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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란설(愛蘭說)

글모음(writings)/꽃과 나무

by 굴재사람 2009. 11. 2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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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애란설(愛蘭說)

 

 

 

 

봄이 되면 매화만 피는 게 아니다. 난(蘭)도 핀다. 난은 '봄을 알려주는 꽃'이라는 의미에서 '보춘화'(報春花)라고도 부른다. 보춘화가 왜 매화,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에 들어가는가? 난의 군자다움은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먼저 난은 향기가 멀리 간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멀리 퍼지는 난의 향기를 일컬어 '난향천리'(蘭香千里)라고 하였다. 난향(蘭香)의 특징은 선(線)으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향기가 폭이 넓게 퍼져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고, 향이 실처럼 지나간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한 줄기 실과 같이 향 줄기가 지나간다. 선향(線香)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멀리서 맡으나 가까이서 맡으나 향의 농도가 일정하다. 바로 이 점이 군자의 성품과 같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 방문을 열면 난향이 바로 맡아진다. 그 향이 미세한 것 같아도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강하다. 잡초 속에 난이 섞여 있어도 그 향기만은 감출 수가 없다. 난 잎은 잡초 잎에 가릴 수 있어도 품어내는 향은 단연 잡초를 압도하는 것이다. 난은 또한 매우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뿌리가 90% 가까이 썩어 들어가도 그 잎은 멀쩡하다.


 

다른 식물 같으면 벌써 드러누웠을 텐데도 난은 자기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는다. 속은 타 들어가는데도 얼굴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다. 바로 이 점이 군자 같다고나 할까. 난은 또한 깨끗한 것만 먹고 산다. 주로 빗물과 이슬만을 먹고 자란다. 화분에다가 기름진 거름을 섞으면 난은 죽고 만다. 비료를 많이 주면 뿌리가 썩는다. 깨끗한 모래를 그물에다 걸러내고 물로 지저분한 흙은 씻어낸 다음에 여기에다가 난을 심어야 한다. 생명력이 강하면서도 깨끗한 곳에서만 자라는 성품이 군자와 같다.


 

난초의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난초의 잎은 마음이 한가해야 보인다. 군자가 아니면 그 흔들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이 섬세하고 한가해야 난초의 아름다움이 감지된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쓴 강희안(姜希顔·1417~1464)은 난초를 특히 사랑하였다. 끔찍한 사건·사고가 많아서 '애란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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