고 갓끈은 늘어져있고
眼底不見人與我(안저부견인여아) : 눈 아래에는 남과 내가 보이지 않는다
步月長歌腰裊灘(여아보월장가요뇨탄) : 달따라 거길며 길게 노래 부르니 허리가 흔들리고
笑入煙蘿洞雲鎖(탄소입연라동운쇄) : 안개 낀 덩굴 얽힌 골짜기, 구름 막힌 곳으로 들어간다

 

 

우음(偶吟)-김시습(金時習)

우연히 읊다-김시습(金時習)

淸風蕭蕭撼寒竹(청풍소소감한죽) : 소소한 맑은 바람 찬 대나무 흔들고
月影參差篩庭松(월영삼차사정송) : 여기저기 달그림자 소나무 사이로 새어든다
幽人獨臥不成寐(유인독와부성매) : 숨어사는 사람 혼자 누워도 잡은 오지 않아
仰視碧空星斗東(앙시벽공성두동) : 푸른 하늘 바라보니 동쪽에는 별빛 빛나고
利名榮辱隴上雲(이명영욕롱상운) : 이익과 명예, 영광과 치욕이 언덕 위의 구름
死生往復無終窮(사생왕부무종궁) : 삶과 죽음, 오고 감은 끝이 없는 것
君不見北邙山下纍纍塚(군부견북망산하류류총) : 그대는 보지 못했나, 북망산에 쌓인 무덤들을
盡是名場趑趄翁(진시명장자저옹) : 모두가 이름 난 곳에서 오가던 늙은이들이었네
人生適意是仙境(인생적의시선경) : 인생에 만족한 마음이 곧 신선의 경지인 것을
不必駕海求瀛蓬(부필가해구영봉) : 반드시 바다를 달려 신선 땅, 영주와 봉래를 찾아야 하나

 

 

 

야좌기사(夜坐記事)-김시습(金時習)

밤에 앉아 적다-김시습(金時習)

東嶺風初急(동령풍초급) : 동쪽 고개마루에 막 바람이 일고
西峯月落時(서봉월낙시) : 서편 봉우리에 달 지는 시간이로다
禪心唯寂寞(선심유적막) : 참선하는 마음 적막하고
夜色轉淸奇(야색전청기) : 밤빛은 맑고도 기이해진다
露冷雁聲緊(노랭안성긴) : 이슬은 차고 기러기 소리 급한데
更深燈燼垂(경심등신수) : 깊어지는 밤, 등불 재가 떨어진다
枕涼無夢寐(침량무몽매) : 베개머리 서늘하여 꿈도 못 꾸는데
此境有誰知(차경유수지) : 이러한 경지, 그 누가 알고 있을까

 

 

 

불각(不覺)-김시습(金時習)

어느듯-김시습(金時習)

不覺一年過(부각일년과) : 어느듯 일년이 지나가는데
逢秋今又冬(봉추금우동) : 가을을 맞았는데 이제 겨울이구나
靑山爲伴侶(청산위반려) : 청산은 친구가 되고
茅屋長疏慵(모옥장소용) : 초가집에서 길이 게으르기만 하다
夜靜風生竹(야정풍생죽) : 밤은 고요하고 대숲에 바람
庭寒月掛松(정한월괘송) : 뜰이 차갑고 소나무엔 달이 걸려있다
禪房愛無事(선방애무사) : 선방에는 일이 없어 좋고
非學坐如樁(비학좌여장) : 공부하지 않으면 말뚝처럼 앉아 있다

 

 

 

자면(自勉)-김시습(金時習)

스스로 힘쓰라-김시습(金時習)

老子正無知(노자정무지) : 노자는 정녕 아는 것 전혀 없어
客至而從嗔(객지이종진) : 손님이 오니 따라서 성을 내는구나
日午掩柴扉(일오엄시비) : 한낮이 다되도록 사립문 닫아놓고
高臥羲皇民(고와희황민) : 복희 시절의 백성처럼 높이 누웠도다
不求出世法(부구출세법) : 출세술도 찾지 않고
亦不戀風塵(역부련풍진) : 풍진 세상에 미련도 없었도다.
多年事蹭蹬(다년사층등) : 여러 해 동안, 하는 일 실패해도
貧窶無酸辛(빈구무산신) : 가난해도 고통과 고난 전혀 느끼지 않았다.
吟詩不待伴(음시부대반) : 시를 지어 부르지만 친구를 찾지 않고
高嘯搖其唇(고소요기진) : 높이 휘파람 불지만 헛되이 말하지 않았다
得失兩忘筌(득실양망전) : 이익됨과 손해됨, 모두를 잊고
萬事歸蒼旻(만사귀창민) : 모든 일을 하늘의 운명에 맡기었다
勖哉勉此心(욱재면차심) : 힘쓸지어라, 이러한 마음가짐에 노력하기를
莫學周彥倫(막학주언윤) : 결코 주언륜의 학문은 배우지 말아야 하느니라

 

 

 

종필1(縱筆1)-김시습(金時習)

붓에 맡겨-김시습(金時習)

靑山如戟月如環(청산여극월여환) : 창같은 청산, 고리같은 달

雲自無心月等閑(운자무심월등한) : 스스로 무심한 구름, 한가하기만 한 달

得失浮休兩丘土(득실부휴양구토) : 이득과 손실, 떠돌고 쉬는 것들, 언덕의 흙

不如孤嘯對靑山(부여고소대청산) : 청산 마주보고 외로이 휘파람부는 것만 못하다

 

 

종필2(縱筆2)-김시습(金時習)

붓에 맡겨-김시습(金時習)

百年書劍走長途(백년서검주장도) : 백년을 글읽고, 무술하며 긴 길 달려와

剩得閑名滿五湖(잉득한명만오호) : 남은 것은 오호에 가득 한가한 이름 뿐이라

畢竟此身俱是夢(필경차신구시몽) : 끝내는 이 몸도 한갓 꿈속의 일이러니

一生無事莫如吾(일생무사막여오) : 일평상 일 없는 사람, 나만한 이 없으리라

 

 

 

종필3(縱筆3)-김시습(金時習)

붓에 맡겨-김시습(金時習)

晝㬠胸中萬卷書(주살흉중만권서) : 낮에는 가슴 속에 만권의 책 묻어두고

白雲深處賦歸歟(백운심처부귀여) : 흰 구름 깊은 곳에서 시 짓고서 돌아갈까

平生虛負功名手(평생허부공명수) : 평생동안 공명의 솜씨 헛되이 저버리고

猶把長鑱帶雨鋤(유파장참대우서) : 여전히 긴 가래 잡고 비 맞으려 김매노라

 

 

 

종필4(縱筆4)-김시습(金時習)

붓에 맡겨-김시습(金時習)

我似兒童放學時(아사아동방학시) : 나는 방학한 때의 어린아이 같아

思山疊石植松枝(사산첩석식송지) : 산을 생각하고 돌을 쌓으며 소나무를 심는다

十年蹤跡煙霞外(십년종적연하외) : 아지랑이 노을 속 떠돈, 십년 발자취에

榮辱由來兩不知(영욕유래양부지) : 영화와 치욕의 유래를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우제(偶題)-김시습(金時習)

우연히 짓다-김시습(金時習)

夜來風急紙窓鳴(야래풍급지창명) : 밤바람 급하여 종이 창을 울리고
閑聽空階落葉聲(한청공계낙엽성) : 한가히 빈 뜰에 낙엽지는 소리 듣는다
雲有機心舒或卷(운유기심서혹권) : 구름은 딴 마음 있어 펴다가 말아들고
月多情緖翳還明(월다정서예환명) : 달은 정이 깊어 가렸다가 다시 밝아진다
山城秋暮客初到(산성추모객초도) : 산성의 가을 저녁에 나그네 처음 오니
水國煙銷舟自橫(수국연소주자횡) : 바다에는 연기 걷히고 배만 가로 떠있도다
老我十年無事地(노아십년무사지) : 늙은 나는 십년 동안 일 없는 땅덩이라
一身終不釣功名(일신종부조공명) : 이 한몸 평생토록 공명을 낚지 못했도다

 

 

백년(百年)-김시습(金時習)

인생 백년-김시습(金時習)

百年一飛鳥(백년일비조) : 백년에 한 번 나는 새
令名千古身(령명천고신) : 꽃다운 이름, 천년 가는 몸
恥爲齊景富(치위제경부) : 제나라 경공 부가 부끄럽고
願得伯夷貧(원득백이빈) : 백이 숙제의 가난을 원하노라
歲晏松含態(세안송함태) : 한 해가 늦어짐에, 소나무 자태 머금고
春回杏吐唇(춘회행토진) : 봄이 돌아오니, 살구나무 입술을 토한다
境閑無个事(경한무개사) : 지경이 한가한데 할 일은 하나 없어
行止恃蒼旻(행지시창민) : 가고 그치는 것, 푸른 하늘만 믿는구나

 

 

유거(幽居)-김시습(金時習)

그윽한 생활-김시습(金時習)

松下茅齋靜(송하모재정) : 소나무 아래 초가집 조용한데
幽居思不凡(유거사부범) : 그윽한 생활, 생각은 평범하지 않다
百年同一指(백년동일지) : 백년을 같은 손가락으로 세고
萬事付三緘(만사부삼함) : 만사를 세 번 입 꿰맨 것 같이하라 한다
風送月溪艇(풍송월계정) : 바람은 달빛 비친 개울의 배을 보내고
雲藏天架巖(운장천가암) : 구름은 하늘의 시렁을 바위에 감춘다
小窓成獨倚(소창성독의) : 작은 창에 홀로 기대어 있으니
山翠濕靑衫(산취습청삼) : 산의 푸르름 푸른 적삼을 적시는구나

 

 

욱일(旭日)-김시습(金時習)

아침 해-김시습(金時習)

旭日照東窓(욱일조동창) : 아침 해가 동녘 창을 비추는데
素屛依短釭(소병의단강) : 흰 병풍에 짧은 촛대 받혀놓았다
愁魔已敗績(수마이패적) : 근심의 마귀 이미 패해 쌓여있고
詩陣若爲降(시진약위강) : 시의 진열 이미 항복받은 것 같다
野馬飛還散(야마비환산) : 하루살이 달았다가 다시 흩어지고
癡蜂咽又撞(치봉인우당) : 어리석은 벌들은 앵앵대다 부딪는다
笑看浮世事(소간부세사) : 부질없는 인생사 웃으며 바라보니
搔首轉紛厖(소수전분방) : 머리 긁으니 도리어 어지지러워진다

 

 

 

독좌서회(獨坐書懷)-김시습(金時習)

홀로 앉아 회포를 적다-김시습(金時習)

山房闃寂絶跫音(산방격적절공음) : 산방은 한적하고 사람 발소리 끊겼는데
蔌蔌時聞葉墮林(속속시문엽타림) : 우수수 숲에 낙엽지는 소리 들려오는구나
白鳥去邊秋色晚(백조거변추색만) : 흰 새 가는 곳에 가을빛도 저무는데
碧峯圍處暮雲深(벽봉위처모운심) : 푸른 봉우리 둘러싼 곳에 저문 구름 깊구나
衰遲自笑吾生樂(쇠지자소오생락) : 늙고 둔한 몸 스스로 웃으니 인생이 즐겁고
坦率寧懷處世心(탄솔녕회처세심) : 탄솔하니 차라리 세상에 처할 마음 생기는구나
昨夜風高天更遠(작야풍고천경원) : 어제밤 바람은 높고 하늘은 다시 멀어지니
雁行疏闊送淸吟(안행소활송청음) : 기러기 떼 아득하여 맑은 시를 보내주는구나

 

 

일일(一日)-김시습(金時習)

하루-김시습(金時習)

一日復一日(일일부일일) : 하루 또 하루가 간다
一日何時窮(일일하시궁) : 하루가 어느때나 다 가나
天如輿輻轉(천여여복전) : 하늘은 수레바퀴 도는 것 같고
地似蟻封崇(지사의봉숭) : 땅은 개미가 언덕을 쌓는 것 같다
俯仰岡涯涘(부앙강애사) : 굽어보고 올려봐도 언더과 물, 끝 없고
盈虛無始終(영허무시종) : 차고 기우는 것도 시작과 끝이 없도다
其間人世事(기간인세사) : 그 사이의 인간의 세상일
幾替幾興隆(기체기흥륭) : 몇 번이나 갈아들고 몇 번이나 흥했던가

 

 

총총(悤悤)-김시습(金時習)

너무 바빠서-김시습(金時習)

悤悤百年內(총총백년내) : 너무 바쁜 백년, 한 평생
何爲勞此形(하위로차형) : 무엇하느라 이렇게도 피곤한가
榮其辱之漸(영기욕지점) : 영화는 욕을 보는 조짐이요
否與泰相傾(부여태상경) : 막히고 태평함은 서로 기울어진다
露冷蟲喧座(로랭충훤좌) : 이슬이 차니 풀벌레들 시끄럽고
簷虛月入欞(첨허월입령) : 처마 비어 달이 문안으로 든다
無人堪共話(무인감공화) : 같이 이야기할 만한 사람 아무도 없어
靜夜聽風鈴(정야청풍령) : 고요한 밤에 풍경소리 들려온다

 

 

감흥(感興)-김시습(金時習)

느끼는 흥취-김시습(金時習)

雲自茫茫山自高(운자망망산자고) : 구름은 절로 망망하고 산은 절로 높은데
興亡百變水滔滔(흥망백변수도도) : 흥망이 백번이 변해도 물은 도도히 흐르네
是非坑裏若一夢(시비갱리약일몽) : 옳고 그늘 일이란 구궁이 속의 한 바탕 꿈
榮辱窠中知幾勞(영욕과중지기로) : 영광과 치욕의 굴 속은 너무나 피곤한 것이라네
得句無端空拍手(득구무단공박수) : 시귀를 얻고서 부질없이 박수치고
感時不勝自揮毫(감시부승자휘호) : 시절의 감상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글을 지었네
無人說却羊裘隱(무인설각양구은) : 좋은 입고 숨어 살아도 말하는 이 없지마는
擬向金門着紫袍(의향김문착자포) : 대궐 향해 붉은 도포도 입어볼까 생각한다네


 

감회(感懷)-김시습(金時習)

마음속에 느끼어-김시습(金時習)

窮通聖難豫(궁통성난예) : 궁하고 통함을 성인도 예측이 어려운데
懶慢更如何(나만경여하) : 게으르고 태만하다면 더욱 어떠하리오
午夢驚林鵲(오몽경림작) : 대낮의 꿈도 숲 속 까치소리에 놀라고
年光怕暮鴉(년광파모아) : 세월의 흐름 저녁 까마귀도 두려워한다
事隨人物變(사수인물변) : 일이란 사람에 따라서 변하고
雲向海天斜(운향해천사) : 구름은 해를 향해 기울어지는구나
百歲悲歡事(백세비환사) : 평생의 슬프고 기쁜 일들
還同水上波(환동수상파) : 도리어 물 위의 물결과 같은 것이도다

 

 

개창우언1(開窓寓言1)- 김시습(金時習)

창문 열고 우언을 말하다-김시습(金時習)

