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는 예로부터 강원도의 큰 고을이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높고 험준한 산지를 형성하였고, 원주천이 흥양천과 합쳐져 섬강으로 접어든다. 서울에서 말을 타고 꼬박 이틀을 달려야 닿을 수 있었던 원주는 중앙선 열차가 지나면서 영서와 영동 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원주 북쪽의 횡성은 농사 외엔 별다른 특징이 없는 궁벽한 산골이었다. 그러던 횡성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한우 때문일 것이다.
강원도의 관문이자 경기도, 충청도와 맞닿아 있는 원주는 예로부터 서울과 중부, 강원권을 잇는 물류와 교통의 중심지이자 조선 시대, 강원감영이 있었던 강원도의 중심 도시였다. 동쪽으로는 국내 3대 악산 중 하나인 치악산의 가파른 능선이 펼쳐져 있고 서남쪽으로는 남한강 줄기인 섬강이 흐르는 곳, 높은 산 맑은 물 따라 살아온 삶의 모습은 다채로운 풍경만큼이나 많은 이야기와 기억들을 품고 있다. 척박한 산골에서도 억척스럽게 삶을 일궈온 사람들의 지난 세월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고장, 원주로 떠나본다.
설악, 월악과 함께 3대 악산으로 불리는 치악산은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이라 불렸던 이곳이 '꿩 치(雉)' 자를 쓰는 치악산이 된 것은 천년 고찰, 상원사를 배경으로 한 '은혜 갚은 꿩'의 전설 때문이다. 해발 1,084m 높이에 위치한 상원사는 세 시간 가까이 험준한 산길을 걸어 올라야만 비로소 닿을 수 있다.
원주의 진산인 치악산(해발 1288미터)은 원주시와 안흥 찐빵으로 유명한 횡성군 안흥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산이 매우 웅장하여 비로봉ㆍ삼봉 등의 높은 봉우리와 영월성ㆍ금대성의 옛 성과 자유치ㆍ태종대 등의 고적이 있다.
『여지도서』 「산천」조에 실린 글이다.
이 산에는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은 꿩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온다. 옛날 어떤 무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산 밑에서 꿩이 구렁이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보고 가엾이 여기어 활을 쏘아 구렁이를 죽이고 꿩을 살렸다. 그 뒤 이 산을 넘으려 하는데, 산은 높고 해는 져서 깜깜하여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 그런데 한쪽에서 불빛이 보이므로 그곳을 찾아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아름다운 여인이 나와서 허락하므로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였다.
곤히 잠을 자는 중 가슴이 답답하여 깨보니, 뜻밖에도 큰 구렁이가 무사의 몸을 감고 하는 말이 “너는 내 남편을 죽인 원수다. 네가 산 아래에서 내 남편을 활로 쏘아 죽였으니, 너는 내게 죽어 마땅하다” 하며 입을 벌려 잡아먹으려 하였다. 이에 무사가 크게 놀라서 “모르고 저지른 일이니 살려달라” 하고 애걸복걸하였다. 그러자 구렁이가 “저 위쪽 빈 절에 있는 종이 세 번 울리면 너를 살려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하였다. 그때 별안간 종소리가 세 번 울렸고 그러자 구렁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무사가 하도 이상하여 그 절에 가보니 먼지 쌓인 종 밑에 머리가 깨진 꿩이 떨어져 있었다. 바로 무사가 구렁이에게서 구해준 그 꿩이었던 것이다. 무사는 크게 탄식한 뒤 꿩을 산에 잘 묻어주었다고 한다.
고려 후기의 문신 한수는 “치악의 구름 진 봉우리가 비를 오게 하니, 처마에서 떨어지는 소리 쓸쓸한데, 저녁 바람이 인다”라고 노래하였다.
