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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恨歌(장한가) - 白居易

글모음(writings)/한시(漢詩)

by 굴재사람 2015. 8. 3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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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恨歌(장한가) 긴 탄식의 노래

                                

- 白居易(백거이) -

 

 

漢皇重色思傾國 (한황중색사경국) 현종은 여자를 좋아해 빼어난 미모의 여인을 그리며

御宇多年求不得 (어우다년구불득) 여러 해를 구했지만 구하지 못했네

楊家有女初長成 (양가유녀초장성) 양씨 집에 한 처녀 커 가자

養在深閨人未識 (양재심규인미식) 집안 깊숙히 두고 길러 사람들은 알지 못했네

天生麗質難自棄 (천생려질난자기) 하늘이 내린 미모는 스스로 버리기 어려워

一朝選在君王側 (일조선재군왕측) 하루 아침에 선택되어 군왕 곁에 있게 되었네

回眸一笑百媚生 (회모일소백미생) 눈을 돌려 한번 웃으면 백가지 교태가 생겨

六宮粉黛無顔色 (육궁분대무안색) 눈썹을 그리고 분을 바른 육궁 미녀들 얼굴빛을 다 가렸다네

春寒賜浴華淸池 (춘한사욕화청지) 꽃샘추위 속 화청지서 목욕 하고 나니

溫泉水滑洗凝脂 (온천수골세응지) 기름기 엉긴 몸 온천수에 미끄러운 살결 드러냈네

侍兒扶起嬌無力 (시아부기교무력) 시녀들 부축해 일어나니 그 아리따움 비할데가 없도다

始是新承恩澤時 (시시신승은택시) 이때부터 황제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네

雲鬢花顔金步搖 (운빈화안금보요) 구름같은 귀밑머리결 옥같은 얼굴 금비녀 꽂고 하늘거리 듯 걸음을 옮겨

芙蓉帳暖度春宵 (부용장난도춘소) 연꽃 무늬 휘장 두른 침실 온화한 봄 밤은 깊어만 가네

春宵苦短日高起 (춘소고단일고기) 짧은 봄밤 한탄하며 해 높아 일어나니

從此君王不早朝 (종차군왕불조조) 이 후로 군왕은 조회를 보지 않았네

承歡侍宴無閑暇 (승환시연무한가) 총애로 연회에 매이니 한가할 틈 없어

春從春游夜專夜 (춘종춘유야전야) 봄을 쫓아 춘정에 흠뻑 들어 온밤을 지세우니

後宮佳麗三千人 (후궁가려삼천인) 아름다운 후궁은 무수히 많았어도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총애재일신) 그 삼천명이 받을 사랑 혼자 차지 했네

