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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 주왕산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14. 12. 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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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잣나무는 울울창창하고, 연기와 노을은 어둠침침하게 잠겨 있어 맑고 그윽한 한 동학이 의젓한 선경인 듯”했다는 것이 조선시대의 한 선비가 읊은 청송의 모습이다. 청송은 고속도로나 철도가 지나지 않는 지역이어서인지 그만큼 멀고도 첩첩산중이라는 상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전체 면적 가운데 82%가 산지이고 동북방이 높고 남서쪽으로 경사를 이루며 평평해진다.

산지 가운데 동쪽에 있는 주왕산은 국립공원이다. 주왕산은 가을 단풍이 특히 아름답지만, 폭발한 화산재가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이루어놓은 여러 기기묘묘한 봉우리들과 그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소나무가 멋들어져, 어느 철에 가도 울울창창한 녹음을 즐길 수 있다. 등산길에는 중턱에 있는 대전사에 들르고, 내려오는 길에는 달기약수에 들러 마른 목을 적셔도 좋겠다

 

 

 

청송은 학이 푸른 소나무에 깃들어 있는 모습이 절로 연상되는 곳이다. 옛날에는 인적이 끊긴 산길을 수백리 걸어 하늘과 맞닿은 고개를 넘고 깊은 계곡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야만 이르던 곳이다. 비싼 다리품을 팔아 당도하면 수많은 비경과 순후한 인심에 젖어 ‘올 때 (힘들어) 울고 떠날 때 (가기 싫어) 울던’ 곳이다. 이 고장 사람들은 ‘동쪽에 있는 불로장생의 신선세계’란 뜻에서 청송이란 지명이 유래했다고 믿는다. 그 만큼 숲이 짙고 골이 깊고 물이 맑다. 주왕산국립공원과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주산지, 여름이면 더욱 냉기를 발하는 얼음골, 소헌왕후청송도호부의 자취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역사가 골골이 어우러져 있다

 

청송은 물이 좋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얼음골 약수터도 그렇지만 청송읍내 달기약수탕과 진보면 신촌약수탕의 물은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청송읍에서 5분 거리인 달기약수탕은 우리나라 3대 약수로 꼽힌다. 주왕산 외연산인 달기폭포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따라 원탕을 비롯해 10여 개의 구멍에서 샘물이 솟고 있다. 이 약수로 밥을 지으면 밥이 푸른 색을 띠고 찰기가 있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서울쪽에서 갈 경우)나 의성IC(대구쪽에서 갈 경우)에서 빠져 안동을 거쳐 고개를 몇 개 넘으면 청송이다. 청송읍내에서 차로 15분 가량 남동쪽으로 더 가면 주왕산국립공원(부동면 하의리·해발 720m)이 나온다.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으로 꼽힌다. 태백산맥의 지맥으로, 숱한 전설과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당나라의 주왕이 숨어 살았다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운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기암은 주왕산의 위용을 한눈에 느끼게 한다. 고려 태조 2년에 보조국사가 창건한 대전사주왕이 피신해 머물렀다는 주왕굴, 제1·2·3 폭포, 절골계곡, 내원계곡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경사 90도의 가파른 절벽인 학소대와 마주한 병풍바위는 한 폭의 그림 같다. ‘한국 자연의 100경’에 선정될 만큼 경관이 빼어나다.
 
주왕산 입구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남쪽에 작은 저수지가 있다. 별바위골 끝자락에 있는 이 자그마한 호수가 주산지다. 사진작가들이 새벽이슬에 옷을 적셔가며 담고 싶어하는 곳이다. 주왕산국립공원 구역 안에 있다. 조선 경종 원년(1721년)에 만들어진 농업용 저수지로, 저수지 안에 왕버들나무 2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물에 잠긴 채 1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이들 왕버들도 이젠 늙어 기력이 쇠잔해 보인다. 새벽이면 주산지를 포위하는 물안개와 아랫도리를 호수에 담그고 선 왕버들이 빚어내는 풍경은 태고의 신비를 담고 있다. 꿈속인 듯 아름답고 황홀하다. 주산지에서 또 남쪽으로 15분 가량 고개를 넘어가면 도로 오른쪽으로 부동면 내룡리 얼음골계곡이 나온다. 한여름에도 약수터 주변에 얼음이 얼고 계곡물은 얼음 같이 차갑다. 약수터 옆 암벽에는 높이 62m의 인공폭포가 설치돼 장관을 이룬다. 겨울에는 거대한 빙폭이 돼 빙벽 등반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마다 전국 빙벽등반대회가 열린다.

 

 

 

 

청송(靑松)의 주방산(周房山, 현재의 주왕산)은 골이 모두 돌로 이루어져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며, 샘과 폭포도 지극히 아름답다.

이중환이 주왕산을 두고 한 말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이었던 홍여방은 청송읍의 찬경루(讚慶樓)에 있는 『찬경루기』에서 이곳 청송의 형승을 일컬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산세는 기복이 있어서 용이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범이 웅크린 것도 같으며, 냇물은 서리고 돌아 마치 가려 하다가 다시 오는 것 같다.