靑山如畫刮雙眸(청산여화괄쌍모) : 푸른 산 그림같아 두 둔이 트이고
芳草春深歲月遒(방초춘심세월주) : 향기로운 풀, 봄은 짙어가고 세월은 빠르다
七字篇章歸劇語(칠자편장귀극어) : 일곱 글자 한편 이룬 글 연극의 대사 되니
一年行樂付閑遊(일년행락부한유) : 일 년 즐거운 일들 한가한 놀음에 부치노라
滔滔擧世狗投骨(도도거세구투골) : 술렁이는 온 세상 개에게 고기뼈 던진 듯
薄薄人情兔入罦(박박인정토입부) : 각박한 인정이야 토끼가 망이 든 것 같도구나
莫歎無成添白髮(막탄무성첨백발) : 이룬 것 없이 백발만 늘었다 탄식하지 말라
仲尼盜跖一林丘(중니도척일림구) : 공자도 도척도 한 숲의 언덕이 되어버렸도다


 

소언(小言)-김시습(金時習)

작은 소리-김시습(金時習)

秋毫作紐繫蟭螟(추호작뉴계초명) : 강을 털로 끈 만들어 하루살이 묶었더니
撞著蚊眉墜薄翎(당저문미추박령) : 모기 눈썹에 부딪혀 얇은 날개 떨어졌도다
細析微塵裁物像(세석미진재물상) : 작은 먼지 가늘게 쪼개니 물건 모양 만드는데
精雕纖刺塑猴形(정조섬자소후형) : 정교하게 조각하여 작은 원숭이 형상 그렸도다
粉糜鏡面團團點(분미경면단단점) : 거울에 분가루 동글동글 찍어대니
輕霧空中細細零(경무공중세세령) : 가벼운 안개처럼 공중에서 가늘게도 떨어진다
坐看秋天蠅一箇(좌간추천승일개) : 앉아서 가을하늘 바라보니 파리 한 마리 있어
翩翩扣翼上靑冥(편편구익상청명) : 펄펄 날개치며 프른 하늘로 날아가는구나

 

 

대언(大言)-김시습(金時習)

큰 소리-김시습(金時習)

碧海投竿釣巨鼇(벽해투간조거오) : 푸른 하늘에 낚시대 던져 큰 자라 낚으니
乾坤日月手中韜(건곤일월수중도) : 하늘과 땅, 해와 달이 내 손 안에 담겨있었다
指揮天外凌雲鵠(지휘천외릉운곡) : 하늘 밖 구름 위 나는 따오기 거느리고
掌摑山東蓋世豪(장괵산동개세호) : 산동의 세상 덮던 세상 호걸 손바닥에 쥐었다
拶盡三千塵佛界(찰진삼천진불계) : 삼천 진토 부처 세계에 다달아 보니
呑窮萬里怒鯨濤(탄궁만리노경도) : 만리 성난 고래같은 물결 삼켜버렸다
歸來浪笑人寰窄(귀래랑소인환착) : 돌아와 인간세상 좁음을 헛되이 비웃으니
八百中州只一毛(팔백중주지일모) : 팔백 가운데 고을에 다만 하나의 터럭이었다고

 

 

 

관물(觀物)-김시습(金時習)

물건을 보며-김시습(金時習)

南枝花發北枝寒(남지화발북지한) : 남쪽 가지 꽃 피고, 부쪽 가지 차가운데

強道春心有兩般(강도춘심유양반) : 억지로 봄마음에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一理齊平無物我(일리제평무물아) : 한 이치는 평등하여 너와 내가 없는데

好將點檢自家看(호장점검자가간) : 잘 가져다가 점검하여 자신을 살려보아라

 

 

만성1(漫成1)-김시습(金時習)

별 생각없이 짓다-김시습(金時習)

窮山歲暮坐題詩(궁산세모좌제시) : 세모에 깊은 산에 앉아 시를 지으니
氷合松煤染硯肌(빙합송매염연기) : 얼음물에 솔 연기 합쳐서 벼룻돌을 채웠다
飢鶻下巖多壯氣(기골하암다장기) : 주린 매는 바위에 내려도 그 기운 씩씩한데
凍鴟蹲樹有奇姿(동치준수유기자) : 나무에 쭈구린 언 솔개 기묘한 모양이로구나
陶潛傲世那無醉(도잠오세나무취) : 도잠이 세상을 경시해도 어찌 취함이 없었으며
杜甫思君不廢詩(두보사군부폐시) : 두보는 임금님 생각하며 시를 그만 두지 않았다
自有胸呑雲夢趣(자유흉탄운몽취) : 스스로 가슴 속에 운몽호수를 살킬 멋 있나니
丈夫老去卽豪時(장부노거즉호시) : 대장부 늙어감이 곧 호방한 때이로다

 

 

 

만성2(漫成2)-김시습(金時習)

별 생각없이 짓다-김시습(金時習)

早歲功名浪自期(조세공명랑자기) : 젊어서 공명을 부질없이 기약했는데
此身端合曳沙龜(차신단합예사구) : 이몸이이제는 모랫벌에 꼬리 끄는 거북과 같아
世情薄似蜩螗趐(세정박사조당혈) : 세상인적 엷기가 매미의 날개 같아서
閑夢甜於瓊玉飴(한몽첨어경옥이) : 한가한 꿈 달콤하기 경옥고의 엿과 같아라
裊裊淡煙凝石逕(뇨뇨담연응석경) : 하늘거리는 차가운 연기 돌길에 자욱하고
娟娟寒月上松枝(연연한월상송지) : 곱고고운 차가운 달은 소나무 가지 위에 떠있다
詩名老大將何用(시명노대장하용) : 시인 이름 늙어서 장차 무슨 소용이며
題遍南窓小壁時(제편남창소벽시) : 남쪽 창 작은 벽에 두루 쓰는 시간이로다

 

 

 

유회(有懷)-김시습(金時習)

회포가 있어-김시습(金時習)

開落山花又一年(개낙산화우일년) : 피고 지는 산꽃에 또 일 년 지나고
古今人事正潸然(고금인사정산연) :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일은 눈물이 난다
展禽三黜元非皐(전금삼출원비고) : 전금이 세 번 쫓겨난 일, 원래 죄 아니고
正則孤忠豈有愆(정칙고충개유건) : 정측의 외로운 충성이 어찌 허물 되리오
禍福何須占以筮(화복하수점이서) : 화와 복을 어찌 시초로 점 칠 수 있나
窮通無不關於天(궁통무부관어천) : 궁하고 통하는 것 하늘에 관계되 않음 없도다
時行時止非由力(시행시지비유력) : 때에 행하고 시에 그치는 것은 힘으로 안되니
去矣吾耕負郭田(거의오경부곽전) : 돌아가자꾸나, 내가 성 아래 밭을 갈아보리로다

 

 

 

괴사(怪事)-김시습(金時習)

기괴한 일-김시습(金時習)

世事足可怪(세사족가괴) : 세상사 너무도 기괴하여
心中何一鬱(심중하일울) : 마음 속이 어찌 이리도 답답한가
似鉤得恩榮(사구득은영) : 갈고기 같은 은혜와 영광
如弦遭崇孼(여현조숭얼) : 활 줄같은 큰 죄악을 만나는구나
世事皆以甘(세사개이감) : 세상 일은 모두 달게 여겨겨
肯向傍人說(긍향방인설) : 기꺼이 곁 사람 향해 말해야 하나
僦屋又倩人(추옥우천인) : 집 빌리고 또 에쁜 사람도 빌리니
杜門復捫舌(두문부문설) : 문 닫고서 다시 혀도 깨무는구나
緬懷楚些章(면회초사장) : 초나라의 사라는 글 아득히 생각하니
不覺聲嗚咽(부각성오인) : 목이 매여 우는 소리 깨닫지 못하노라
古來勁直者(고래경직자) : 예부터 굳세고 곧은 사람
蓋棺立名節(개관립명절) : 관 뚜껑 덮고서야 명예와 절개 드러난다
咄咄且揚眉(돌돌차양미) : 혀를 차더라도 눈썹을 치뜨고
莫愁時運臲(막수시운얼) : 시운이 어긋남을 근심하지 말아라

 

 

감흥1(感興1)-김시습(金時習)

흥을 느껴-김시습(金時習)

東寺躄浮屠(동사벽부도) : 동쪽 절에 다리 저는 부도
中廏病顙駒(중구병상구) : 마굿간에 이마에 병든 망아지
起廢各有時(기폐각유시) : 일어나고 쇠함은 각가 때가 있고
失得且勿憂(실득차물우) : 잃고 얻음에 장차 근심하지 말라
漆以用而割(칠이용이할) : 옻은 쓰임이 있다하여 깔라지고
膏以明而煎(고이명이전) : 기름은 밝음이 있다하여 태워진다
棄置勿復慮(기치물부려) : 내버려진다고 다시 우려말고
福兮禍所牽(복혜화소견) : 복받는 것은 재앙에 끌리게 된다
人生天地間(인생천지간) : 천지간에 사람이 태어나
爲樂將何事(위락장하사) : 즐거움을 위해 장차 무엇을 섬기나
鼎鼎百年內(정정백년내) : 흔들흔들 백년 안을 살면서
不作形驅使(부작형구사) : 물질에 쫓기지 말어라
出則爲小草(출칙위소초) : 나가면 작은 풀이라하나
處則名遠志(처칙명원지) : 차지하면 원대한 지사라 한다

遺臭與傳芳(유취여전방) : 자취와 향기로운 이름 전하는 것
不如負朝陽(부여부조양) : 아침 햇볕 쬐는 것만 못하니라
庇身雖襜絮(비신수첨서) : 몸 가리는 것 비록 누더기라도
是非兩相忘(시비양상망) : 시비를 모두 잃어버려라
大丈夫便軒昂(대장부편헌앙) : 대장부는 헌거로워야 하나니
豈肯屑屑趨名場(개긍설설추명장) : 어찌 즐겨 구구하게 벼슬자리를 쫓아
欲進未進徒彷徨(욕진미진도방황) : 나가려해도 나가지 못하고 한갓 방황할 뿐이다
百步九折路羊腸(백보구절로양장) : 백 걸음 되는 꼬불꼬불한 길이 양의 창자 같도다
豺虎當關今憧惶(시호당관금동황) : 시랑이와 호랑이들 길목에서 호령이 무서운데
達固欣然窮亦可喜(달고흔연궁역가희) : 잘되면 원래 좋고 궁해도 기뻐할 것이다
男兒未蓋棺(남아미개관) : 남자가 관 뚜껑 덮기 전에는
莫道事己巳(막도사기사) : 일이 이미 끝났다 말하지 말라
立心勿草草(립심물초초) : 마음을 세우고 초조하지 말고
愼終常如始(신종상여시) : 끝을 조심하기를 항상 처음 같이 하여라
浩歌一長笑(호가일장소) : 호탕하게 노래하고 한번 길게 웃으니

軒外暮山紫(헌외모산자) : 마루 밖의 저문 산이 자색으로 빛나는구나

 

 

감흥2(感興2)-김시습(金時習)

흥을 느껴-김시습(金時習)

二鳥避行路(이조피행로) : 두 새가 가는 길을 피하니
義士西山飢(의사서산기) : 의사가 서산에서 굶주려 죽었다네
物固各有遇(물고각유우) : 만물은 원래 각각 만남이 있고
遇固各有時(우고각유시) : 만남에는 각기 때가 있다네
窮達竟難詰(궁달경난힐) : 궁하고 달함을 따질 수는 없으니
問天天不知(문천천부지) : 하늘에 물어도, 하늘도 모른다네
朝避猛虎穽(조피맹호정) : 아침에 사나운 호랑이 함정 피하여도
夕竄長蛇林(석찬장사림) : 저녁에는 긴 뱀이 사는 숲에 숨어든다네
人道險而難(인도험이난) : 사람 사는 길 험하고도 어려우니
天道杳難尋(천도묘난심) : 천도는 아득하여 찾기도 어렵다네
永懷坐申朝(영회좌신조) : 깊은 생각에 낮까지 앉았더니
悄悄傷我心(초초상아심) : 초초히 내 마음만 상하였다네
且把模稜手(차파모릉수) : 가시 어루만지던 손으로
自守臃腫節(자수옹종절) : 스스로 옹졸한 절개나 지키려네

直木必先伐(직목필선벌) : 곧은 나무는 반드시 먼저 베어지고
甘井必先竭(감정필선갈) : 단 우물은 반드시 먼저 마른다네
人喜鵬擊溟(인희붕격명) : 남들은 대붕새가 바다를 치는 것 좋아하나
我喜龜藏六(아희구장육) : 나는 거북이 육효를 간직하는 것을 좋아하네
人誇犬戲麋(인과견희미) : 남들은 개가 사슴을 희롱하는 것 자랑하나
我笑微聲鹿(아소미성록) : 나는 작은 소리 내는 사슴에 미소짓는다네
拍手歌紫芝(박수가자지) : 손뼉치며 자지가를 노래하는데
紫芝何曄曄(자지하엽엽) : 붉은 지초는 어찌 그렇게 광채로운가
貧賤足肆志(빈천족사지) : 가난하고 천해도 뜻 펼치기에는 충분하니
南谿且卜築(남계차복축) : 남쪽 개울에 장차 집이나 지으려 하노라


 

추사(秋思)-김시습(金時習)

가을 생각-김시습(金時習)

秋思驅人睡不成(추사구인수부성) : 가을 생각에 잠 못 이루는데
小窓淸越讀書聲(소창청월독서성) : 작은 창으로 들리는 청량한 글 읽는 소리
十年舊事了無迹(십년구사료무적) : 십년 동안의 지난 일들 흔적도 없어지고
半夜百蟲鳴不平(반야백충명부평) : 깊은 밤 모든 벌레들 울면서 불평하는구나
白紙帳邊燈一點(백지장변등일점) : 흰 종이 휘장 가에는 껌벅이는 등 하나
碧梧桐上月三更(벽오동상월삼경) : 벽오동 나무 위에 삼경의 달 떠 있도다
古人如可重相見(고인여가중상견) : 옛사람을 다시 볼 만나 볼 수 있다면
欲把離騷問宋生(욕파리소문송생) : 이소경 가지고서 송옥에게 물어보리라

 

 

우음(偶吟)-김시습(金時習)

우연히 읊다-김시습(金時習)

滿眼靑山不世情(만안청산부세정) : 눈에 가득한 푸른 산 세상 물정 아니니
多事已結歲寒盟(다사이결세한맹) : 일 많게도 이미 세한의 맹세 맺어버렸구나
蒲團烏几明窓靜(포단오궤명창정) : 부들 방석, 검은 책상에 밝은 창은 고요한데
紙帳淸香細靄橫(지장청향세애횡) : 종이 휘장 맑은 향기 얇은 안개 가로 날아
塵外極知身老大(진외극지신노대) : 세상 밖에 이몸 심히 늙은 줄 아지마는
人間無處立功名(인간무처립공명) : 인간세상 어디라도 부귀공명 세울 곳 없구나
暮雲初捲天如水(모운초권천여수) : 저녁 구름 처음 걷히니 하늘이 물같아
時聽長空雁一聲(시청장공안일성) : 때때로 높은 공중에, 기러기 울음소리 들린다

 

 

독좌봉인철다부시(獨坐逢人啜茶賦詩)-김시습(金時習)

혼자 앉아 사람만나 차 마시며 시를 짓다-김시습(金時習)