金屋粧成嬌侍夜 (금옥장성교시야) 금옥에서 곱게 단장하고 그 교태로 시중드는 밤

玉樓宴罷醉和春 (옥루연파취화춘) 옥루 연회 파하니 봄과 함께 취하네

姉妹弟兄皆列士 (자매제형개열사) 형제 자매가 다 제후의 서열에 오르고

可憐光彩生門戶 (가련광채생문호) 가히 어여삐 여겨 가문에 광채가 나네

遂令天下父母心 (수령천하부모심) 마침내는 세상 부모들 마음속에

不重生男重生女 (부중생남중생녀) 아들보다 딸 낳기를 더 중히 여기게 되었네

驪宮高處入靑雲 (여궁고처입청운) 화청궁(華淸宮) 높이 솟아 푸른 구름속에 들어 있고

仙樂風飄處處聞 (선악풍표처처문) 신선의 풍악은 바람 타고 곳곳에서 들려오네

緩歌慢舞凝絲竹 (완가만무응사죽) 느린 노래 우아한 춤에 현과 피리소리 엉기니

盡日君王看不足 (진일군왕간부족) 황제는 종일 넋을 잃고 바라보네

漁陽瞽鼓動地來 (어양고고동지래) 돌연 어양 쪽 땅을 울리는 악관의 북소리 들려오니

驚破霓裳羽衣曲 (경파예상우의곡) 예상우의곡은 놀라 부서지고

九重城闕煙塵生 (구중성궐연진생) 구중궁궐에 연기와 먼지 솟아 오르니

千乘萬騎西南行 (천승만기서남항) 천 수레 만 기병이 서남으로 떠나네

翠華搖搖行復止 (취화요요행부지) 천자의 기 흔들리다 다시 멈추고

西出都門百餘里 (서출도문백여리) 도성문 서쪽으로 나와 백여리

六軍不發無奈何 (육군불발무나하) 양귀비 처결하라 군사들이 멈춰서니

宛轉蛾眉馬前死 (완전아미마전사) 미인의 굽은 긴 눈썹은 굴러 군마 앞에서 죽었네

花鈿委地無人收 (화전위지무인수) 땅에 떨어진 꽃비녀 거두는 이 없고

翠翹金雀玉搔頭 (취교금작옥소두) 취교와 금작과 옥수두 마찬가지 였네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엄면구부득) 군왕은 얼굴 가린 채 구하지 못하고

回看血淚相和流 (회간혈루상화류) 차마 돌린 두 눈엔 피눈물이 흐르네

黃埃散漫風蕭索 (황애산만풍소삭) 누런 흙먼지 일고 바람은 쓸쓸히 부는데

雲棧縈紆登劍閣 (운잔영우등검각) 구름다리 얼기설기 검각에 오르니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하소인행) 아미산 아래엔 오가는 사람도 드물어

旌旗無光日色薄 (정기무광일색박) 엷은 빛에 깃발도 광채를 잃었네

蜀江水碧蜀山靑 (촉강수벽촉산청) 촉의 강물 푸르고 그 산도 푸른데

聖主朝朝暮暮情 (성주조조모모정) 황제는 자나깨나 귀비만을 생각하네

行宮見月傷心色 (행궁견월상심색) 행궁에서 보는 달은 마음을 상하게 하고

夜雨聞鈴腸斷聲 (야우문령장단성) 밤비 속 말방울 소리 애간장을 끊네

天旋地轉回龍馭 (천선지전회룡어) 천하 정세 변하여 황제 돌아오는 길

到此躊躇不能去 (도차주저불능거) 마외역에 이르렀을 때엔 차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네

