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군자(四君子)라고 하면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이다. 하지만 주렴계(周濂溪)의 ‘애련설(愛蓮說)’을 읽은 뒤부터는 난초 대신에 연꽃을 집어넣어 매(梅), 연(蓮), 국(菊), 죽(竹)을 ‘사군자’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른 봄에 피는 매화는 무엇 때문에 군자인가? 눈 속의 추위를 뚫고 피기 때문이다. 춥고 배고픔을 견디고 올라오는 꽃이므로 군자이다. 연꽃은 여름에 더러운 진흙 속에서 올라오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대나무는 겨울의 흰 눈 속에서도 청청(靑靑)하기 때문에 군자이다.
그렇다면 늦가을에 피는 국화는 왜 군자란 말인가? 서리를 맞으면서 피는 꽃이기 때문이다. 가을에 내리는 서리는 숙살(肅殺)의 기운을 상징한다. ‘추상(秋霜)같다’고 하지 않던가? 온갖 나무와 화초들의 그 무성하던 잎들도 그 추상 앞에서 모두 고개를 숙이고 움츠러든다. 오직 국화만이 그 서리를 맞으면서도 죽지 않고 오히려 꽃을 피운다. 늦가을의 서리 속에서 피는 국화를 보면서 불굴의 기백을 배우게 된다.
어찌 기백만 느끼겠는가!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사람이 늦서리를 맞고도 노랗게 피는 국화를 보면 ‘남은 삶을 여한 없이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국화가 지닌 이러한 기질을 가리켜 우리 선인들은 ‘오상고절(傲霜高節)’이라고 표현하였다. ‘모진 서리에 굴복하지 않는 높은 절개’라는 뜻이다. 여기서 서리(霜)는 가난, 병고, 외로움, 이별이 될 수 있다. ‘오상고절’이면서도 국화는 부잣집 화단에서만 피는 꽃이 아니다. 이름 없는 시골 농가의 동쪽 울타리 밑에서도 핀다. 들판에서도 핀다. 국화가 부귀가(富貴家)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라면 벼슬살이 다 버리고 ‘귀거래사’를 읊었던 도연명이 어찌 좋아하였겠는가. 그 소탈함이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사람이나 꽃이나 절개가 높으면서도 소탈하면 흡인력이 있기 마련이다. 국화는 또한 향(香)이 좋다. 매화향이 생명을 움트게 하는 섬세한 향이라면 국화향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침향(沈香)에 가깝다. 마음을 안정시켜서 범사(凡事)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향이라고나 할까. 늦가을에는 노란 국화가 있어서 인생이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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