兩耳聊聊獨坐時(양이료료독좌시) : 두 귀 요요하여 홀로 앉으니

半簾斜日映花枝(반염사일영화지) : 발에 절반이나 비춰던 석양에 꽃가지 빛난다

年來漸覺無拘束(년래점각무구속) : 올 해는 구속됨이 없음이 느껴져서

滿肚幽懷卽是詩(만두유회즉시시) : 뱃속 가득 깊은 회포가 그대로 시가 된다

 

 

장지(壯志)-김시습(金時習)

원대한 꿈-김시습(金時習)

壯志桑弧射四方(장지상호사사방) : 사나이 큰 뜻으로, 뽕나무 화살 사방 쏘았는데
東丘千里負靑箱(동구천리부청상) : 동쪽 언덕 천리를 푸른 책 상자 지고 다녔도다
欲參周孔明仁義(욕삼주공명인의) : 주공과 공자를 따라 인과 의리를 밝히려 하고
又學孫吳事戚揚(우학손오사척양) : 손자와 오자의 병법을 배워 무위를 날리려 했다
運到蘇秦懸相印(운도소진현상인) : 운수에 따라 소진처럼 정승의 인끈도 매달고
命窮正則賦騷章(명궁정칙부소장) : 운명이 궁하면 굴원처럼 이소경이나 지을 것이다
如今落魄無才思(여금낙백무재사) : 지금처럼 몰락되어 재주와 사려가 없으니
曳杖行歌類楚狂(예장행가류초광) : 지팡이 뜰며 노해함이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같도다

 

 

유유(悠悠)-김시습(金時習)

여유로운 마음-김시습(金時習)

萬事悠悠一夢間(만사유유일몽간) : 만사는 유유한 한 바탕 꿈속의 일
勸君高臥且加餐(권군고와차가찬) : 그대에게 권하노니, 편히 누워 많이 먹어라
身如逆旅心爲客(신여역려심위객) : 몸은 여관 신세, 마음은 나그네 처지
世似長途愁是關(세사장도수시관) : 세상은 먼 길 같고 근심은 관문 같아라
得酒莫辭多酩酊(득주막사다명정) : 술 얻으면 사양 말고 잔뜩 취하고
吟詩且欲喜盤桓(음시차욕희반환) : 시 읊으면 기뻐하며 이리저리 서성거리라
晚來雨過山堂靜(만래우과산당정) : 저녁에 비 지나가니 산당은 고요하고
搔首長歌澧有蘭(소수장가례유란) : 머리 긁으며, 풍 땅에 난초 난다 길게 노래하였다

 

 

세고(世故)-김시습(金時習)

세상 일-김시습(金時習)

世故屢多變(세고루다변) : 여러 번 변하는 세상일
惻惻傷我心(측측상아심) : 측측하게 내 마음 상한다
朝畏豺虎關(조외시호관) : 아침에는 시랑이와 호랑이 소굴 두렵고
暮避荊棘林(모피형극림) : 저녁에는 가시나무 우거진 숲을 피한다
冉冉白日飛(염염백일비) : 성큼성큼 대낮은 날아가고
鼎鼎光陰老(정정광음노) : 당당하게 세월에 늙어만 간다
丈夫在世間(장부재세간) : 사나이 세상에 있으면서
胡不展懷抱(호부전회포) : 어찌 품은 뜻 펴지 못하는가
人生如磨礪(인생여마려) : 인생은 맷돌갈이와 같아
磨盡自有時(마진자유시) : 다 갈아내는 것도 스스로 때가 있도다
直須愼行藏(직수신행장) : 정직에는 마땅히 행장을 조삼하며
志大終有期(지대종유기) : 뜻가짐이 크다면 끝내 기대함 있으리라
天如使不鳴(천여사부명) : 하늘이 만약 울지 못하게 한다면
立言要後知(립언요후지) : 말을 적어서 후세 사람들이 알게 하리라

 

 

야우기사(夜雨記事)-김시습(金時習)

비내리는 밤에 일을 적다-김시습(金時習)

山堂夜坐久(산당야좌구) : 산당에서 오래도록 앉으니
窓外雨聲急(창외우성급) : 창 밖에는 빗소리 급하구나
四壁悄無人(사벽초무인) : 사방은 사람 없어 쓸쓸하고
靑燈花欲滴(청등화욕적) : 푸른 등에는 불꽃이 떨어질 듯
薨薨蒼蠅聲(훙훙창승성) : 윙윙거리는 파리 소리
裊裊淸香煙(뇨뇨청향연) : 하늘하늘 맑은 향기 올라간다
紛紛書冊橫(분분서책횡) : 어지러이 책이 가로 놓여있고
狼籍置我前(랑적치아전) : 내 앞에 낭자하게 흩어져 있다
童子喚不應(동자환부응) : 아이 불러도 대답 않고
鼻鼾聲如雷(비한성여뢰) : 코 고는 소리가 우뢰같다
庭梧風正起(정오풍정기) : 뜰 오동나무에 바람이 막 일고
簾帳相排推(염장상배추) : 발과 휘장이 서로 밀려 오른다
感此不能寐(감차부능매) : 이런 것에 느껴 잠 못 이루는데

草蟲吟正哀(초충음정애) : 풀벌레 우는 소리 정말 애처롭구나
因思十年事(인사십년사) : 지난 십년 일들을 생각하니
慷慨添華髮(강개첨화발) : 강개한 일로 흰 머리만 더한다
喜我老林泉(희아노림천) : 나의 기쁨은 자연에서 늙는 것
無復墮刺刺(무부타자자) : 어찌 다시 자자한 세상에 떨어지리오
恰似雲際中(흡사운제중) : 흡사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아
勁翮飛籠脫(경핵비롱탈) : 굳센 깃촉으로 날아 조롱을 벗었도다
耿耿達申朝(경경달신조) : 뒤척이며 오후까지 잠 못 이루니
雨霽簷溜滴(우제첨류적) : 비는 개고 처마에 낙숫물 떨어진다
復起憑欄干(부기빙란간) : 다시 일어나 난간에 기대니
水螢光熠熠(수형광습습) : 물에 반딧불빛이 반짝거리는구나

 

 

즐즐(喞喞)-김시습(金時習)

벌레 소리 들린다-김시습(金時習)

喞喞何喞喞(즐즐하즐즐) : 즐즐, 어찌 그리도 즐즐거리는가
草蟲鳴相弔(초충명상조) : 풀벌레들 울면서 서로가 조상해준다
西堂臥無夢(서당와무몽) : 서쪽 방에 누우니 잠도 오지 않고
皓月當前照(호월당전조) : 밝은 달은 앞에서 빛을 비추는구나
世固各有好(세고각유호) : 세상은 진실로 좋고 나쁨이 있거늘
余獨愛幽寂(여독애유적) : 나만 홀로 그윽한 적막함을 좋아하노라
乘流遇坎止(승류우감지) : 흐름을 타고가다 구멍을 만나면 그치나
恣意得所適(자의득소적) : 마음대로 가야할 곳을 찾아가는구나
生當老丘壑(생당노구학) : 살아서는 마땅히 산과 골짜기에서 늙고
死當埋山麓(사당매산록) : 죽어서는 마땅히 산기슭에 묻히리라
古來共如此(고래공여차) : 예부터 모두가 이와 같나니
已矣何戚戚(이의하척척) : 말어라, 무엇을 더 슬퍼한단 말인가

 

 

만성(漫成)-김시습(金時習)

아무렇게나 짓다-김시습(金時習)

半生涉江海(반생섭강해) : 반평생을 강해를 돌아다니다가
餘年擬首丘(여년의수구) : 남은 인생 고향에서 보내려 한다
高臥林泉間(고와림천간) : 숲과 샘물 사이에 누우니
歲月如轉毬(세월여전구) : 세월은 구르는 공과 같구나
旣聽春鳥喚(기청춘조환) : 이미 봄날의 새 부르는 소리 듣고
又感候蟲愁(우감후충수) : 또 철 따른 벌레들의 수심을 느낀다
永懷度長宵(영회도장소) : 끝없은 회포로 긴긴 밤을 지나려니
鬱鬱心愀愀(울울심초초) : 답답한 마음이 서글퍼지는구나
奈此夜苦長(내차야고장) : 이 밤이 괴롭고도 긴 것을 어찌 하나
燈火稍凄涼(등화초처량) : 등불도 조금 처량하여
書卷拋在床(서권포재상) : 책을 평상 위에 던벼버린다
濡筆置在傍(유필치재방) : 먹 적신 붓을 곁에 두고
窮懷欲著書(궁회욕저서) : 끝없는 생각 책으로 쓰고싶으나
未能抒中腸(미능서중장) : 마음 속 생각 모두 펼 수가 없구나
男兒不能遺臭芳(남아부능유취방) : 사나이 태어나 좋고 나쁜 흔적 남기지 못하면

便是徒死三家郞(편시도사삼가랑) : 이는 곧 헛되이 죽은 세 집안 자식에 불과하다

 

 

우음(偶吟)-김시습(金時習)

우연히 읊다-김시습(金時習)

最憐松竹菊(최련송죽국) : 소나무, 대나무, 국화가 가장 어여뻐라
獨守歲寒心(독수세한심) : 차가운 날에도 홀로 지키는 마음 있도다
揷棘編籬短(삽극편리단) : 가시나무 꽂아서 낮은 울타리 엮고
芟林築徑深(삼림축경심) : 숲풀 깎아내어 깊숙한 길을 낸다
幅巾多野趣(폭건다야취) : 복건은 들사람의 멋이 많이 나고
藜杖稱閑吟(여장칭한음) : 명아주 지팡이는 한가히 읊기에 어울린다
蕭散遺人事(소산유인사) : 시원스럽게 세상일 남겨두고
橫經閱古今(횡경열고금) : 경서 가로 펴놓고 고금의 일을 살펴본다

 

 

자이(自貽)-김시습(金時習)

자신에게 -김시습(金時習)

處士本閑雅(처사본한아) : 처사는 본래 한적하고 맑아
早歲好大道(조세호대도) : 어린 나이에 큰 도를 좋아했다
志與時事乖(지여시사괴) : 품은 뜻이 세상과 어긋나
紅塵跡如掃(홍진적여소) : 세상 자취는 썰어버린 듯하도다
少小遊名山(소소유명산) : 젊어서 명산에 조금 놀다가
甿俗不交好(맹속부교호) : 무지한 속인들 좋아하지 않아
晚居瀑布傍(만거폭포방) : 늙어서는 폭포가에 살면서
欲作淸溪老(욕작청계노) : 맑은 개울의 늙은이 되고 싶었다
世人那得知(세인나득지) : 세상 사람들 어찌 알리오
尋常稱潦倒(심상칭료도) : 흔히들 신세 망쳤다고들 말한다
處士亦不猜(처사역부시) : 처사도 시기하지 않고
每被風花惱(매피풍화뇌) : 매양 바람과 꽃에 고뇌를 당한다
隱顯或無時(은현혹무시) : 때없이 나타나고 숨어다녀도
期往蓬萊島(기왕봉래도) : 신선 세상 봉래도로 가기를 기약한다

 

 

방언(放言)-김시습(金時習)

함부로 지껄이다-김시습(金時習)

眇將一粟身(묘장일속신) : 한 알 좁살같은 몸 가지고
復何心懵憧(부하심몽동) : 다시 어찌 마음이 심한한가
百年只一息(백년지일식) : 백년도 한번 숨쉴 시간
萬事猶倥傯(만사유공총) : 만사는 오리혀 바쁘기만 하다
旣得還恐失(기득환공실) : 얻고서는 잃을까 두려우니
奚暇尊周孔(해가존주공) : 어찌 주공과 공자를 숭상할 겨를 있나
有人早歸休(유인조귀휴) : 일찍 돌아와 쉬는 사람 있어
視彼同蠛蠓(시피동멸몽) : 그를 보기를 하루살이처럼 여긴다
溪聲激潺湲(계성격잔원) : 개울물 소리 잔잔히 드려오고
山色聳巃嵷(산색용롱종) : 산빛은 우뚝하게 솟아 오른다
雖云縱性遊(수운종성유) : 비록 본성대로 논다 하지만
非禮卽勿動(비례즉물동) :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幽軒竹數竿(유헌죽수간) : 그윽한 마루 앞에 몇 줄기 대나무
小庭花萬種(소정화만종) : 작은 뜰에 꽃이 만 가지 종류나 된다
看竹復看花(간죽부간화) : 대나무를 보다가 또 꽃을 보니
亦是一榮寵(역시일영총) : 이 또한 하나의 은총이로구나
洞口雲自生(동구운자생) : 동구에서 구름 절로 피어오르고
石眼泉自湧(석안천자용) : 돌 틈에서는 샘이 절로 솟아난다
逍遙復逍遙(소요부소요) : 거닐다가 또 거닐며
俛仰歌垂拱(면앙가수공) : 굽어보고 쳐다보면서 태평한 옛정치 노래하노라

顓孫學干祿(전손학간록) : 자장이 녹을 구하는 방법을 배워
唯恐其不迨(유공기부태) : 성취하지 못할까 오직 두려워했다네
干祿心旣切(간록심기절) : 녹을 구하는 마음 간절하거늘
何知寡尤悔(하지과우회) : 어찌 허물과 후회 없음을 알겠는가
言行苟無愧(언행구무괴) : 말과 행동에 정말 부끄러움 없다면
穀亦不外待(곡역부외대) : 나도 밖에서 기다리지 않으리라
外待何人期(외대하인기) : 밖에서 기대리니 어떤 사람 기대하리오
天祿棄不採(천록기부채) : 하늘이 주는 녹을 버려두고는 캐지 않는다

犢角抽東軒(독각추동헌) : 쇠뿔은 동헌에서 뽑나니
乃知生竹筍(내지생죽순) : 그것이 죽순임을 알겠노라
竊期長且大(절기장차대) : 길고 큰 것을 몰래 바라며
作竿釣蛟蜃(작간조교신) : 낚시대 만들어 고래를 낚했다
一夜盜折去(일야도절거) : 하룻밤에 도둑이 꺾어갔으니
此計還可哂(차계환가신) : 그 계획이 도리어 우습게 되었도다


於斯有一玉(어사유일옥) : 여기에 옥하나 있나니
久向匵中韞(구향독중온) : 오랫동안 상자 속에 있도다
光輝耀天地(광휘요천지) : 광채가 천지에 빛나니
炯炯不敢隱(형형부감은) : 번쩍거림을 숨기지 못한다
何用沽於世(하용고어세) : 어찌 그것을 세상에 자랑할까
聲已聞遠近(성이문원근) : 명성이 이미 멀리 가까이 들리었다

爲人性疏散(위인성소산) : 사람됨이 성품이 방만하여
於事太多懶(어사태다라) : 일마다에 너무 나태하도다
山月有燈燭(산월유등촉) : 산 뜬 달에 촛불 있고
松風有絃管(송풍유현관) : 솔바람에 관현악이 있도다
閑中經數卷(한중경수권) : 한가한 중에 여러 권 책 읽으며
渴來茶七椀(갈래다칠완) : 목마르면 일곱 주발의 차를 마신다
心當遊此樂(심당유차락) : 마음은 마땅히 이러한 즐거움에 놀아야지
何暇較長短(하가교장단) : 어느 겨들에 좋고 나쁜 것을 견주리오