馬嵬坡下泥土中 (마외파하니토중) 그 마외 언덕 아래 진흙더미 속엔

不見玉顔空死處 (불견옥안공사처) 옥 같은 얼굴 보이지 않고 죽은 자리만 남아

君臣相顧盡沾衣 (군신상고진첨의) 군신이 서로 돌아보며 눈물로 옷깃 적시네

東望都門信馬歸 (동망도문신마귀) 동쪽 도성문 향해 말에 길을 맡기니

歸來池苑皆依舊 (귀래지원개의구) 연못과 동산은 옛 그대로 있어

太液芙蓉未央柳 (태액부용미앙류) 태액지의 연꽃도 미양지의 버들도

芙蓉如面柳如眉 (부용여면류여미) 연꽃은 그의 얼굴 버들잎은 그의 눈썹

對此如何不淚垂 (대차여하불누수) 이들을 대하매 어찌 아니 눈물 흘리리

春風桃李花開日 (춘풍도리화개일) 봄바람에 복사꽃 오얏꽃 만발해도

秋雨梧桐葉落時 (추우오동엽락시) 가을 비에 오동잎 떨어져도

西宮南內多秋草 (서궁남내다추초)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무성하고

落葉滿階紅不掃 (낙엽만계홍불소) 낙엽이 섬돌을 붉게 덮어도 쓸지 않으니

梨園子弟白發新 (이원자제백발신) 이원의 자제들은 백발이 성성하고

椒房阿監靑娥老 (초방아감청아노) 초방의 아감 젊은 미녀도 늙었네

夕殿螢飛思悄然 (석전형비사초연) 저녁 궁궐에 반딧불 나니 사뭇 그리워

孤燈挑盡未成眠 (고등도진미성면) 등불 심지 다 타도록 잠 못 이루네

遲遲鍾鼓初長夜 (지지종고초장야) 더딘 종과 북소리에 밤은 더욱 길어

耿耿星河欲曙天 (경경성하욕서천) 은하수 반짝이며 새벽이 오니

鴛鴦瓦冷霜華重 (원앙와냉상화중) 원앙 기와 차가운데 서리꽃은 무겁게 앉고

翡翠衾寒誰與共 (비취금한수여공) 비취 이불 싸늘하고 같이 덮을 사람 없네

悠悠生死別經年 (유유생사별경년) 아득하여라, 생사를 달리한지 몇 해가 지났나

魂魄不曾來入夢 (혼백불증내입몽) 꿈속에서 혼백마저 만나볼 수 없네

臨邛道士鴻都客 (임공도사홍도객) 임공의 도인은 도성에 머무는데

能以精誠致魂魄 (능이정성치혼백)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기에

爲感君王輾轉思 (위감군왕전전사) 귀비 생각에 잠 못 이루는 황제를 위해

遂敎方士殷勤覓 (수교방사은근멱) 마침내 도사에게 그 혼백 찾게 하였네

排空馭氣奔如電 (배공어기분여전) 허공을 가르고 번개처럼 내달아

升天入地求之遍 (승천입지구지편) 하늘에서 땅속까지 두루 찾아

上窮碧落下黃泉 (상궁벽낙하황천) 궁벽에 올랐다가 황천까지 내려갔지만

兩處茫茫皆不見 (양처망망개불견) 어디든 그저 아득할 뿐 찾을 길 없는데

忽聞海上有仙山 (홀문해상유선산) 홀연 들리는 소문이 바다 위에 선산(仙山)이 있다고

山在虛無縹緲間 (산재허무표묘간) 그 산은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어

樓閣玲瓏五雲起 (누각영롱오운기)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 구름이 일고

其中綽約多仙子 (기중작약다선자) 아름다운 선녀들이 산다하네

中有一人字玉眞 (중유일인자옥진) 그 중에 옥진이라 하는 선녀 하나 있었으니

雪膚花貌參差是 (설부화모삼차시) 눈 같은 살결이랑 고운 얼굴 그인 것 같다 하네

金闕西廂叩玉扃 (금궐서상고옥경) 금대궐 서쪽 행랑 옥대문을 두드려

轉敎小玉報雙成 (전교소옥보쌍성) 소옥으로 하여금 쌍성에게 알리게 하니

聞道漢家天子使 (문도한가천자사) 천자의 사신이 왔다는 말을 듣고

九華帳里夢魂驚 (구화장리몽혼경) 구화장 안 꿈에서 깨어난 혼백이 깜짝 놀라네

攬衣推枕起徘徊 (남의추침기배회) 옷을 들고 베개 밀치고 일어나 서성이더니

珠箔銀屛迤邐開 (주박은병이리개) 구슬발과 비스듬이 이어진 은병풍 열리니

雲髻半偏新睡覺 (운계반편신수각) 구름 같은 머리 한쪽으로 드리우고 막 잠에서 깬 듯

花冠不整下堂來 (화관불정하당내) 화관도 고치지 못하고 뜰을 내려오네

風吹仙袂飄飄擧 (풍취선몌표표거)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 나부끼니

猶似霓裳羽衣舞 (유사예상우의무) 마치 예상우의무를 추던 그 모습 같고

玉容寂寞淚欄干 (옥용적막누난간) 옥 같은 얼굴 수심에 젖어 눈물이 난간에 흐르니

梨花一枝春帶雨 (이화일지춘대우) 활짝 핀 배꽃 한 가지 봄비에 젖은 듯 하네

含情凝睇謝君王 (함정응제사군왕) 정을 머금은 눈길로 군왕에게 사뢰니

一別音容兩渺茫 (일별음용양묘망) 이별한 뒤 용안도 옥음도 뵈고 듣지 못하였습니다

昭陽殿里恩愛絶 (소양전리은애절) 소양전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지고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중일월장) 봉래궁에서 보낸 세월이 오래건만

回頭下望人寰處 (회두하망인환처) 머리 돌려 저 아래 인간세상 바라보아도

不見長安見塵霧 (불견장안견진무) 장안은 보이지 않고 먼지와 안개만 일 뿐

唯將舊物表深情 (유장구물표심정) 오래 지닌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니

鈿合金釵寄將去 (전합금채기장거) 자개 상자와 금비녀를 가지고 가라하네

釵留一股合一扇 (채류일고합일선) 금비녀 한 쪽과 상자 한 쪽씩

釵擘黃金合分鈿 (채벽황금합분전) 황금 비녀 토막내고 자개함 나눴으니

但敎心似金鈿堅 (단교심사금전견) 두 마음 이처럼 굳게 가져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인간회상견) 천상에서든 어디서든 서로 만날 날 있으리니