치악산 북쪽 기슭에는 차유령(車踰嶺)이라는 고개가 있는데, 조선 태종의 행차가 각림사(覺林寺)로 나들이하던 길에 이 고개를 거쳤다고 한다. 따라서 수레가 넘는다는 뜻으로 차유령이라고 부른다
치악산에는 또한 상원사와 의상대사가 용 아홉 마리가 살던 못을 메우고 지었다는 구룡사(龜龍寺)가 있는데,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所草面)의 치악산 비로봉 북쪽 구룡소(九龍沼) 부근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다. 신라의 승려 의상이 668년(문무왕 8)에 세운 절로, 창건 당시의 이름은 구룡사(九龍寺)다. 이름에 얽힌 아홉 마리 용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며, 창건 이후 계속하여 도선ㆍ자초ㆍ휴정 등이 거쳐 가면서 영서지방 수찰(首刹)로서의 구실을 다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절 입구에 있는 거북 모양의 바위 때문에 절 이름도 아홉 구 자를 거북 구 자로 고쳐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 있는 황장금표(黃腸禁標)는 조선시대에 이 일대의 무단 벌목을 금한다는 방으로, 전국에서 유일한 역사적 자료다. 현존 당우는 대웅전ㆍ보광루ㆍ삼성각ㆍ심검당ㆍ설선당 등이 있는데, 수차례 대웅전을 중수하였음에도 그 안에 있는 닫집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구룡사 근처에 있는 영말은 이흥, 이흥동이라고도 부르는데, 예전에 역(驛)이 있었다고 하며 구룡소는 구룡사 위에 있는 소로 옛날에 용이 올라갔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치악산은 원주의 진산이긴 하나 그 너른 품은 횡성과 영월까지 걸쳐 있기에 영서지방을 대표하는 큰 산으로 봐야 한다.예로부터 치악산에서 유명했던 것이 호랑이다.산기슭 마을에는 수십 년전까지만 해도 소를 호랑이에게 산 채 제물로 바치는 민속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인직은 1908년 발표한 신소설 ‘치악산’에서 “백주에 호랑이가 득시글거려 포수가 제 고기로 호랑이 밥을 삼는 일이 종종 있다.”면서 “금강산은 문명한 산이요,치악은 야만의 산이더라.”라고 했다.그만큼 산이 깊고 험해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는 말이다.덕분에 치악산은 다른 산에 비해 원시적인 자연이 살아 있다.
치악산은 산꾼들에게 악산으로 유명하다.오죽했으면 ‘치가 떨리고 악에 받쳐 치악산’이란 말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치악산 북쪽의 비로봉 오르는 길목에는 수려하고 부드러운 길이 숨어 있다.구룡사 입구에서부터 세렴폭포까지 3㎞ 구간이다.이곳은 호랑이 가죽 무늬가 선명한 금강소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길이 순해 가족과 연인들의 가벼운 걷기 코스로 그만이다.
구룡사 매표소를 지나면서 산길이 시작된다.길 초입부터 서늘한 공기에 실려 온 향기가 예사롭지 않다.둘러보니 산비탈에 붉은 소나무들이 빼곡하다.길 왼쪽으로 ‘황장금표’(黃腸禁標)를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말 그대로 황장목을 베지 말라는 경고를 새긴 돌이다.나라에서 찜한 귀한 나무들이기 때문이다.
황장목은 조선시대 궁궐을 짓는 데 사용했던 속이 붉고 단단한 금강소나무를 말한다.껍질이 붉다고 해서 적송,아름다운 자태 덕에 미인송이라고도 일컫는다.
구룡교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미끈하게 빠진 노송들이 나타나고,구룡사 일주문인 원통문에서 절정을 이룬다.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 안아보고 우러러 큰 키를 가늠해 본다.
원통문에서부터는 느릿느릿 걸어야 제맛이다.청아한 계곡 물소리가 귀를 뚫고 나무를 스치고 가는 바람이 몸을 관통해 사라진다.
부도탑을 지나면 어느덧 구룡사다.본래 절터는 깊은 연못이었는데,의상대사가 아홉 마리 용을 내쫓고 절을 세웠다고 한다.절을 지나면 구룡사계곡 최고의 명소인 구룡소다.의상대사에게 쫓긴 아홉 마리 용 중 하나가 마지막까지 머물렀다는 곳이다.폭포는 작지만 그 앞의 크고 깊은 소가 신비롭다.