稚松移種庭(치송이종정) : 어린 소나무 뜰에 옮겨 심고
禁人使勿翦(금인사물전) : 사람들이 잘라가지 못하게 했도다
亭亭漸百尺(정정점백척) : 곳곳하게 자라나 점점 백 자나 되고
鱗甲鎖苔蘚(인갑쇄태선) : 껍질에는 이끼가 막히었다
枝長葉復密(지장엽부밀) : 가지는 길고 잎도 빽빽하여
日夜聞鶴喘(일야문학천) : 밤낮으로 학 우는 소리 들린다
幾時生茯苓(기시생복령) : 어느 때나 복령이 생겨나
薄採貢玉輦(박채공옥련) : 그것을 캐어서 임금님께 바칠까
與人延頹齡(여인연퇴령) : 사람에게 주면 늙은 목숨도 연장되어
壽與天不殄(수여천부진) : 목숨과 천성이 결코 다하지 않으리라
倘未生茯苓(당미생복령) : 혹시 복령이 생기지 않아도
歲寒姿亦善(세한자역선) : 날이 차가우면 그 자태도 좋으리라

春風無私心(춘풍무사심) : 봄바람 조금도 사심없어
普被於大小(보피어대소) : 크거나 작거나 널리 불어준다
啓口動群蟄(계구동군칩) : 입 벌려 여러 벌레 움직여 주고
弄舌啼百鳥(농설제백조) : 여러 새들 혀를 놀려 울게해준다
桃李偃短墻(도이언단장) : 복사꽃 오얏꽃 담장에 눕게 하고
芙蓉泛碧沼(부용범벽소) : 연꽃을 푸른 늪에 뜨게 하는구나
時雨好風俱(시우호풍구) : 제철의 비와 좋은 바람 함께하니
大平從此肇(대평종차조) : 태평성 이로부터 시작되노라
山人樂舞蹈(산인락무도) : 산사람 무도장을 즐기며
浩浩歌窈窕(호호가요조) : 호방하게 요조장을 노래한다
豈獨春風然(개독춘풍연) : 어찌 다만 봄바람만 그러할까
聖化流億兆(성화류억조) : 성인의 교화도 만민에게 흐르리라


幽齋靜且深(유재정차심) : 그윽한 집, 고요하고도 깊숙하여
寓形堪送老(우형감송노) : 아 한 몸 노년 보내기 넉넉하구나
萬事奚足務(만사해족무) : 인생만사 어찌 족히 힘쓰겠는가
一閑是所寶(일한시소보) : 한가지 한가함이 곧 보배이로다
門無車馬喧(문무차마훤) : 문 앞에는 오는 수레 하나 없는데
衣裳肯顚倒(의상긍전도) : 어찌 의상을 거꾸로 입으리오
莫罪步世表(막죄보세표) : 세상 밖에 나다닌다 죄 삼지 말라
是亦一種道(시역일종도) : 이것 또한 일종의 도일 것이리라
自古此流多(자고차류다) : 예부터 이런 부류의 사람 많았으니
巢許可訂考(소허가정고) : 소부와 허유를 상고할 수있도다
考槃亦有人(고반역유인) : 은거하며 사는 일에도 사람 있으니
不惟吾獨好(부유오독호) : 오직 나람이 즐겨함은 아니로다
汲盡東溟水(급진동명수) : 동해의 바닷물 다 길러내어도
利欲垢難澡(이욕구난조) : 이욕의 때는 씻어내기 어렵도다
帚盡大山木(추진대산목) : 태산의 나무로 비를 만들어도
名路塵難掃(명로진난소) : 이름 길의 티끌은 쓸어내기 어렵도다
然則吾奈何(연칙오내하) : 그렇다면 나는 어찌할까
落落從素抱(낙낙종소포) : 울타리 가에서 평소대로 안고 살리라

吟罷竹窓靜(음파죽창정) : 시 읊고 나니 대나무 창가는 고요하고
山雨洒庭草(산우쇄정초) : 산에 내리는 비가 뜰에 난 풀에 뿌려진다

直上南山頭(직상남산두) : 바로 남산 꼭대기로 올라
騁目驅萬像(빙목구만상) : 눈 달려 만가지 형상을 몰아본다
日月低回腰(일월저회요) : 해와 달은 허리 아래로 낮게 돌고
乾坤括分掌(건곤괄분장) : 하늘과 땅은 손바닥에 잡힐 듯하다
胸次豁爾遠(흉차활이원) : 가슴 속 시원하게 터이는 듯 하고
怳爲登仙想(황위등선상) : 황홀하기가 신선이 된 듯 생각된다
神飆產石竇(신표산석두) : 돌 틈에서 신풍이 부는 듯
身輕骨亦爽(신경골역상) : 몸은 가볍고 뼈속까지 상쾌하도다
斯游不易得(사유부역득) : 이런 놀음 쉽게 얻지 못하리니
放蕩恣偃仰(방탕자언앙) : 방탕하게 마음대로 누었다가 일어난다
向晚興盡回(향만흥진회) : 날이 저물어 흥이 다하여 돌아오니
白雲生藤杖(백운생등장) : 흰구름이 등나무 지팡이에서 인다

有客趁暮來(유객진모래) : 손님 하나 저물어 찾아 오니
皤皤白頭叟(파파백두수) : 희고 흰 백발의 노인이로다
行裝一筇杖(행장일공장) : 행장은 지팡이 하나 뿐
衣破半露肘(의파반로주) : 의복은 찢어져 팔뚝이 반이나 드러났다
我問從何方(아문종하방) : 내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遙指靑山後(요지청산후) : 멀리 청산의 뒤를 가리킨다
碩大固無匹(석대고무필) : 석대하다하니 정말 짝이 없을 것 같으니
塞淵端寡偶(새연단과우) : 침묵하니 과연 짝이 없을 것이다
心知非常輩(심지비상배) : 마음으로 평범한 무리 아닌 것 같아
斂容恭俛首(렴용공면수) : 얼굴빛 고치고 공손히 머리 숙었다
引坐松筠軒(인좌송균헌) : 이끌어 송균헌에 앉게 하고
翦韭復釃酒(전구부시주) : 부추 뜯고 다시 술을 걸렀다
相與期酩酊(상여기명정) : 서로 취하기로 약속하여
酬酢不停手(수초부정수) : 수작하기를 그치지 않았도다
醉來放志意(취래방지의) : 취한 뒤에는 마음대로 지껄이니
孰知孰無咎(숙지숙무구) : 누가 알까, 누구에게나 허물 없는 것을
客起歌且舞(객기가차무) : 손님이 일어나 노래하고 춤추니
我坐亂擊缶(아좌란격부) : 나는 앉아서 어리럽게 동이를 두들겼다
歌舞旣云罷(가무기운파) : 노래와 춤이 다 끝나니

明月生甕牗(명월생옹牗) : 밝은 달이 영창으로 솟아올랐다
我倒客亦去(아도객역거) : 나는 쓰러지고 손님도 가고
淸風動槁柳(청풍동고류) : 맑은 바람은 바른 버들을 흔든다

韜晦隱山阿(도회은산아) : 못난 채로 산언덕에 숨어 사니
蕭然情慮淡(소연정려담) : 쓸쓸하고 마음과 생각 담담하여라
囊無一粒粟(낭무일립속) : 자루에는 한 톨의 곡식도 없고
固窮無斯濫(고궁무사람) : 궁한 일 견디면 곧 지나친 일 없으리라
世事自隆替(세사자륭체) : 세상만사 저절로 바뀌어들어도
至樂何增減(지락하증감) : 지극한 즐거움이야 어찌 변하리오
積中必形外(적중필형외) : 마음 속에 쌓이면 반드시 밖으로 드러나리니
周旋凜儀範(주선름의범) : 행동이 늠름하고 법도가 있으리라
彼其碌碌輩(피기록록배) : 저 그들 녹록한 무리들이란
不麾自不犯(부휘자부범) : 지휘하지 않으면 스스로는 범하지 못한다
邈焉千古懷(막언천고회) : 아득히 천년 전의 일을 생각하며
默默倚雲檻(묵묵의운함) : 말없이 구름 난간에 기대어 있도다

苦厭人間強迎送(고염인간강영송) : 사람들 억지로 맞고 보냄이 정말 싫어
抽此形骸臥碧洞(추차형해와벽동) : 이 몸을 뽑아내서 푸른 산 골짜기에 누웠다
是非榮辱於吾何(시비영욕어오하) : 시비와 영욕이 내게 무슨 소용일까
松風吹破槐陰夢(송풍취파괴음몽) : 솔바람 불어와 홰나무 그늘 꿈을 깨운다

長年好與煙霞住(장년호여연하주) : 오랫동안 안개와 노을에 머물며
拾橡供廚送朝暮(습상공주송조모) : 도토리 주워 음식 만들어 아침저녁 보냈도다
石床高枕睡陶然(석상고침수도연) : 돌평상에 베개 높이 베고 편안하게 자는데
有夢不飛紅塵路(유몽부비홍진로) : 꿈속에라도 속세의 길로는 날아가지 않으리라


달조부매향효우작(達朝不寐向曉偶作)-김시습(金時習)

날 새도록 자지 못하고 새벽에 우연히 짓다-김시습(金時習)

向曉紙窓明(향효지창명) : 새벽 되니 지창이 밝아지는데
雲林高臥情(운림고와정) : 구름 낀 숲에 높이 누운 마음이여
翛然一室小(소연일실소) : 시원한 방 하나 작기도 하고
優我百年榮(우아백년영) : 넉넉히 나의 백년 인생의 영광이여
貧似陶彭澤(빈사도팽택) : 가난함도 도연명과 같고
酣如阮步兵(감여완보병) : 술 취함은 술꾼 완적과 같음이여
此生吾已判(차생오이판) : 내 인생 내가 이미 판단했으니
不必負功名(부필부공명) : 반드시 부귀공명만 짊어질 것 아니로세

 

 

자이(自貽)-김시습(金時習)

자신에게-김시습(金時習)

碧山淸隱好稱君(벽산청은호칭군) : 푸른 산에 맑게 은거하니 그대와 맞아

願住高峯臥白雲(원주고봉와백운) : 원하기는, 높은 봉우리에 살며 흰 구름에 눕는 것

宦路若逢淸隱子(환로약봉청은자) : 벼슬길에서 말게 은거하는 사람 만나거든

草堂蘿月更移文(초당라월경이문) : 초당의 댕댕이 넌출 에 뜬 달도 이문 지어보내리라

 

 

 

일신(一身)-김시습(金時習)

내 한 몸-김시습(金時習)

一身跡如寄(일신적여기) : 내 한 몸의 삶의 자취 더부살이 같아
江湖四十年(강호사십년) : 강호에 살아온지 사십년이로다
但知人自老(단지인자노) : 사람만 저절로 늙어가는 줄 알았지만
肯諳歲回旋(긍암세회선) : 한 해가 돌아가는 줄을 어찌 생각 했을까
影外無相弔(영외무상조) : 그림자 외에는 서로 따르는 이 없고
雲邊政可憐(운변정가련) : 구름 가에는 참으로 가련하구나
如今侵白髮(여금침백발) : 지금처럼 백발이 늘어가면
造物恐無權(조물공무권) : 조물주도 권한 없을까 누렵게만 여겨진다

 

 

만성(漫成)-김시습(金時習)

우연히 짓다-김시습(金時習)

老大將何適(노대장하적) : 늙어지면 어디로 가야하나
翛然一室空(소연일실공) : 소연히 방 하나 비어있구나
更無形物役(경무형물역) : 물질에 얽매이는 일 다시 없고
唯有主人公(유유주인공) : 오직 눈 앞에 주인만 있을 뿐
月上辛夷塢(월상신이오) : 개나리 언덕에 달 떠오르고
風來苦竹叢(풍래고죽총) : 어려운 대숲에 바람이 분다
拖筇吟不盡(타공음부진) : 지팡이 끌면서 끝없이 노래하고
花影小樓東(화영소루동) : 작은 누대 동쪽에 꽃 그림자 인다

 

 

서감(書感)-김시습(金時習)

감회를 적다-김시습(金時習)

富貴生前身後名(부귀생전신후명) : 생전의 부귀와 죽어서의 명예
百年長是起愁城(백년장시기수성) : 인간평생 백년동안 근심이 여기서 인다
醉來偃臥方爲樂(취래언와방위락) : 취하여 누워보니 이것이 곧 즐거움이요
飽可閑眠始得榮(포가한면시득영) : 배부르면 한가히 잠잘 수 있어냐 영화로다
點點遠山明似黛(점점원산명사대) : 점점이 보이는 머나먼 산, 분명 눈썹같고
澄澄古澗淨如瓊(징징고간정여경) : 맑고 밝은 시냇물은 깨끗하기 구슬 같도다
幽居不用治生業(유거부용치생업) : 깊숙 곳에 살면서 생업에 힘쓰지 않으니
荷製新衣筆代耕(하제신의필대경) : 연잎으로 새 옷 만들고 붓으로 밭 갈리라

 

 

훼예(毁譽)-김시습(金時習)

헐뜯음-김시습(金時習)

毀譽無虞自在身(훼예무우자재신) : 헐뜯거나 칭찬하거나 걱정없는 자유로운 몸
逍遙何處不通津(소요하처부통진) : 어느 곳에서 소요하면 나루터를 통하지 못하리오
道深如海看非遠(도심여해간비원) : 길이 바다같이 깊으나 바라보면 멀어보지 않고
事重於山約便塵(사중어산약편진) : 일이 산보다 중해도 요약하면 곧 티끌같도다
朝灌蔬園靑箬笠(조관소원청약립) : 아침에 채소밭에 물 줄 때는 푸른 대삿갓 쓰고
晚遊花逕白綸巾(만유화경백륜건) : 저녁 때, 꽃 핀 길에는 흰 실의 복건이로다
仍聞下界風波惡(잉문하계풍파악) : 그런대로 들으니, 인간세상 풍파는 엄악한데

半是歡娛半是顰(반시환오반시빈) : 그 반은 환락이요, 다른 반은 질투 때문이니라

 

 

층등(蹭蹬)-김시습(金時習)

미끄러져서-김시습(金時習)

蹭蹬功名事已訛(층등공명사이와) : 공명에서 미끄러지니 일은 이미 틀렸거니
少年那計此中過(소년나계차중과) : 어려서 어찌 이러한 처지로 혼자 지낼 줄 알았으랴
靑山茅屋壯心在(청산모옥장심재) : 청산 속 초가집에 큰 뜻 품은 이 있겠지만
白髮老翁兒戲多(백발노옹아희다) : 백발 된 늙은이 아이들 같은 놀이도 많구나
小苑飛花藏小篋(소원비화장소협) : 작은 동산에 날리는 꽃 작은 바구니에 담아
淸溪流水壅盤渦(청계류수옹반와) : 맑은 개울 흐르는 물 막아 웅덩이가 되었구나
却訝無事還多事(각아무사환다사) : 무사한 처지가 다사로운 일 되었으니 도리어 이상하다
又摘殘蔬旋種茄(우적잔소선종가) : 다시 남은 나물 뜯어내고는 새로 가지를 심어본다

 

 

민극(悶極)-김시습(金時習)

답답함이 심하여-김시습(金時習)