이 말처럼 주왕산은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국립공원 중 면적이 가장 작은 주왕산이 1976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기이한 풍광이 많아서였다. 그렇게 높지도 크지도 않은 이 산은 조물주가 정성껏 빚은 솜씨인 듯 봉우리 하나하나와 계곡이 어울려 경이로운 절경을 연출한다. 특히 대전사(大典寺)에서 제3폭포에 이르는 4킬로미터에 이르는 계곡은 주왕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왕산은 해발 720미터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그 주위로 태행산(933미터)ㆍ대둔산(875미터)ㆍ명동재(875미터)ㆍ왕거암(907미터) 등 대개 해발 600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둘러서 있어 산들로 병풍을 친 듯한 모습이 매우 인상 깊다. 그래서 주왕산 일대는 예부터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렸다. 그 병풍 같은 봉우리들 사이 남서쪽으로 흐르는 주방천 상류인 주방계곡의 이쪽저쪽으로 아들바위ㆍ시루봉ㆍ학소대ㆍ향로봉 등 생김새를 따라 이름 붙인 봉우리도 한둘이 아니다.

대전사 뒤편에 솟은 흰 바위봉우리는 마치 사이좋은 형제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 봉우리가 주왕산 산세의 특이함을 대표하는 기암이다. 이 기암이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울퉁불퉁한 화강암 바위와 달리 그 생김새가 매우 매끄러워 보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기암을 구성하는 석질의 성분 때문이다. 기암은 화산재가 용암처럼 흘러내려가다가 멈춰서 굳은 회류응회암으로 된 봉우리인 것이다. 이 기암처럼 주왕산의 봉우리들은 화산이 격렬하게 폭발한 뒤에 흘러내리면서 굳은 회류응회암으로 이루어졌다.

 

대전사와 주왕산 대전사 뒤편에 솟은 흰 바위봉우리는 마치 사이좋은 형제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 봉우리가 주왕산 산세의 특이함을 대표하는 기암이다.

옛 이름이 석병산인 주왕산에는 중국 주나라 왕의 전설이 서려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고 칭한 뒤 당나라의 도읍지였던 자안으로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한 뒤 쫓겨다니다가 마지막 숨어든 곳이 이곳 주왕산이었다고 한다. 당나라에서는 주왕을 섬멸해달라고 신라에 요청했고, 신라에서는 마일성 장군의 5형제를 보내 주왕을 쳤다. 그때 주왕은 주왕산에 솟은 기암들을 노적가리처럼 위장하여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러한 전설을 뒷받침하듯 주왕산에는 주왕이 군사들을 숨겨두었다는 무장굴과 주왕의 군사들이 군사 훈련을 하고 그 안에서 주왕의 딸인 백련공주가 성불했다는 연화굴 그리고 주왕이 마 장군을 피해 있으면서 위에서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가 마 장군이 쏜 화살과 철퇴에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서린 주왕굴이 있다.

주왕굴에서 떨어져내리는 폭포 물로 세수를 하던 주왕이 화살과 철퇴에 맞았을 때 주왕이 흘린 피가 산을 따라 흐르면서 이 산기슭에선 수진달래[수단화(水丹花)]가 그토록 아름답게 피어났으며, 대전사도 고려 태조 2년에 보조국사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절이라고 한다.

이곳 주왕산은 주왕뿐 아니라 신라 때 사람 김주원이 숨어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선덕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추대된 김주원이 훗날 원성왕이 된 김경신의 반란으로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쫓겨 이곳 석병산에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주왕과 김주원의 한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주왕산의 골짜기들은 음습하기만 하고, 이곳저곳에서 세차게 떨어져내리는 폭포 소리는 여전히 요란하다.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 있는 주왕산은 수많은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빚어내는 절경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3대 암산 중 하나다. 주왕산은 밖에서 보면 거대한 바위로 둘러져 있어 우락부락하고 험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설수록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오르는 코스도 비교적 평탄해 등산이라기보다 가볍게 트래킹하기에 좋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사찰(대전사) 뒤로 우뚝 솟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아늑함을 안겨주며 뛰어난 자연 경관을 간직한 곳이 많다. 청학과 백학이 살았다는 학소대, 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오른 절벽이 금세 무너질 것 같아 긴장감을 주는 급수대,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하였다는 망월대, 연이어 나타나는 폭포 등 탐방객을 매료시키는 곳이 곳곳에 널려 있다. 가을이면 특히 바위틈을 비집고 나온 나무들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인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 중 주왕산 절경의 백미로 꼽는 곳은 학소대에서 제1폭포에 이르는 구간이다. 특히 학소교 건너 제1폭포에 이르는 나무데크길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펼쳐지는 기암괴석들이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제1폭포에서 800m가량 오면 오른쪽으로는 표주박 모양의 제2폭포, 왼쪽으로는 병풍처럼 넓게 퍼져 흐르는 제3폭포가 연이어 나타나며 제각각의 모습을 뽐낸다.