구룡소를 지나면 다시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르고,넓은 터에 자리 잡은 대곡야영장이 나온다.이곳에 텐트를 치고 별을 헤아리는 황홀한 하룻밤을 상상해 본다.길은 구렁이 담 넘듯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고 ‘좀 쉬었다 갈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이면 세렴폭포에 이른다.4단으로 이루어진 폭포가 아담하다.
정상을 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면 비로봉에 도전해 보자.세렴폭포에서 정상까지 이어진 능선길이 험하기로 유명한 사다리병창 코스다.응달이 많아 길이 얼어붙기에 반드시 아이젠을 준비해야 한다.정상에는 신선탑,용왕탑,칠성탑 등 3개의 미륵불탑이 서 있다.1966년 원주에서 과자를 만들어 팔던 용창중씨가 “3도가 보이는 산 정상에 3도의 돌을 이용해 3년 안에 돌탑 3개를 쌓아라!” 는 신의 계시를 받고 혼자서 쌓았다고 한다.탑 너머로 남대봉까지 이어지는 치악산 주릉의 역동적인 흐름이 장관이다.구룡사 입구~구룡사~세렴폭포 3㎞코스는 1시간20분,세렴폭포~비로봉 2.7㎞코스는 2시간20분가량 걸린다.
해발 1100m 고지에 자리 잡은 치악산(1288m) 상원사에는 목숨을 구해준 나그네의 은혜를 갚기 위해 피투성이가 된 채 종을 울렸다는 꿩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 꿩의 보은 전설은 가을 단풍이 곱다 하여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리던 산의 이름까지 '치악산(雉岳山)'으로 바꿔놓았다.
최고봉 비로봉을 중심으로 강원도 원주시와 횡성군, 영월군에 걸쳐 있는 치악산은 1973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1984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악(岳)자 붙은 산은 험하다'는 속설을 증명하듯 원주 사람들은 치악산을 '치 떨고 악 쓰며 오르는 산'이라 말한다.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일반적인 지형지세와 반대로 주능선을 중심으로 완만한 동쪽에 비해 심하게 가파른 서쪽 산길을 오를라 치면 입에서 단내가 나는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 대신, 흠뻑 젖은 땀을 충분히 식혀줄 만큼 깊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장엄한 산의 위용에 감탄하게 된다.
치악산에는 '치악 8경'이라는 볼거리가 있는데 비로봉 미륵불탑, 상원사, 구룡사, 성황림, 사다리 병창, 영원산성, 태종대, 입석대 등이다. 모두 치악산의 역사와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어 산행 중 꼼꼼히 둘러봐도 좋을 것이다.
치악산의 면모를 두루두루 맛보려면 주능선 종주가 제격이다. 남쪽 성남리 상원골을 들머리 삼아 남대봉, 향로봉을 거쳐 정상인 비로봉에 닿는다. 사다리병창을 지나 구룡사 쪽으로 하산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9시간 남짓. 때문에 아침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해가 저물어서야 산을 내려올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역방향 코스도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지만 오르막이 더 가파른 데다 날머리인 성남리 교통편이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전체 24㎞에 달하는 주능선 종주 말고도 치악산은 어느 쪽으로 올라도 내려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산길이 다양하다.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산기슭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았기 때문이다. 구룡사 방면에서 비로봉에 이르는 정규 등산로만 해도 5개 코스. 특히 바위능선으로 이루어진 사다리병창 코스는 가파르지만 조망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구룡사에서 사다리병창을 거쳐 비로봉에 이르는 왕복 12㎞코스는 약 7시간쯤 걸린다.
이 밖에 치악산 주능선의 허리를 치고 오르는 등산로도 여럿 있다. 원주 쪽에서는 황골과 행구동 등산로에 매표소가 있다. 황골에서 입석대 쪽으로 향하는 험준한 코스는 비로봉 정상에 오르는 가장 빠른 길로 2시간이면 바로 비로봉에 닿을 수 있다.