花是山中曆(화시산중력) : 꽃은 산 속 생활의 달력이요
風爲靜裏賓(풍위정리빈) : 바람은 고요한 때의 손님이라
恨無沽酒債(한무고주채) : 술 살 돈 없어 한스럽고
又欠過墻隣(우흠과장린) : 또 담 넘어 청할 이웃도 없도다
竹塢涼吹急(죽오량취급) : 대나무 언덕 찬 바람 급히 불어
松窓月色新(송창월색신) : 송창에 달빛은 새롭구나
閑吟聊遣寂(한음료견적) : 한가히 읊어 적적함을 보내는데
箇是道中人(개시도중인) : 이런 것이 도를 아는 사람이리라

 

 

담상유감(潭上有感)-김시습(金時習)

못 위에서 느낀 바 있어-김시습(金時習)

峯上靑楓千萬枝(봉상청풍천만지) : 산 위에 푸른 단풍 천만 가지
傷春情緖亂如絲(상춘정서란여사) : 애달픈 봄 심정은 실같이 어지럽다
巖花灼灼應無主(암화작작응무주) : 활짝 핀 바위의 꽃에는 임자가 없으리니
胡蝶雙雙亦可悲(호접쌍쌍역가비) : 쌍쌍히 나는 범나비도 슬퍼할 만하도다
人事那能如水鏡(인사나능여수경) : 사람의 일도 어찌 능히 물과 거울 같을까
烏雛誰復識雄雌(오추수부식웅자) : 까마귀 새끼를 그 누가 암수를 구별할 수있나
秦坑漢錮皆如此(진갱한고개여차) : 진나라 선배 묻음과 한나라 선비 가둠은 다 이와 같아
孰是眞吹孰竊吹(숙시진취숙절취) : 그 누가 진짜 피리 불고 누구가 가짜로 피리 불었겠는가

 

 

우의(寓意)-김시습(金時習)

뜻을 붙이다-김시습(金時習)

海棠花落午風涼(해당화낙오풍량) : 낮 바람 써늘한데 해당화 지고

簾影重重鏤小床(염영중중루소상) : 발 그림자 겹겹이 작은 상에 그늘진다

多少閑愁銷未了(다소한수소미료) : 다소간의 한가한 근심 없어지지 않으니

人間唯有酒澆腸(인간유유주요장) : 인간세상에 오직 창자 씻어주는 술이 있도다

 

 

 

만성(漫成)-김시습(金時習)

쉽게 짓다-김시습(金時習)

舊歲堂堂去(구세당당거) : 묵은 해 당당히 떠나고
流年鼎鼎來(류년정정래) : 새해는 버젓이 다가 온다
病多知止酒(병다지지주) : 병이 많아 술을 끊어야 하는데
興盡懶傳杯(흥진라전배) : 흥이 다하여 잔 돌리기도 싫어진다
蜂鬧評花市(봉료평화시) : 벌이 소란함은 꽃시장을 품평함이요
雲嬌護竹胎(운교호죽태) : 구름이 교태는 대나무 싹을 보호함이라
悠然忘世慮(유연망세려) : 멀건히 세상 근심 잊어버리고
終日看崔嵬(종일간최외) : 종일토록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노라

 

 

배견(排譴)-김시습(金時習)

비방을 물리치며-김시습(金時習)

面壁觀空我豈能(면벽관공아개능) : 달마처럼 면벽 하고 생각하는 일에 어찌 능할까만
愛閑長是伴山僧(애한장시반산승) : 한가한 것 좋아하여, 오랜동안 산승들과 친구하였다
園蔬心嫩靑堪摘(원소심눈청감적) : 밭의 채소 속이 연하고 푸르러 따내기 적합하고
山薊苖肥軟可蒸(산계적비연가증) : 산의 엉겅퀴나물 살찌고도 연하여 쪄 먹을 만하다
養拙十年同鶴化(양졸십년동학화) : 옹졸하게 살아온지 십년에 학처럼 되어
天遊九萬似鯤騰(천유구만사곤등) : 넓은 하늘 구만 리에 곤이 하늘 날아오른 듯하다
傍人莫說無功業(방인막설무공업) : 옆 사람들아, 공업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早晚雲林話葛藤(조만운림화갈등) : 조만간에 구름 숲 속에서 갈등을 말하리라

 

 

배민(排悶)-김시습(金時習)

답답한 것을 물리치며-김시습(金時習)

磊落東山一老翁(노락동산일노옹) : 화통한 동산의 한 늙은이
頹然閑臥北窓風(퇴연한와북창풍) : 쓰러진 듯 북창 바람에 한가히 눕워있다
草荒陶徑吟歸去(초황도경음귀거) : 세 갈래 길에, 풀은 거친데 귀거래사 읊으며
花落祗園悟色空(화낙지원오색공) : 지원정사에 꽃이 지니 색공임을 알겠노라
人世幾回雲雨變(인세기회운우변) : 인간 세상 몇 번이나 비구름 변하고
江山依舊畫圖中(강산의구화도중) : 강산은 옛처럼 그림 속에 있구나
日長庭院渾無事(일장정원혼무사) : 날은 긴데 빈 뜰에는 아무 일도 없고
徙倚南軒看竹叢(사의남헌간죽총) : 남쪽 마루로 옮겨 앉아 대숲을 바라보노라

 

 

 

일실(一室)-김시습(金時習)

방 하나-김시습(金時習)

茅簷疏雨滴(모첨소우적) : 초가 처마에 성긴 빗방울
一室正翛然(일실정소연) : 방 하나가 정말 서늘하구나
詩句疑催老(시구의최노) : 싯구가 늙음을 재촉하는가
松醪欲伴眠(송료욕반면) : 솔잎 술을 친구삼아 잠이 든다
固窮安老境(고궁안노경) : 궁한 것 참아 노년을 편안히 하여
護病養殘年(호병양잔년) : 병을 막아 남은 인생을 양생해보자
何以娛幽獨(하이오유독) : 무엇으로 깊은 고독을 위로하나
關門寫太玄(관문사태현) : 문 닫아 걸고 태현경이나 베껴보자

 

 

서감(書感)-김시습(金時習)

감회를 적다-김시습(金時習)

不向金門浪掛名(부향김문랑괘명) : 대궐 향해 부질없이 이름 걸지 않고
却來靑嶂解塵纓(각래청장해진영) : 물러나 청산에 돌아와 세상 구속 벗었다
花如識面逢人笑(화여식면봉인소) : 꽃은 얼굴 알아보듯 사람 만나면 웃고
鳥不知情隨意鳴(조부지정수의명) : 새는 정을 알지 못해 제멋대로 우는구나
小院樹陰靑裊裊(소원수음청뇨뇨) : 작은 집의 나무 그늘, 푸른 빛 간드러지고
滿園蔬菜綠菁菁(만원소채록청청) : 정원에 가득한 나물, 푸른 빛 짙어간다
一生可是無功業(일생가시무공업) : 내 평생 곧 아무 공적 없을 것이니
管却淸溪洗耳聲(관각청계세이성) : 맑은 시내에 귀 씻는 소리나 관리하리

 

 

자소(自笑)-김시습(金時習)

스스로 조소하다-김시습(金時習)

詩酒悠悠三十年(시주유유삼십년) : 시와 술로만 아득히 삼십 년을 지내니

傍人錯會愛逃禪(방인착회애도선) : 옆 사람도 잘못 알아 참선하기 좋아한다

靑雲亦有投閑日(청운역유투한일) : 벼슬길에도 또한 한가한 날 있을 것이나

一段淸遊恐不全(일단청유공부전) : 한 차례 맑은 놀음도 완전치 못할까 두려워라

 

 

 

궁수(窮愁)-김시습(金時習)

궁한 근심-김시습(金時習)

窮愁如絮着旋粘(궁수여서착선점) : 궁한 근심은 솜같아 착 달라붙으니
除却淸吟不可砭(제각청음부가폄) : 맑은 노래가 아니면 치료할 수 없도다
懶性已如棲木鳥(라성이여서목조) : 게으른 근성은 이미 나무에 깃든 새 같아
營生何異上竿鮎(영생하이상간점) : 살려고 애쓰니 어찌 낚시에 물린 메기와 다른가
閑刳竹筧添寒井(한고죽견첨한정) : 한가히 대나무 홈통 쪼개어 찬 우물 끌어 와서
爲折松枝補短簷(위절송지보단첨) : 소나무 가지 꺾어 잛은 처마 보충한다
閉戶著書聊自慰(폐호저서료자위) : 문 닫아걸고 책을 쓰며 그럭저럭 자위하니
一庭疏雨正廉纖(일정소우정염섬) : 뜰에 성긴 비가 막 여기저기 뿌려지는구나

 

 

 

우탄(寓歎)-김시습(金時習)

탄식에 부쳐-김시습(金時習)

堪嘆浮生早不休(감탄부생조부휴) : 한스러워라, 덧없는 삶 일찍 쉬지도 못하다니
十年書劍買閑愁(십년서검매한수) : 십년 동안 책 읽고 검술 배워도 수심만 사왔구나
老無可却靈方少(노무가각영방소) : 늙음도 물리치지 못하고, 좋은 방법도 없고
生不長延宰木幽(생부장연재목유) : 삶을 연장하지도 못하고, 무덤가 재나무는 무성하다
寵極定如芻狗擲(총극정여추구척) : 은총이 지극하여도 돼지나 개처럼 버려지고
窮來還似涸鱗游(궁래환사학린유) : 궁해진다면 마른 수레바퀴 자국에 노는 물고기 신세
人人盡說人間好(인인진설인간호) : 사람들마다 모두 인간세상 좋아고 하지만
春到人間肯暫留(춘도인간긍잠류) : 봄은 인간세상에 와서 잠시 머물다 가려하는구나

 

 

감회(感懷)-김시습(金時習)

내 마을 속 느낌-김시습(金時習)

四十三年事已非(사십삼년사이비) : 마흔 세 살 전의 일은 이미 그릇되어
此身全與壯心違(차신전여장심위) : 한창적 마음과 전적으로 틀려진 이 내 몸이여
神魚九變騰千里(신어구변등천리) : 신령한 물고기 아홉 번 변해 천리를 날으니
大鳥三年欲一蜚(대조삼년욕일비) : 큰 새가 삼 년이 되면 한 벌레가 되려 한다
洗耳更尋東澗水(세이경심동간수) : 귀를 씻고 동쪽 골짝물 찾아가
療飢薄采北山薇(요기박채북산미) : 북산의 고사리를 캐어 요기하리라
從今陟覺歸歟處(종금척각귀여처) : 이제부터 돌아가 있을 곳을 말았으니
雪竹霜筠老可依(설죽상균노가의) : 눈 속 대나무, 서리 속 죽순은 늙어 의지하리라

 

 

장세(壯歲)-김시습(金時習)

한창 나이-김시습(金時習)

壯歲功名頗自期(장세공명파자기) : 한창 나이에는 공명을 자못 바라면서
虞庭吁咈接咎夔(우정우불접구기) : 우나라 조정에서 반대하는 고요와 기처럼 하였다
老駒伏櫪心千里(노구복력심천리) : 늙은 말 마구에 엎드려, 마음은 천리를 달리고
病鶴開籠笑一枝(병학개롱소일지) : 병든 학이라도 새장 열리면, 옮겨 한 가지에서 웃는다
樗櫟不能爲世用(저력부능위세용) : 가죽나무는 세상의 쓰임이 되지 못하나
麒麟豈肯作人羈(기린개긍작인기) : 기린이야 어찌 세상의 구속을 받아들이랴
衰遲自笑狂豪甚(쇠지자소광호심) : 우습고나, 쇠하고 느려진 몸이 미친 호기 심해지나
落筆崢嶸勝舊時(낙필쟁영승구시) : 붓끝은 뺏뺏해져서 옛날보다 더 낫구나

 

 

여숙(旅宿)-김시습(金時習)

여관에 묵으며-김시습(金時習)

孤館蕭條坐夜深(고관소조좌야심) : 외로운 여관에 쓸쓸히 밤 늦도록 앉으니

一梢涼月政森森(일초량월정삼삼) : 나뭇가지 끝, 싸늘한 달빛 정녕 삼삼하여라

如何攪我西牕畔(여하교아서창반) : 어찌하여 서편 창가의 나를 흔들어

孤枕依依思不任(고침의의사부임) : 외로운 베개머리, 아쉬운 회포를 금할 길 없어라

 

 

여정(旅情)-김시습(金時習)

나그네 마음-김시습(金時習)

旅情如浪漲昭陽(여정여랑창소양) : 나그네 마음 물결같아, 소양강의 물 불어나듯

無限春愁浩莫量(무한춘수호막량) : 끝없는 봄의 수심, 측량할 수없이 넓고도 크도다

借問白鷗儂可笑(차문백구농가소) : 묻노니 흰 갈매기여, 내가 가소롭거니

與他萍草任悠揚(여타평초임유양) : 저 부평초처럼 마음대로 아득히 떠돌아 다니다니

 

 

숙촌가(宿村家)-김시습(金時習)

시골집에서 묵으며-김시습(金時習)

信宿龜山子弟家(신숙구산자제가) : 귀산의 아들 집에서 묵었는데

肆筵釃酒樂堪誇(사연시주락감과) : 잠자리 술대접, 즐거움 감출 수 없네

醉來夜寂燈花落(취래야적등화낙) : 취하여 밤은 적막하고 등불도 꺼졌는데

擊缶聲中月欲斜(격부성중월욕사) : 북치는 소리 들리는데 달이 지려하는구나

 

 

흥의관동야인숙(興義館同野人宿)-김시습(金時習)

홍의관에서 야인과 묵다-김시습(金時習)

異言憑寄譯(이언빙기역) : 야인의 통하지 않는 말 통역으로 들어보니
貉道尙夷平(맥도상이평) : 오랑캐의 도리도 편하고 태평함을 좋아한다네
皮服圍金帶(피복위김대) : 가죽옷에 금띠를 두르고
毛冠嚲玉纓(모관타옥영) : 털모자에 옥끈이 늘어져 있었다네
常爲步卒罵(상위보졸매) : 언제나 병졸들의 욕 먹으며
又喜叱呵聲(우희질가성) : 꾸짓고 호령함을 좋아하였네
夜半侏離甚(야반주리심) : 밤 깊어 어릿광대노릇 심하게 하고
張拳亦可驚(장권역가경) : 주먹을 걷어붙이니 또한 놀랄만도 하였네

 

 

숙덕천별실(宿德川別室)-김시습(金時習)

덕천 별실에서 묵으며-김시습(金時習)

客裏靑燈秋夜長(객리청등추야장) : 객지의 푸른 등불, 가을밤은 긴데

床前蟋蟀語新涼(상전실솔어신량) : 상 앞의 귀뚜라미는 새 가을을 노래한다

倚窓詩思淸於水(의창시사청어수) : 창가에 기대니 시상이 물보다 맑은데

更聽關河雁報霜(경청관하안보상) : 관하의 기러기가 서리 알리는 소리마저 들린다

 

 

도패강(渡浿江)-김시습(金時習)

패강을 지나며-김시습(金時習)

擔一詩筒荷一藜(담일시통하일려) : 시통을 짊어지고, 명아주 지팡이 메고

呵風罵雨渡關西(가풍매우도관서) : 바람을 꾸짖고 비를 욕하며 관서로 건는다

江流問我關東去(강류문아관동거) : 흐르는 강물은 나게게 묻기를, 관동 가서

幾首新詩幾處題(기수신시기처제) : 몇 수의 새로운 시를 몇 곳에서 짓겠는가를

 