제3폭포에서 1km 더 올라가면 아늑한 분위기의 내원마을이 나온다. 억새풀이 우거진 평지에 놓인 작은 숲속 마을 같은 분위기로 곳곳에 돌담만 덩그마니 남은 집터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주왕산국립공원은 열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바위산이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은 신라 무열왕 16대 손인 김주원이 왕에 추대되었지만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이 산에 은거하며 전투를 벌였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당나라의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당나라로 쳐들어갔다가 패하여 이 산에서 숨어 지냈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밖에서 보면 산세가 단조롭고 부드러워 보이나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기암괴석과 거침없는 폭포의 절경이 이어지는 산이다.

산이 깊어 나라에 큰 난리가 있을 때마다 백성들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피난 와 마을을 이루어 2000년 초까지 아홉 가구가 거주했던 주방계곡 위쪽의 내원마을과 내원분교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전기 없는 달빛 마을’로 불리며 탐방객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나 2007년 사라지고 말았다. 망개나무, 노랑무늬붓꽃, 솔나리 등 희귀식물과 800여 종에 이르는 자생식물이 탐방객을 맞아주며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된 대전사와 주왕암, 백련사 등 고찰과 암자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쉽게 갈 수 있는 코스는 제1폭포와 제2, 3폭포를 지나 내원마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주방계곡 코스로 기암과 폭포가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하면서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다. 자하교-주왕암-망월대-학소대로 이어지는 코스는 자연관찰로가 조성되어 아이들과 함께 다녀오기 좋다. 가메봉과 장군봉을 등반하는 코스와 월외계곡에서 절골계곡을 횡단하는 코스도 등산객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주변에는 위장병과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는 달기약수와 아름다운 주산지가 있다.

 

 

 

주산지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물속의 왕버들을 담는다. 여름철에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저수지의 물을 빼는 경우가 있으니 청송군에 미리 문의해 보고 가자.

조선 숙종 때인 1720년에 조성하기 시작해서 경종 때인 1721년에 완공된 작은 저수지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본격적인 유명세를 탔고, 많은 사진작가들이 찍은 서정적인 사진이 공개되면서 출사여행지로 주목받게 되었다. 지금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가봐야 하는 장소로 통한다.

여행객이 몰리는 시기에는 평일에는 2백여 명, 주말이면 천여 명이 찾는다 하니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는 것이다.

이른 새벽에 주산지를 찾으면 맨 안쪽 전망대 데크 위아래로 사진작가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다. 새벽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면에 비친 신비로운 반영과 햇살에 끓어오르는 듯한 물안개를 담아내느라 여념이 없다. 주변의 사과밭과 절골 계곡, 주왕산 단풍 등 볼거리가 많은 사진 촬영만 다녀도 하루가 모자라다. 주산지 일대의 사과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고, 주왕산 입구의 별미인 얼음골 막걸리와 ‘정구지 찌찜(부추전)’은 출사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 때문에 예부터 석병산, 대둔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주왕산은 대전사에서 제3폭포에 이르는 4㎞의 주방천 주변이 볼 만하다. 주방천 계류와 폭포, 소, 담, 그리고 죽순처럼 솟아오른 암봉 및 기암괴석, 여기에 울창한 송림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절경을 빚어낸다.


청학과 백학이 다정하게 살았다는 학소대,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 주왕이 숨어있다가 숨졌다는 주왕암, 만개한 연꽃 모양 같다는 연화봉, 그리고 제 1, 2, 3폭포 등 명소가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


주왕산은 태행산, 관음봉, 촛대봉 등 여러 산봉들 외에도 주왕굴, 무장굴 등의 굴과 월외폭포, 주산폭포, 내원계곡, 월외계곡, 봉산못, 구룡소, 아침 햇살이 바위에 비치면 마치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는 병풍바위, 등도 명소이다.


주왕산의 11경은 기암, 자하성, 백련암, 주왕굴, 시루봉, 급수대, 학소대, 연화 굴, 향로봉, 복암 폭포, 좌암 등이다.

주왕산에는 대전사와 광암사 등 유서깊은 사찰을 비롯해서 주왕암과 백련암 등이 있다. 대전사에는 사명대사의 진영과 당나라 장군 이여송이 사명대사에게 보낸 친필 목판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 때문에 예부터 석병산, 대둔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대전사에서 제3폭포에 이르는 4㎞의 주방천 주변이 볼 만하다. 주방천 계류와 폭포, 소, 담, 그리고 죽순처럼 솟아오른 암봉 및 기암괴석, 여기에 울창한 송림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절경을 빚어낸다.

 

주왕산에서』 김사인

 

 

가을볕
이 엄숙한 투명 앞에 서면
썼던 모자도 벗어야 할 것 같다
곱게 늙은 나뭇잎들 소리내며 구르고
아직 목숨 붙은 것들 맑게 서로 몸 부비는 소리
아무도 남은 길 더는 가지 않고
온 길을 되돌아보며
까칠한 입술에 한 개피씩 담배를 빼문다

어떤 얼굴로 저 가을볕 속에 서야
사람은 비로소 잘 익은 게 되리
바지랑대도 닿지 않는 아슬한 꼭대기
혼자 남아 지키는 감처럼
닥쳐올 그 어느 시간의 예감을 지키며
기다려야 한다면
나는 이 맑음 속에 어떤 자세로 앉아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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