臨別殷勤重寄詞 (임별은근중기사)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

詞中有誓兩心知 (사중유서양심지) 두 마음만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칠월칠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깊은 밤 은밀한 약속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련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겠다던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천지도 그 끝이 있다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이 한은 끝이 없어라

<번역: 맹주상>

 

 

* 

傾國 - 경국지색

御宇 -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粉黛 - 분을 바른 얼굴과 먹으로 그린 눈썹. 화장한 미인

雲鬢 - 구름같은 귀밑머리

承歡 - 사람의 기분을 맞추어 기쁘게 함

驪宮 - 서안의 동쪽 려산 아래의 궁전. 화청지가 이곳에 있다

漁陽鼙鼓 - 안록산의 반란

霓裳羽衣曲 - 신선들의 세상인 월궁의 음악을 본떠 만들었다는 곡

翠華 - 물총새의 깃털로 장식한 천자의 가마 혹은 천자의 깃발

縈紆 - 빙돌아 얽힘

劍閣 - 검문관을 말함. 촉으로 가는 가장 험준한 관

馬嵬坡 - 서안의 서쪽 興平市 서북12km. 양귀비 묘가 있다

太液 - 궁의 가장 큰 연못

未央 - 한나라때의 궁전 이름

梨園 - 당현종이 설립한 궁중 음악 교습소

椒房 - 산초를 발라 향이 나게 한 방. 왕후나 후궁의 방

小玉 - 시녀나 궁녀를 보통 지칭하는 이름

雙成 - 서왕모의 시녀

昭陽殿 - 한나라 성제가 후궁을 위해 건축한 궁전

蓬萊宮 - 바다 한가운데 있는 전설상의 신선궁궐

比翼鳥 - 눈과 날개가 하나뿐인 전설상의 새. 암수가 만나야 날수 있다

連理枝 - 두 나무가 자라면서 붙게 된 나무 혹은 가지

天長地久 - 하늘과 땅이 영원함

 

 

*

장한가(長恨歌)는 당나라의 천재시인 백거이(白居易:AD 772~846))가

양귀비(楊貴妃)와 현종의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쓴 칠언고시(七言古詩)로서,

120구 840자에 달하는 대서사시(大敍事詩)이다.

백거이(白居易)가 35세때 주지현위(周厔縣尉)로 있을 때 쓴 것이다.

그곳은 수도 長安에서 가까운 별읍(別邑) 같은 곳으로,

조정의 교서랑(校書郞), 한림학사(翰林學士) 등 직책도 겸하고 있었다.

주지현위(周厔縣尉)라는 직책상에 관내를 순시하며, 서민들의 생활 등 세상 물정을 살피곤 하였는데.

관내에는 종남산(終南山), 선유사(仙遊寺) 등 명승고적(名勝古跡)이 많아서,

천재시인의 시심을 키우는데 좋은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지방의 은자(隱者)이던 왕질부(王質夫), 진홍(陳鴻) 등과 선유사(仙遊寺)에 가 묵으면서

화제가 근처인 마외파(馬嵬坡) 언덕에서 50년전에 원통하게 죽어간 양귀비(楊貴妃)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왕질부(王質夫)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던 양귀비의 일화를 듣고 나서,

기막힌 사연이 세월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릴 것을 애석해하였다.

그리고 백거이(白居易)에게 시를 지어 세상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해졸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고 한다.

백거이(白居易)도 이에 감동하여 밤을 새워가며 쓴 칠언고시(七言古詩)로서,

120구 840자에 달하는 대서사시(大敍事詩)가 동양의 사랑의 이야기인 장한가(長恨歌)인 것이다.

장한가(長恨歌)는 전국 어디서나 신분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고 다닐 정도로 널리 유행하였다 한다.

특히 기녀(妓女)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장한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행했다고 한다.