 

무제(無題)-김시습(金時習)

무제-김시습(金時習)

濊邑花如海(예읍화여해) : 예읍에는 꽃이 바다 같은데

東風吹客衣(동풍취객의) : 봄바람이 나그네 옷깃에 불어온다

那堪鵑夜怨(나감견야원) : 밤새 우는 두견이 원망을 어찌 견딜까

懇道不如歸(간도부여귀) : 날새도록 <불여귀>라 간절히 알리는 것을

 

 

 

갑관(甲串)-김시습(金時習)

갑곶에서-김시습(金時習)

雙雙鳧鴨聚晴沙(쌍쌍부압취청사) : 갠 모래 위에 오리들 쌍쌍이 있고

兩岸江楓襯落霞(양안강풍친낙하) : 두 언덕, 강 단풍이 노을 가까이 진다

一葉扁舟乘我去(일엽편주승아거) : 일엽편주는 나를 태워 떠나는데

晚風撩亂白蘋花(만풍료란백빈화) : 저녁 바람은 흰 마름꽃에 요란하도다

 

 

 

숙수촌(宿水村)-김시습(金時習)

물가 마을에서 묵으며-김시습(金時習)

日暮投江岸(일모투강안) : 날 저물어 강언덕에 투숙하니
鯉風魚鼈鄕(리풍어별향) : 잉어 바람, 물고기와 자라의 고향
水禽驚客夢(수금경객몽) : 물새에 나그네 꿈 놀라 깨고
漁笛引風長(어적인풍장) : 어부의 피리소리 바람에 멀리 퍼진다
浦口牙檣立(포구아장립) : 포구에는 돛대들이 서 있고
潮頭雪浪忙(조두설랑망) : 조수의 머리에는 눈이 흰 물결 바쁘다
人家依小渚(인가의소저) : 작은 물가에 인가가 붙어있고
蒲葦咽寒螿(포위인한장) : 갈대밭 속에는 찬 쓰르라미 흐느껴운다

 

 

도승천포(渡昇天浦)-김시습(金時習)

승천포를 지나며-김시습(金時習)

浩渺煙波蘆葦潯(호묘연파로위심) : 갈대밭 물가에 넓고아득한 안개
舟人晚泊近楓林(주인만박근풍림) : 사공은 단풍숲 가까운 곳에 배를 댄다
雲生浦漵晚潮退(운생포서만조퇴) : 구름 이는 포구에 저녁 조수 밀려가고
木落洞庭秋水深(목낙동정추수심) : 나뭇잎 떨어진 동정호에 가을물 깊도다
嗚咽一聲何處笛(오인일성하처적) : 흐느끼는 피리소리 어디서 들려오는지
丁東雙杵幾家砧(정동쌍저기가침) : 쿵쿵하는 공이 소리, 어느 집 절구인가
乾坤不礙飄萍跡(건곤부애표평적) : 천지가네 막힐 것 없는 나부끼는 부평초 발길
剩得白雲千里心(잉득백운천리심) : 남은 일은 흰구름 얻어 천리를 가는 마음이도다

 

 

유절령(踰岊嶺)-김시습(金時習)

절령을 넘으며-김시습(金時習)

棧路橫如線(잔로횡여선) : 사다리길 시처럼 가로 놓이고
危峯斷復連(위봉단부련) : 높은 봉우리 끊어졌다 이어진다
層氷人馬慴(층빙인마습) : 층진 얼음 층계가 두려운 사람과 말
古樹薛蘿纏(고수설라전) : 오래된 나무에 댕댕이가 얽혀있구나
山菓經霜隕(산과경상운) : 산 과일은 서리 맞아 떨어지고
江楓向日姸(강풍향일연) : 강가의 단풍나무 해를 향해 곱구나
南歸心更切(남귀심경절) : 남쪽으로 돌아갈 마음 더욱 절실해
日下望雲邊(일하망운변) : 해 아래서 구름 가를 바라보누나

 

 

재송원(栽松原)-김시습(金時習)

소나무 심은 언덕-김시습(金時習)

去日無裝束(거일무장속) : 떠나던 날에 행장 없었는데
來時只浪吟(래시지랑음) : 돌아올 때는 다만 콧노래 뿐
浿江秋水闊(패강추수활) : 패강의 가을물 불어나 있고
香岳暮雲深(향악모운심) : 묘향산에, 저문 구름 깊도다
蒼海一鵬志(창해일붕지) : 푸른 바다 나는 붕새의 뜻
碧山千里心(벽산천리심) : 푸른 산에 담은 천리 먼 마음
歸歟何處是(귀여하처시) : 돌아갈까, 어느 곳이 옳은가
楓嶺聳崟岑(풍령용음잠) : 풍악산 고개에 치솟은 험한 봉우리

 

 

숙개천객관(宿价川客館)-김시습(金時習)

개천 객관에 묵으며-김시습(金時習)

峨眉山月小(아미산월소) : 아미산 작은 달
影落价川溪(영낙개천계) : 개천계에 떨어진 그림자
庭畔三更露(정반삼경로) : 뜰에는 한밤의 이슬
天邊一雁嘶(천변일안시) : 하늘 가에, 기러기 울음소리
費吟供笑語(비음공소어) : 읊은 시 웃음거리 될까
狎韻整高低(압운정고저) : 압운의 고저를 조절해 본다
明日安州路(명일안주로) : 내일 안주로 가는 길
遙岑與樹齊(요잠여수제) : 산봉우리, 나무와 가지런하리라

 

 

향동강(向東江)-김시습(金時習)

동강을 향하면서-김시습(金時習)

季鷹今日向江東(계응금일향강동) : 계응이 오늘 강동으로 향하는데

千里蕭蕭蘆葦風(천리소소로위풍) : 천리길 쓸쓸한데 갈대에 바람 인다

客裏情懷何渺渺(객리정회하묘묘) : 나그네 마음 속 정회는 얼마나 아득한지

靑山無數白雲中(청산무수백운중) : 청산은 무수히도 흰구름 속에 있구나

 

 

추령(槌嶺)-김시습(金時習)

추령에서-김시습(金時習)

逕入山腰石角危(경입산요석각위) : 좁은 길 산허리로 들고 돌부리 위태한데
野花初謝子纍纍(야화초사자류류) : 들꽃이 지기 시작하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十年往事夢初覺(십년왕사몽초각) : 지난 십년 일들 꿈속에서 처음 깨닭으니
百歲風光梁未炊(백세풍광량미취) : 백년 광풍에 짓는 조밥은 아직 익지도 않았구나
雙燕引雛低掠草(쌍연인추저략초) : 한 쌍의 제비 새끼 데리고 나직이 풀섶을 스치고
片雲拖雨恰催詩(편운타우흡최시) : 조각구름 비 몰고와 시 짓기를 재촉한다
登高可得槌千恨(등고가득추천한) : 높은 데 올라 천 가지 한을 망치질할 수 있다면
願上峯頭一展眉(원상봉두일전미) : 봉우리 높은 곳에 올라 눈썹 한 번 펴보고 싶구나


 

잠실(蠶室)-김시습(金時習)

잠실에서-김시습(金時習)

十年爲客走西東(십년위객주서동) : 십년 나그네 신세, 동서로 분주하여

身世都如陌上蓬(신세도여맥상봉) : 내 신세 두렁길의 쑥대같이 되었구나.

行路世途俱嶮巇(행로세도구험희) : 살아가는 세상길, 모두가 험난하여

不如無語嗅花叢(부여무어후화총) : 말없이 꽃송이들 향기 맡음만 못하구나.

 

 

고탄(古呑)-김시습(金時習)

고탄에서-김시습(金時習)

渺渺靑山遠(묘묘청산원) : 아득히 청산은 먼데
行行綠水濱(행행록수빈) : 가고 또 가도 푸른 물가
高峯留晚照(고봉류만조) : 높은 봉우리에 저녁 해
小路礙荒榛(소로애황진) : 작은 길, 개암나무에 막힌다
萬里乾坤闊(만리건곤활) : 만리나 되는 천지는 광활한데
平生落魄人(평생낙백인) : 평생을 불우하게 산 사람이로다
始知爲客樂(시지위객락) : 비로소 알았다네, 나그네 즐거움
不及在居貧(부급재거빈) : 가난하게 집에서 사는 것만 못함을

 

 

감천(甘泉)-김시습(金時習)

감천에서-김시습(金時習)

客路雙鬢星(객로쌍빈성) : 나그네 길에 두 살쩍 희어지고
長亭復短亭(장정부단정) : 긴 역정에도 짧은 역정 거쳐왔다
望雲何縹緲(망운하표묘) : 구름 바라보면 어찌 그리도 아득하고
顧影大伶俜(고영대령빙) : 그림자 돌아보면 너무나도 고독하도다
古柳千絲碧(고류천사벽) : 오래된 버드나무, 천 가닥 실처럼 푸르고
遙岑一髮靑(요잠일발청) : 멀리 산봉우리는 한가닥 터럭처럼 푸르다
還嗟人世事(환차인세사) : 그러나 탄식하노니, 사람의 세상 일이여
誰識屈原醒(수식굴원성) : 그 누가 굴원이 깨어있는 사람인 줄 알아주나

 

 

가현(椵縣)-김시습(金時習)

가현에서-김시습(金時習)

驟雨暗前村(취우암전촌) : 소나기에 앞 마을 어두워지고
溪流徹底渾(계류철저혼) : 흐르는 개울은 밑바닥까지 흐려진다
疊峯遮客眼(첩봉차객안) : 첩첩한 산봉우리에 길손의 눈 가리고
一徑入溪源(일경입계원) : 지름길 한 줄기 개울 언덕으로 통한다
靑草眠黃犢(청초면황독) : 푸른 풀에는 누런 송아지 잠들어있고
蒼崖叫白猿(창애규백원) : 푸른 언적에서 흰 원숭이 울부짖는다
十年南北去(십년남북거) : 십년간 남북으로 다녀봡지만
歧路正銷魂(기로정소혼) : 갈림길 만나니 또 초조한 넋이 되노라

 

 

가평현(加平縣)-김시습(金時習)

가평현에서-김시습(金時習)

老樹靄如雲(노수애여운) : 오래된 나무에 구름같은 아지랑이
重圍古縣門(중위고현문) : 옛고을의 문을 거듭 둘러싸는구나
有人耕綠野(유인경록야) : 푸른 들에 밭 가는 사람
無犬吠黃昏(무견폐황혼) : 황혼에 짖는 개 하나 없구나
樵逕依山麓(초경의산록) : 나무꾼의 길은 산기슭에 나 있고
柴扉傍水村(시비방수촌) : 사립문은 물가 고을에 이웃해 있다
吏眠山鳥語(이면산조어) : 아전은 잠들어 있고 새만 우는데
風景似桃源(풍경사도원) : 풍경이 무릉도원같은 별천와 같도다

 

 

수파령(水波嶺)-김시습(金時習)

수파령에서-김시습(金時習)

小巘周遭水亂洄(소헌주조수란회) : 작은 산 두루 만나고, 물은 어지러이 돌고

千章喬木蔭巖隈(천장교목음암외) : 일천 그루 큰 나무로 그늘진 바위 모퉁이

山深不見人蹤跡(산심부견인종적) : 산이 깊어 사람의 자취 보이지 않고

幽鳥孤猿時往來(유조고원시왕래) : 깊숙한 산새 외로운 원숭이 때때로 오고간다

 

 

무진(毋津)-김시습(金時習)

무진에서-김시습(金時習)

毋津初解纜(무진초해람) : 무진에서 닻줄을 풀자
楊柳晚潮生(양류만조생) : 버드나무로 저녁 밀물이 인다
淡淡沙汀遠(담담사정원) : 담담한 모랫사장 아득하고
茫茫煙樹平(망망연수평) : 망망한 안개 낀 나무 평평하도다
閑鷗分渚泊(한구분저박) : 한가한 갈매기 물가를 나눠 쉬고
明月共船行(명월공선행) : 밝은 달은 배와 같이 옮겨 간다
渺渺水雲外(묘묘수운외) : 아득히 물과 구름 밖으로
一身歸去輕(일신귀거경) : 돌아가는 이 한 몸, 마음이 가볍다

 

 

소양강(昭陽江)-김시습(金時習)

소양강에서-김시습(金時習)

渡頭煙暝夕陽波(도두연명석양파) : 안개 낀 나룻가 어둑하고, 석양 낀 물결

一葉扁舟一棹歌(일엽편주일도가) : 아득히 일엽편주에서 들려오는 뱃노래 소리.

鷗鷺不管人世變(구로부관인세변) : 갈매기와 백로는 인정세태 변화에 아랑곳없이

雙雙飛過上灣渦(쌍쌍비과상만와) : 쌍쌍이 날아서 물굽 소용돌이를 지나가는구나.

 

 

우두원(牛頭原)-김시습(金時習)

우두원에서-김시습(金時習)

牛頭原上暮煙收(우두원상모연수) : 우두원에 저문 연기 걷히고
萬頃黃雲麥隴秋(만경황운맥롱추) : 넓은 들판 누런 구름, 보리두렁 가을이라
白鳥一雙飜落日(백조일쌍번낙일) : 흰 새 한 쌍이 지는 해에 날아간다
蒼波十里送歸舟(창파십리송귀주) : 십리 긴, 푸른 물결에 떠나는 배 보내니
江山處處詩添興(강산처처시첨흥) : 강산 여기저기에 시 짓기에 더욱 흥겨웁고
風月年年酒解愁(풍월년년주해수) : 해마다 풍월은 술 마시어 근심을 풀어준다
野水斷橋村逕曲(야수단교촌경곡) : 다리 끊긴 들판 물에 시골 길은 굽어있고
牧童相喚穩騎牛(목동상환온기우) : 목동은 서로 부르며 평온히 소 타고 돌아온다

 

 

청평산(淸平山)-김시습(金時習)

청평산에서-김시습(金時習)

淸平山色映人衣(청평산색영인의) : 청평산 맑은 산빛, 사람옷을 비추고
慘淡煙光送落暉(참담연광송낙휘) : 참담한 연기 빛, 지는 햇빛 보냈구나
巖溜洒空輕作霧(암류쇄공경작무) : 바위에 떨어진 물 공중을 씻어 안개 되고
春蘿拱木碧成幃(춘라공목벽성위) : 봄 댕댕이는 나무를 둘러 푸른 장막 되었구나
玉沙瑤草人間遠(옥사요초인간원) : 옥 모래, 진기한 풀에 인간세상 멀리하고
琪樹瓊花世慮微(기수경화세려미) : 좋은 나무, 옥같은 꽃에 세상근심 적어진다
只好誅茅棲絶頂(지호주모서절정) : 다만 띠풀 베어내고 높은 언덕에 집을 짓고
從今嘉遯莫相違(종금가둔막상위) : 이제부터 숨어서 사는 기쁨을 어기지 않으리라

 

 

수초참(水草站)-김시습(金時習)

수초참에서-김시습(金時習)

白石蒼蒼惹綠苔(백석창창야록태) : 창창한 흰 바위에 푸른 이끼 일고

碧峯高樹路崔嵬(벽봉고수로최외) : 푸른 산봉우리 큰 나무 길마저 험하도다

深深煙壑無人迹(심심연학무인적) : 깊고깊은 안개 자욱한 골짝에 인적 없고

時有山花向我開(시유산화향아개) : 때때로 산꽃들이 나를 향해 피어나는구나

 

