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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5. 4. 1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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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婦

 

                      - 김종길 -

 

 

어두운 부뚜막이나

낡은 탁자 위 같은 데서

어쩌다 비쳐드는 저녁 햇살이라도 받아야

 

잠시 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쌍의 빈 그릇,

 

노쇠든, 사기이든, 오지든

오십 년이 넘도록 하루같이 함께

붙어다니느라 비록 때묻고 이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

 

적잖은 자식 낳아 길러

짝지워 다 내어보내고

이제는 둘만 남아,

 

이렇게 이따금 서로의 성근 흰머리칼,

눈가의 잔주름 눈여겨 바라보여,

 

깨어지더라도

함께 깨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분질없이 서로 웃으며 되새겨보면,

 

창밖엔 저무는 날의 남은 햇빛,

그 햇빛에 희뜩이는 때 아닌 이슬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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