리고 장한가(長恨歌)는 당나라뿐만 아니라. 신라와 일본까지 이어져서

당시의 사신이나 무역상들이 이를 구해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

비익조(比翼鳥)는 전설상의 날개가 하나인 새로 암수가 한 마리로 돼야 날 수 있는 새이고,

연리지(連理枝)는 두 그루의 나무이면서 가지가 이어져 커가는 나무를 말한다.

 

후한 말(後漢末)의 문인(文人) 채옹(蔡邕)은 효행(孝行)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채옹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다.

채옹은 간호를 하느라 백일간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모친이 작고한 뒤에는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시묘(侍墓) 살이를 하며 예와 정성을 다하기를 여러 해 했다.

그 후 채옹의 집에 두 그루의 나무에 싹이 돋았다.

그 나무가 점점 커지며 두 가지가 서로 하나가 돼 결(結)이 이뤄졌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채옹의 효행이 이런 보기 드문 기이한 현상을 일으켰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후한서’의 ‘채옹전(蔡邕傳)’에 보이며 연리(連理)를 효(孝)와 결부시키고 있으나 

후세에 와서는 송(宋) 강왕(康王)의 포학(暴虐)에 굴하지 않은 한빙(韓憑)과

그의 처 하씨(河氏)의 부부애(夫婦愛)로 대표되기도 했다.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는 현종(玄宗)과 양귀비가 서로 맹세한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 하늘에 있어서는 원컨대

비익의 새가 되고 땅에 있어서는 원컨대 연지(連枝)의 가지가 되기를 맹세한다”는 구절이 있다.

이 양구(兩句)는 부부의 깊은 맹세를 비유한 말로 쓰여 있다.

금실 좋은 부부사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

양귀비(楊貴妃 719-756) 본명은 양옥환(楊玉還) 산서성(山西省) 출생하여 37세 사망한

중국 4대 미인 중에 한사람이다.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양귀비꽃에 비유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양귀비(楊貴妃)는 아버지의 임지(任地)인 쓰촨성[四川省]에서 태어나,

17세 때 현종의 제18왕자 수왕(壽王)의 비(妃)가 되었다.

 

그러나 현종의 무혜비(武惠妃)가 죽자, 황제의 뜻에 맞는 여인이 없어 물색하던 중

수왕비의 아름다움을 진언하는 자가 있어, 황제가 온천궁(溫泉宮)에 행행(行幸)한 기회에 총애를 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수왕의 저택을 나와 태진(太眞)이란 이름의 여도사(女道士)가 되어 세인(世人)의 눈을 피하면서

차차 황제와 결합 되었으며, 27세 때 정식으로 귀비(貴妃)로 책립되었다.

 

다년간의 치세로 정치에 싫증이 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궁중에서는 황후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고,

세 자매까지 한국(韓國)· 진국부인(秦國夫人)에 봉해졌다. 한, 친척 오빠인 국충(國忠) 이하

많은 친척이 고관으로 발탁되었고, 여러 친척이 황족과 통혼(通婚)하였다.

그녀가 남방(南方) 특산의 여지라는 과일을 좋아하자, 그 뜻에 영합(迎合)하려는

지방관이 급마(急馬)로 신선한 과일을 진상(進上)한 일화는 유명하다.

 

755년 양국충 과의 반목이 원인이 되어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안사의 난),

황제·귀비 등과 더불어 쓰촨으로 도주하던 중 장안(長安)의 서쪽 지방인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군사가 양국충을 죽이고 그녀에게도 죽음을 강요하였다.

 

현종도 막을 방법이 없자, 그녀는 길가의 불당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나라를 망쳐 먹은 여자, 양귀비는 명주천을 꼬아 만든 줄로 목이 졸려 37세에 죽는 액살(縊殺)형에 처해집니다.

물론 이 명령을 내린 것은 안록산(安祿山)의 종용을 받은 현종이다.

현종은 남은 생애 내내 양귀비의 그림을 보면서 아침저녁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중국의 정사(正史)도 그녀를 "자질풍염(資質豊艶)"이라 적었으며,

절세(絶世)의 풍만한 미인인데다가 가무(歌舞)에도 뛰어났고,

군주(君主)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총명을 겸비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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