 

조령촌(槽嶺村)-김시습(金時習)

조령촌에서-김시습(金時習)

山路險且脩(산로험차수) : 산길은 험하고도 길고
山雲濃欲滴(산운농욕적) : 산 구름은 짙어 물방울 진다
陰陰老木中(음음노목중) : 노목 안은 어둑하고
日暮杜鵑哭(일모두견곡) : 해는 저무는데 두견새 운다
隔林叱犢聲(격림질독성) : 숲 건너, 소 모는 소리 들리고
人家負林麓(인가부림록) : 사람 사는 고을은 산기슭 업고 있구나
稚子語籬根(치자어리근) : 울타리 아래선 아이들 종알대고
籬畔野花落(이반야화낙) : 들꽃은 울타기 가에 떨어지고 있다
裊裊炊煙起(뇨뇨취연기) : 밥짓는 연기 모락모락 올라가고
林深山路黑(임심산로흑) : 깊은 숲, 산길은 어두워지는구나
坐久主人來(좌구주인래) : 오래 앉아있으니 주인이 돌아오는데
溪村山月白(계촌산월백) : 개울가 마을에는 달빛이 밝기만 하다

 

 

적성령(狄城嶺)-김시습(金時習)

적성령-김시습(金時習)

嵯峨山路險(차아산로험) : 높고높은 산길은 험하고
格磔有鳴禽(격책유명금) : 찍찍 우는 새들 이곳에 있다
殘照千峯外(잔조천봉외) : 일천 산봉우리 밖에 지는 해 비치고
孤鴻一片心(고홍일편심) : 외 기러기 같은 한 조각 마음이로다
行行溪水近(행행계수근) : 걷고 또 걸으니 개울물 가깝고
去去嶺雲深(거거령운심) : 가도 또 가지 고개 위 구름은 깊어진다
林壑吾生願(림학오생원) : 숲 속 계곡이 내 삶의 소원이라
塵緣不可侵(진연부가침) : 세상살이 인연이야 침범하지 못하리라

 

 

도중(途中)-김시습(金時習)

도중에-김시습(金時習)

野逕高低曲轉蛇(야경고저곡전사) : 높고 낮은 들길은 뱀처럼 굽어있고
深林日暮有鳴鴉(심림일모유명아) : 저무는 깊은 숲에 까마귀 우는 소리 들리네
靑山不管是非事(청산부관시비사) : 청산은 시비의 일을 가리지 않고
白鳥自占深淺沙(백조자점심천사) : 백조는 저마다 깊고 앝은 모래벌 차지하였네
十里尖峯濃似畫(십리첨봉농사화) : 십리 이은 뽀죡한 산봉우리 그림같고
一溪流水碧於紗(일계류수벽어사) : 개울에 흐르는 물 비단보다 푸르다네
紅塵三尺君休返(홍진삼척군휴반) : 홍진이 석자나 되니 그대는 돌아가지 말지니
縱是明珠也有瑕(종시명주야유하) : 비록 명주라도 티가 있을 것이라네

 

 

도점(陶店)-김시습(金時習)

옹기점-김시습(金時習)

兒打蜻蜓翁掇籬(아타청정옹철리) : 아이는 잠자리 잡고, 노인은 울타리 고치는데

小溪春水浴鸕鶿(소계춘수욕로자) : 작은 개울 흐르는 봄물에 물새가 먹을 감는다

靑山斷處歸程遠(청산단처귀정원) : 청산 끊어진 곳에서, 돌아 갈 길은 아득한데

橫擔烏藤一个枝(횡담오등일개지) : 검은 등나무 덩굴 한 가지가 비스듬히 메어있다

 

 

포천현(抱川縣)-김시습(金時習)

포천현에서-김시습(金時習)

弊邑民居少(폐읍민거소) : 흩어진 고을 사람은 적고
荒村樹色稠(황촌수색조) : 황량한 마을 나무색은 짙어라
好風經麥壟(호풍경맥롱) : 부드러운 바람 보리이랑 지나고
細雨過蘋洲(세우과빈주) : 보슬비는 마름 뜬 못섬을 지나간다
逕小人蹤斷(경소인종단) : 길 좁아 사람 자취 끊어지고
山回石洞幽(산회석동유) : 산이 둘러있어 돌골짝 깊숙하구나
去去峯如畫(거거봉여화) : 떠나갈수록 산봉우리 그림 같으니
行行可解愁(행행가해수) : 가고 또 가면 나의 수심 풀어지리라

 

 

기석령(祈石嶺)-김시습(金時習)

기석령에서-김시습(金時習)

山泉石齧足(산천석설족) : 산의 샘, 돌은 발에 걸리고
草露沾人衣(초로첨인의) : 풀잎 이슬이 사람옷을 적신다
長歌行路難(장가행로난) : <행로난>을 길게 부르며
欲采西山薇(욕채서산미) : 서산 고사리를 캐어보련다
世故何偪側(세고하핍측) : 세상일 어찌 그리도 각박한지
雲林無是非(운림무시비) : 구름 낀 숲엔 시비가 없도다
何如拂袖去(하여불수거) : 어떠한가, 소매 떨쳐버리고
穩臥靑山扉(온와청산비) : 푸른 산 작은 집에 편히 누워사는 삶

 

 

조행(早行)-김시습(金時習)

일찍 떠나며-김시습(金時習)

曉鷄鳴喔咿(효계명악이) : 새벽닭 한참을 우는데
裝束向何之(장속향하지) : 여장을 챙기고 어디로 갈까
黯淡千山曉(암담천산효) : 옅은 어둠에 온산은 새벽
凄涼一首詩(처량일수시) : 처량히 한 수 시를 읊어본다
殘星隨月落(잔성수월낙) : 남은 별은 달 따라 지고
宿鳥訝人移(숙조아인이) : 자던 새도 사람에 놀라 옮아간다
客路身多病(객로신다병) : 나그네 길에 병 많은 몸
無端詠楚辭(무단영초사) : 하염없이 <초사>를 읊어본다

 

 

숙산촌(宿山村)-김시습(金時習)

산촌에 묵으며-김시습(金時習)

雨歇千山暮(우헐천산모) : 비 개니 온 산이 저물고
煙生碧樹間(연생벽수간) : 푸른 숲에선 연기가 오른다
溪橋雲冉冉(계교운염염) : 개울 다리에 구름이 뭉게뭉게
野逕草蔓蔓(야경초만만) : 들길에 풀이 덩굴져 있구나
世事渾無賴(세사혼무뢰) : 세상일 모두 믿을 수 없으니
人生且自寬(인생차자관) : 사람의 세상살이 스스로 참아야지
何如拂塵迹(하여불진적) : 어떠할까, 세상 먼지 떨어버리고
高嘯臥林巒(고소와림만) : 휘바람 높이 불며 산 속 숲에 누운 삶

 

 

보제전음(普濟餞飮)-김시습(金時習)

보제원에서 작별하며 술마시다-김시습(金時習)

東風碧草雨新沐(동풍벽초우신목) : 푸른 풀에 봄바람 불고, 비에 씻겨 새롭고
聯騎公子餞行客(연기공자전행객) : 연이어 나온 말 탄 공자들이 가는 손을 작별한다
紅叱撥嘶嚼玉勒(홍질발시작옥륵) : 홍질발 말들이 옥자갈 씹어대고
金叵羅飛泛春色(김파라비범춘색) : 금파라 술잔은 봄빛 띄워 보낸다
鵾絃鐵撥響驪駒(곤현철발향려구) : 고니줄 거문고를 쇠채로 타니 이별의 노래 울리고
憑陵大叫呼五白(빙릉대규호오백) : 주사위로 <오>나오라, <백>나오라 크게 소리쳐 부른다
宴罷徘徊不忍別(연파배회부인별) : 잔치가 끝나도 서성대며 차마 떠나지 못하는데
女墻月上昏鴉集(여장월상혼아집) : 얕은 담장에 달 떠오르고 저녁 까마귀 모여든다

 

 

왕심연허(枉心煙墟)-김시습(金時習)

왕심 연기나는 곳-김시습(金時習)

依依墟里靑煙生(의의허리청연생) :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에 파란 연기 나고
桑柘陰陰鷄犬鳴(상자음음계견명) : 산뽕나무 아래로 닭과 개가 울어대는구나
十里麥壟一樣綠(십리맥롱일양록) : 십리 보리밭 이랑이 모두가 파랗고
幾家繅車三兩聲(기가소거삼양성) : 몇 집에서, 두세 번 울리는 고치켜는 소거차 소리
梨花落處白酒香(이화낙처백주향) : 배꽃 떨어지는 곳에 흰 술 익는 향기
榕葉蔭中黃鸝鳴(용엽음중황리명) : 용나무 그늘 속에 들이는 꾀꼬리 울음소리
老婦城裏賣菜還(노부성리매채환) : 늙은 부인 성안에서 채소 팔고 돌아오니
兒童喜迓跳柴荊(아동희아도시형) : 아이들은 기뻐 맞으며 사립문으로 달려간다

 

 

 

제단녹무(祭壇綠蕪)-김시습(金時習)

제단에 푸른 풀-김시습(金時習)

東城門外松萬株(동성문외송만주) : 동문 밖에는 소나무 일만 그루
松下祭壇多綠蕪(송하제단다록무) : 소나무 아래 제단에 우거진 푸른 풀
苞桑枝下兔領兒(포상지하토령아) : 뽕나무 가지 아래는 토끼가 새끼 데리고 있고
淺草叢邊烏哺雛(천초총변오포추) : 얕은 풀섶에는 까마귀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인다
無數野花自開落(무수야화자개낙) : 무수한 들꽃은 저절로 피고 지고
不盡細藤相緣扶(부진세등상연부) : 한 없이 가는 덩굴은 서로 얽혀 붙어있도다
點也情懷莫之禁(점야정회막지금) : 증점이여, 그대의 회포 금할 길 없었으니
風乎竟日空踟躕(풍호경일공지주) : 바람이 이는구나, 종일토록 헛되이 망설였다오

 

 

고암니활(鼓巖泥滑)-김시습(金時習)

고암의 진흙 미끄러워-김시습(金時習)

稻畦雨足水亂漂(도휴우족수란표) : 논두둑에 흡족한 비, 물은 넘쳐 흘러
沙石塡街浮溪橋(사석전가부계교) : 모래와 돌이 거리에 차고 개울다리 뜬다
濁浪汨汨沒馬蹄(탁랑골골몰마제) : 흐린 물결 출렁이고 말발굽도 묻히고
靑泥滑滑齊牛腰(청니골골제우요) : 푸른 진흙 끄꺼러워 소 허리에 닿는다
燕子銜將喜輕趫(연자함장희경교) : 제비들 먹이 물고 가볍게 날아다고
蛙兒鼓吹恣騰跳(와아고취자등도) : 개구리들 울면서 마음대로 뛰어다닌다
世路宦途亦如此(세로환도역여차) : 이 세상 벼슬길도 이와 같으니
何當一洗令其澆(하당일세령기요) : 무슨 방법으로 한번 씻어 갈아낼 수 있을까

 

 

입석맥랑(立石麥浪)-김시습(金時習)

입석에 보리물결-김시습(金時習)

萬頃芃芃含淺靑(만경봉봉함천청) : 넓은 들판 수북히 파란빛 머금어
綠波初漲雲浮汀(록파초창운부정) : 푸른 물은 불어나고 물가엔 구름 비친다
望中不盡翳遠野(망중부진예원야) : 눈길 가는 곳 끝없고 먼 들판 어둑하나
割後無痕乾滄溟(할후무흔건창명) : 보리 다 벤 뒤엔 흔적 없는 마른 바다 되리라
野雉藏深香穗潤(야치장심향수윤) : 들꿩은 깊이 숨고, 향기로운 벼이삭 윤기나고
雛燕掠去輕花零(추연략거경화령) : 새끼 제비 스쳐가니 가벼운 꽃 떨어진다
不用鼓枻遡牛渚(부용고설소우저) : 배를 저어 소내로 거슬러 갈 필요 없으니
眞一一勺通神靈(진일일작통신영) : 참으로 한 구기이면 진령에도 통하리로다

 

 

금계어약(金溪魚躍)-김시습(金時習)

금계에 물고기 뛰놀고-김시습(金時習)

圉圉洋洋吹細波(어어양양취세파) : 느릿느릿, 펄펄 가는 물결 치며
兩兩相戲遊盤渦(양양상희유반와) : 둘씩둘씩 희롱하며 여울진 물에 논다
有時聚藻飜金尺(유시취조번김척) : 때때로 마름에 모여 금빛 몸 들척이니
忽沫淸瀾拋玉梭(홀말청란포옥사) : 갑자기 맑은 포말 일어 옥같은 베틀북 던진다
綠荇深處避人影(녹행심처피인영) : 사람 그림자 피하여 푸른 미나리 속에 숨고
碧草磯邊依蟹窠(벽초기변의해과) : 푸른 풀 낚시터에서는 게 구멍에 숨는다
知汝得所濠梁間(지여득소호량간) : 너가 해자 다리 사이에서 얻는 줄, 내 안다마는
香餌微緡其如何(향이미민기여하) : 가는 줄에 매인 향기나는 낚시밥, 이를 어찌하나

 

 

노원초색(蘆原草色)-김시습(金時習)

노원의 풀빛-김시습(金時習)

長堤細草何毿毿(장제세초하삼삼) : 긴 뚝길 풀빛 어찌 그리도 짙은가
萋萋風際香馣馣(처처풍제향암암) : 수북한 곳에 바람 이니 향기가 그윽하다
江淹別浦色愈碧(강엄별포색유벽) : 강엄이 이별하던 갯포구 더욱 푸르고
李白漢曲思何堪(이백한곡사하감) : 이태백은 한강 구비 생각을 어찌 견딜까
蒙茸壟上沒黃犢(몽용롱상몰황독) : 몽실몽실한 언덕 위에 송아지 누워있고
蔥蒨橋邊含翠嵐(총천교변함취람) : 검푸른 다리 가에는 푸른 아지랑이 끼고
惹得王孫多少恨(야득왕손다소한) : 왕손의 얼마나 많은 한을 자아냈던가
淡煙疏雨懷江南(담연소우회강남) : 담담한 연기 섞인 비에 강남쪽이 생각난다

 

 

압봉노화(鴨峯路花)-김시습(金時習)

압봉 가는 길의 꽃-김시습(金時習)

春山寂寂春鳥啼(춘산적적춘조제) : 봄산은 적막한데 새는 울고
竹杖芒鞋遊山蹊(죽장망혜유산혜) : 대지팡이 짚신 신고 산길을 노닌다
萬點燕脂綴芳叢(만점연지철방총) : 만점 연지자국 꽃떨기에 찍혀있고
數點紅雨流寒溪(수점홍우류한계) : 몇 방울 붉은 비, 찬 개울에 흘러간다
謝豹哀鳴亂山疊(사표애명란산첩) : 어지러운 첩첩 산에 두견은 슬피 울고
雄蜂狂唼繁枝低(웅봉광삽번지저) : 수벌은 비친 듯, 휘늘어진 가지에 입맞춘다
朗吟不覺攪花影(양음부각교화영) : 낭낭히 읊음에 꽃그늘 흔들리는 줄 모르고
香霧霏霏行徑迷(향무비비행경미) : 향기로운 안개 뭉개뭉개, 가늘 길 잃겠구나

