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 이성부
나뭇잎들이 다 붉어지기도 전에
죽은 영혼들 물들여 온 산이 불타기도 전에
시월 눈 쌓이고 바람불어 나도 춥습니다
미처 제 집을 찾지 못한 새끼배암 한 마리
돌길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파란 하늘에 대고 무어라 절규하는 듯
찢어지게 벌린 입 다물지 않습니다
술 한잔 못마시는 나의 나날도
겨울로 들어가지 못한 채
때아닌 눈 맞아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산정은 온통 하얀 세상인데
저어 아래쪽은 아직 푸르러서 물결 칩니다
누구나 한창때는 저리 철없이 날뛰지요
사람 사는 일 오도가도 못하여
제자리에서 머뭇거리는 일 많습니다
어느덧 나도 입만 벌린 채
그냥 그렇게 또는 슬프게
[시안 2005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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