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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金陵鳳凰臺(등금릉봉황대) - 李 白

글모음(writings)/한시(漢詩)

by 굴재사람 2015. 8. 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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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金陵鳳凰臺(등금릉봉황대) 금릉의 봉황대에 올라

                                        

 

- 李白(이백) -

 

鳳凰臺上鳳凰遊 (봉황대상봉황유)  봉황대 위에 봉황이 노닐었는데

鳳去臺空江自流 (봉거대공강자류)  봉황 떠나고 대는 비었으나 강물은 절로 흐르는구나
吳宮花草埋幽徑 (오궁화초매유경)  오궁화초는 무성한 잡초 길 사이에 묻혀있고
晉代衣冠成古丘 (진대의관성고구)  진대의관은 옛 묘를 이루었도다
三山半落靑天外 (삼산반락청천외)  세 산은 푸른 하늘 밖에 반쯤 떨어져 있고
二水中分白鷺洲 (이수중분백로주)  두 물이 가운데 갈라져 백로주가 있도다
爲浮雲能蔽日 (총위부운능폐일)  온통 뜬 구름이 밝은 해를 가리게 되니
長安不見使人愁 (장안불견사인수)  장안이 보이지 않아 사람을 근심하게 하는구나

 

 

* 이 시는 칠언 율시로 되어 있다.

이백은 율시를 잘 짓지 않으나 이 작품은 당대의 율시 중에서도 걸작이라고 알려진 작품이다.

이 시를 지은 동기와 시각에 대하여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호가 같은 형식인 칠언 율시로 <황학루>의 시를 지었는데

이백이 황학루에 올라 더 나은 시를 지을 수가 없어서 봉황대에 올라 같은 형식에

비슷한 구법, 같은 운각(韻脚), 비슷한 기세의 시를 지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 다른 설이 있다.

이백이 말년에 유배되어 야랑(夜郞)에 가던 도중 풀려나와 동남부를 유랑한 때 쓴 시라고 보는 설이다.

또 하나는 말년의 작품이 아니고 쓰인 시기를 중년으로 보아

장안에서 간신배의 모함에 걸려 현종에게 쫓겨나 강호지역을 유랑하면서 금릉에 머물게 되었는데,

이때 봉황대에 올라 당시의 심정을 읊은 것으로 보는 설이다.

이 설이 가장 신빙성을 얻고 있다.

 

* 金陵 : 지금의 강소성 남경시. 삼국 때에 吳의 수도. 이후 동진, 송, 제, 양, 진이 모두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다.

금릉의 봉황산에는 영가 14년(437년) 봉황새 떼가 모여들어 왕의라는 사람이 누대를 짓고 봉황대라 불렀다.

예로부터 봉황은 상서로운 새로서, 봉황이 날아와 놀았다는 것은 왕조의 흥성함을 상징한다.

그래서인지 남경은 삼국시대의 오나라를 비롯하여 六朝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왕조가 도읍으로 삼던 곳이다.

花草 : 궁궐의 화초, 아름다운 미녀

幽徑 : 숲 속의 좁은 길

晉代衣冠 : 진대에 의관을 걸쳤던 고관. 귀인들

三山 : 남경 서쪽의 연이어있는 세 봉우리

二水 : 진수와 회수

白鷺洲 : 二水에 의해 만들어진 삼각주의 이름

浮雲 : 간사한 신하

日 : 임금(현종)

長安 : 장안성, 여기서는 현종

人 : 이백

 

 

黃鶴樓(황학루)

 

- 崔顥(최호) -

昔人已乘黃鶴去(석인이승황학거) 옛 사람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고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이곳엔 쓸쓸히 황학루만 남았네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부반) 황학은 한번 떠나 돌아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 빈 하늘엔 흰 구름만 유유히 떠도는구나.

晴川歷歷漢陽樹(청천역력한양수) 맑은 냇물 사이로 한양의 나무만 무성하고

芳草鸚鵡州(방초처처앵무주) 앵무주에는 향기로운 봄풀만 우거졌구나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날은 저무는데 내 고향 어귀는 어디쯤인가

煙波江下使人愁(연파강하사인수) 강 아래 안개는 나를 수심에 잠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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