 

 

고풍십구수1(古風十九首1)-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山中何所有(산중하소유) : 산 속에 무엇인 있을까
白雲縈長松(백운영장송) : 흰 구름 높은 소나무에 얽혀있네
只可尋常親(지가심상친) : 다만 서로 친밀할 뿐
不可追其蹤(부가추기종) : 가히 그 종적을 추종할 수 없다네
物外託交契(물외탁교계) : 세상 밖과 우정을 맺었으나
始終如駏蛩(시종여거공) : 시종일관 거허와 공공과 같다네
變化頗閑妙(변화파한묘) : 변화가 자못 한가하고 기묘해서
可以怡心胸(가이이심흉) : 마음 속을 편안하게 해준다네

 

 

고풍십구수2(古風十九首2)-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上古結繩治(상고결승치) : 상고에 노끈 맺어 정치할 때
民物何煕皥(민물하희호) : 백성들은 어찌 그리도 밝았는가
天地相交泰(천지상교태) : 하늘과 땅 서로 태평했고
日星垂顥顥(일성수호호) : 해와 별 밝고 밝은 빛 드리우고
聖人繼天極(성인계천극) : 성인들은 천극을 이어받아
從容履中道(종용리중도) : 조용하게 중도를 밟아왔도다
裁成而輔相(재성이보상) : 보상의 도음으로 일을 이루어
參贊乎天造(삼찬호천조) : 하늘의 조화에 참여하였왔어라

 

 

고풍십구수3(古風十九首3)-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虞唐法天運(우당법천운) : 우당과 당요는 천운 본받아
玉衡齊七政(옥형제칠정) : 옥형으로 칠정을 가지런히 했네
都兪一堂上(도유일당상) : 한 자리에 모여 모두 찬성하고
未施民先敬(미시민선경) : 미처 시행하지 않아도 백성이 공경했네
奈何周衰後(내하주쇠후) : 어찌하여 주나라 쇠멸한 뒤
貿貿趨華競(무무추화경) : 몽매하게도 사치를 다투었는가
素王如不作(소왕여부작) : 소왕, 공자님이 작위하지 않았다면
誰能繼前聖(수능계전성) : 누가 능히 옛 성인을 계승하였겠는가

 

 

고풍십구수4(古風十九首4)-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闊袖曳長裾(활수예장거) : 넓은 소매, 긴 옷깃 끌고 다니신
巍巍東魯翁(외외동로옹) : 높고도 높은 동 노나라 어른이시여
率其三千徒(솔기삼천도) : 삼천 제자 거느리고 다니시며
啓迪民顓蒙(계적민전몽) : 백성의 어리고 어두운 곳 열어주셨네
彈琴杏壇下(탄금행단하) : 살구나무 아래서 거문고 타며
郁郁揚儒風(욱욱양유풍) : 성스럽게 유학의 기풍 더날렸다네
吁嗟道不行(우차도부행) : 아, 그 도가 실행되지 못하여
擬欲浮海東(의욕부해동) : 바다에 배 띄우고 바다 동쪽 가려했다네

 

 

고풍십구수5(古風十九首5)-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鳳兮何德衰(봉혜하덕쇠) : 봉황이여, 어찌 덕이 쇠하였는가
麟也被西狩(인야피서수) : 기린도 서쪽에서 잡히었구나
列國競呑噬(열국경탄서) : 열국이 다투어 빼앗아 삼키며
紛紛相格鬪(분분상격투) : 분분하게 서로 싸우는구나
仁義反爲迂(인의반위우) : 어짐과 의리는 도리어 우활하다 하고
利名爭輻輳(이명쟁복주) : 명예와 이익을 다투어 모여드는구나
聖賢雖復起(성현수부기) : 성현으로 누가 다시 일어나
委靡莫能救(위미막능구) : 쇠퇴해짐을 구해낼 수는 없는가
所以狂接輿(소이광접여) : 그러므로 미치광이 노릇하는 접여는
歌山木自寇(가산목자구) : 산의 나무들 스스로 난리라 노래했구나

 

 

고풍십구수6(古風十九首6)-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皤皤柱下史(파파주하사) : 늙은 백발로 기둥아래 사관
出關逢尹喜(출관봉윤희) : 함곡관에 나가다가 윤회를 만났네
授以道德經(수이도덕경) : 도덕경을 가르쳐 주고서
仙遊終不死(선유종부사) : 신선이 되어 놀아 죽지를 않았네
至言和天倪(지언화천예) : 하늘과 함께 하리라 단언하고
高談亂朱紫(고담란주자) : 고상한 말로 주색과 자색빛 어지럽혔네
大道自此歧(대도자차기) : 큰 진리가 그때부터 나누어져
紛然異端起(분연이단기) : 분분하게 이단들이 일어났다네

 

 

고풍십구수7(古風十九首7)-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始皇倂六國(시황병육국) : 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하니
時號爲強秦(시호위강진) : 그 때는 강진이라 국호를 지었네
焚蕩先王書(분탕선왕서) : 선왕의 글들을 모두 태워버리니
四海皆鼎新(사해개정신) : 세상이 모두가 새롭게 바뀌었다네
自稱始皇帝(자칭시황제) : 스스로 시황제라 부르고
率土皆稱臣(솔토개칭신) : 땅을 다 가지고 천하 백성을 신하 삼았네
防胡築長城(방호축장성) : 오랑캐 막으려 긴 성을 쌓아두고
望海勞東巡(망해로동순) : 바다를 바라보며 수고로이 동쪽을 다녔네
驪山宮闕壯(여산궁궐장) : 여산의 궁궐들 장대하여
複道橫高旻(복도횡고민) : 복도는 높은 하늘로 가로질러 있었네
楚人一炬後(초인일거후) : 초나라 사람 횃불 한 번 들고 일어난 뒤
空餘原上塵(공여원상진) : 언덕 위에는 흙먼지만 헛되이 남아있다네

 

 

고풍십구수8(古風十九首8)-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隆準隱芒碭(융준은망탕) : 코 높은 유방이 망탕산에 숨었는데
雲物騰蒼空(운물등창공) : 상서로운 구름이 푸른 하늘에 떠 올라 있었네
竟斬白帝子(경참백제자) : 끝내는 백제의 아들 베어버리고
巍峨坐法宮(외아좌법궁) : 의젓하게 법구에 앉았도다
三章除秦苛(삼장제진가) : 세 가지 법 조항으로 진나라 악법 없앴으니
炎祿何渢渢(염록하풍풍) : 한나라 왕조의 운수가 어이 그리 길었던가
皇天無私阿(황천무사아) : 저 하늘님 공평하고 사심이 없어시어
有德必立功(유덕필립공) : 덕행이 있으면 반 반듯이 공을 세우게 하심이라


 

고풍십구수9(古風十九首9)-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休言莽卓姦(휴언망탁간) : 왕망과 동탁, 간흉하다 말하지 말라
便是人主頑(편시인주완) : 이는 곧 임금이 못나서 그러하니라
勿言房杜良(물언방두양) : 방씨와 두씨, 현량하다 말하지 말라
便是君德昌(편시군덕창) : 이는 곧 임의 덕행이 창성해서 이니라
源淸流益潔(원청류익결) : 근원이 맑으면 흐르는 물도 깨끗하고
鑑空照逾徹(감공조유철) : 거울이 깨끗해야 잘비추어 지느니라
頃刻如少弛(경각여소이) : 잠시간 조금이라도 해이하면
危亡從此始(위망종차시) : 위태하고 망하는 일이 여기서 시작된다

 

 

고풍십구수10(古風十九首10)-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人性無不善(인성무부선) : 사람의 성품은 선하지 않음 없으니
可以爲堯舜(가이위요순) : 요임금, 순임금처럼 될 수도 있도다
只緣氣稟拘(지연기품구) : 다만 기품에 구속되어서
有賢愚逆順(유현우역순) : 현명하고 어리석고 거스러고 적응하니
聖人拔乎萃(성인발호췌) : 성인은 많은 사람 중에 뛰어나시어
道之以忠信(도지이충신) : 충실과 신념으로 이끌어주셨다
行之則貞吉(행지칙정길) : 그것을 행하면 곧고 길한 것이 되나
否之則悔吝(부지칙회린) : 그것을 부정하면 후회하고 한탄하게 된다

 

 

고풍십구수11(古風十九首11)-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上智不思得(상지부사득) : 상급의 지혜자는 생각지 않아도 알고
不勉而中道(부면이중도) : 힘쓰지 않아도 진리에 맞게 된다네
困知親善人(곤지친선인) : 곤난한 지식자는 착한 사람과 친하여
力行而自保(역행이자보) : 힘써 행하고야 스스로를 보전한다네
下愚終不移(하우종부이) : 하급의 어리석은 이는 고치지 못하여
頑嚚多草草(완은다초초) : 어리석고 완고하니 초초함이 많도다
禮樂與刑政(예락여형정) : 예악과 형정이 생겨난 것은
從此而肇造(종차이조조) : 이런 이유에서 발단이 시작되었다네

 

 

고풍십구수12(古風十九首12)-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大道何寂寥(대도하적요) : 큰 진리가 어찌 그리도 적막하고
鳳兮何德衰(봉혜하덕쇠) : 봉황새여, 어찌 덕망이 쇠하는가
往者不可諫(왕자부가간) : 지나간 것은 간할 수 없지만
來者猶可追(내자유가추) : 오는 것은 아직 고칠 수 있도다
携筇泣路歧(휴공읍로기) : 지팡이 짚고 갈림길에서 우나니
踽踽何所之(우우하소지) : 쓸쓸히 어디로 가야하는가
聖人如復起(성인여부기) : 성인이 다시 일어난다면
敷衽陳其辭(부임진기사) : 옷깃 여미고 그 말씀 다시 여쭈련다

 

 

고풍십구수13(古風十九首13)-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嗟嗟均賦命(차차균부명) : 아, 처음 부여받은 생명은 같았는데
愚智涇渭分(우지경위분) : 지인과 우인이 경수와 위수처럼 나뉘었구나
擾擾百年內(요요백년내) : 어지러운 인생 백년 동안에
何足以云云(하족이운운) : 어찌 족히 이러쿵저러쿵하겠는가
不如脫屣去(부여탈사거) : 차라리 못하리라, 신 벗어던지고 떠나
僻處遠囂紛(벽처원효분) : 궁벽한 곳에서 시끄러운 일 멀리하는 것보다
掬水可以飮(국수가이음) : 물 움켜 마실 수 있으며
煮藜充飢窘(자려충기군) : 나물을 삶아 주린 창자 채울 수 있으리라
胡爲乎遑遑(호위호황황) : 어찌하여 급하고 급하게도
與世相矛盾(여세상모순) : 세상과 함께하여 모순되게 살겠는가

 

 

고풍십구수14(古風十九首14)-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君子無所思(군자무소사) : 군자는 마음에 둔 것 없으니
所思期保全(소사기보전) : 마음에 두는 일은 몸 보전하는 일
碌碌逐風塵(록록축풍진) : 어리석게 풍진 세상 쫓아다님은
不如歸林泉(부여귀림천) : 차라리 자연으로 돌아감만 못하다네
木以直而戕(목이직이장) : 나무는 곧아서 죽임을 당하고
膏以明而煎(고이명이전) : 기름은 밝은 빛을 내어서 태워진다네
無用足可用(무용족가용) : 용도가 없는 것이 가히 필요하니
謂之羲皇天(위지희황천) : 이것이 복희씨의 태평성대라 한다네

 

 

고풍십구수15(古風十九首15)-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古人何所樂(고인하소락) : 옛 사람 즐긴 일이 무엇이었나
魚鳥忘其形(어조망기형) : 물고기건 새들이건 그 형상을 잊었네
機心如或忘(기심여혹망) : 이욕의 마음 혹시라도 잊는다면
喧靜應無名(훤정응무명) : 소란하건 조용하건 이름 잊었을 것이네
名相旣兩立(명상기양립) : 이름과 물질 다 생각하다가
厭嗜生乎情(염기생호정) : 싫고 좋음이 마음 속에 생겨난 것이네
偉哉君子人(위재군자인) : 위대하여라, 군자님들이여
存順沒吾寧(존순몰오녕) : 있어도 좋았고 없어도 마음 편했었다네

 

 

고풍십구수16(古風十九首16)-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坐久不能寐(좌구부능매) : 오래 앉아있어도 잠은 안오고
手翦一寸燭(수전일촌촉) : 한 치 남은 촛불 심지를 잘랐노라
霜風聒我耳(상풍괄아이) : 서리바람 내 귓가에 들려오니
微霰落床額(미산낙상액) : 싸락눈은 침대머리에 떨어지는구나
心地淨如水(심지정여수) : 내 마음 물처럼 깨끗하여
翛然無礙隔(소연무애격) : 소연하게 막히고 떨어지지 않는구나
正是忘物我(정시망물아) : 이것이 바로 물아를 잊는 것이니
茗椀宜自酌(명완의자작) : 잔에 가득 혼자서 술 마심이 좋겠다

 

 

고풍십구수17(古風十九首17)-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大樹何臃腫(대수하옹종) : 큰 나무는 어찌 그리 혹투성이며
大瓠何濩落(대호하호낙) : 큰 박은 어찌 그리 쉽게 떨어지는가
雖不通時用(수부통시용) : 비록 그것들이 쓰이지 못해도
自喜抱幽獨(자희포유독) : 스스로 깊은 고독을 안기를 좋아한다
逍遙天地間(소요천지간) : 천지간을 한가히 거닐어 보노니
得失誰能逼(득실수능핍) : 득실이 누가 능히 핍진하게 하겠는가

 

 

고풍십구수18(古風十九首18)-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仲尼亦何人(중니역하인) : 공자는 또한 어떠한 사람인가
喃喃說東北(남남설동북) : 이런저런 소리로 여기저기서 말했다
阿誰聽爾言(아수청이언) : 어느 누가 그대 말 들어줄가
空塡一丘壑(공전일구학) : 공연히 한 언덕 골짜기 메울 뿐이라네
牟尼亦何人(모니역하인) : 석가모니는 어떠한 사람인가
吧吧千萬說(파파천만설) : 이말저멀 온갖 말 설파하였도다
空演十二部(공연십이부) : 공연히 열 두 불경 풀이하여도
死化爲枯灰(사화위고회) : 죽어서는 마른 재로 되어버렸다네
平生謾多事(평생만다사) : 평생에 부질없이 일 많았지만
不如無事哉(부여무사재) : 아무 일 없는 것만 못하였구나

 

 

고풍십구수19(古風十九首19)-김시습(金時習)

고풍 십구 수-김시습(金時習)

我語大迂闊(아어대우활) : 내 말이 크게 허탄하지만
嚼來有滋味(작래유자미) : 씹어 맛보면 더욱 맛있으리라
譏我亦由此(기아역유차) : 나를 욕함도 이 때문이요
賞我亦由是(상아역유시) : 나를 칭찬함도 이 때문이리라
已矣不須說(이의부수설) : 말아라, 말할 필요도 없으리
紙窮且止止(지궁차지지) : 쓸 종이도 떨어졌으니 그만 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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