횡성 방면에서 치악산을 오르는 길은 강림면 부곡리에서 출발한다. 태종 이방원과 그의 스승 운곡 원천석의 일화가 담긴 태종대(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6호)가 있는 부곡리 코스는 입산통제소를 지나 곧은치골을 따라가는 길이다. 이 길은 예전부터 원주와 횡성을 오가던 주요 교통로였는데 등산로 옆으로 소가 다니던 넓은 길이 따로 나있기도 하다. 곧은치라는 지명은 곧게 뻗어있는 고갯길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길이든 인생길이든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저마다의 몫이 아닐까. 치악산 산행은 자신의 취향과 체력에 맞게 골라가는 재미가 있다. 순한 길로 느릿느릿 오래 걷는 코스도, 한 순간 고통을 참아내며 빠르게 정상에 코스도 본인이 즐겁고 만족스러우면 그만이다.
'아랫입술을 세 번쯤 꽉 깨물고 퍽퍽한 다리를 참으며 오른' 비로봉. 그렇게 닿은 1288m 정상에는 1964년 고 용창중씨가 처음 쌓아올렸다는 돌탑 3기가 나란히 서서 사람들을 반긴다
치악산(1288m)을 제대로 종주하자면 치악재~가리파재~시명봉~남대봉~향로봉~비로봉~배너미재~천지봉~매화산~안흥고개로 이어지는 도상 27㎞(실제 35㎞) 구간을 타야 한다. 하지만 직장인들에게 이 코스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구룡사 매표소에서 남대봉을 거쳐 금대리나 성남리로 내려오는 종주코스(총 21~24㎞)가 선호되지만 이 또한 수월하진 않다. 치악산은 수도권에서 2시간 안팎이면 다다를 수 있는 거리지만 하루 만에 가볍게 하는 종주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백두대간 구간이나 정맥의 유명한 종주 구간들을 제외한다면 가장 해볼 만한 종주가 치악산 종주다. 치악산에는 비로봉 미륵불탑, 상원사, 구룡사, 성황림, 사다리병창, 영원산성, 태종대, 입석대 등의 ‘치악 8경’을 찾아보는 맛도 있다.
사다리병창을 거쳐 비로봉에 이르는 길은 자주 소개가 됐다. 비로봉을 거쳐 본격적으로 상원사 방향으로 향하는 능선길이 치악산의 백미다. 사람에 따라서는 지루하지만 거기에서 치악산의 맛을 볼 수 있다. 비로봉에서 남대봉까지가 13.7㎞ 정도. 중간에서 만나는 곧은재나 향로봉, 남대봉은 비로봉에 비하면 그냥 작은 언덕처럼 볼품이 없다. 그 사이의 길이 곳곳에 있는 기암절벽의 골짜기와 소나무 군락, 물푸레나무 군락, 억새 군락 등으로 연결돼 있어 깊은 맛을 준다. 종주의 절반이 훨씬 넘는 이 길은 두세 명 정도가 도란도란 얘기를 하면서 걸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우리나라 숲의 주인은 소나무다. 남한의 산림면적은 국토의 65%이며 산지 수종의 42%는 소나무다. 이렇게 소나무가 많은 것은 조선시대에 엄격히 시행한 소나무 보호시책의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조선조 왕실에서는 왕족들의 관(棺)이나 선박을 만드는 데 쓸 재질이 우수한 금강송(金剛松)을 골라,특별 관리를 하는 등 소나무 사랑이 지극했다.
왕실의 보호를 받은 소나무의 몸통 속 부분이 황금색을 띠고 있다고 해서 황장목(黃腸木)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황장목을 키우는 임지는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명명하고 숙종 때는 황장금표(黃腸禁標)를 설치,허가 없는 입산과 벌목을 금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익숙한 아름다운 숲은,대개 소나무 숲이다. 남한에서 황장금표가 발견된 곳은 원주 치악산,울진 소광리 계곡 등 다섯 군데나 된다. 줄잡아 여의도 면적의 5배 정도인 소광리 계곡 송림은 평균 20m의 30년생 소나무가 울울창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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