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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와 능금

글모음(writings)/토막이야기

by 굴재사람 2016. 11. 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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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치아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었다.

고대국가에서 치아의 개수를 보고 왕위 계승자를 결정한 것은

부족사회의 족장 추대 과정에서 덕과 지혜를 따지던 풍습이 관습으로 이어진 것이다.

고대국가에서 왕권은 하늘이 내려준 신탁이었고

이가 많다는 것은 연륜을 갖춘 연장자로

하늘로부터 왕의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신라 유리왕과 탈해왕에게 선왕이 왕위를 물려주라고 했을 때의 일이다.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이 덕이 있다고 하여 한사코 왕위를 사양했다.

결국 누가 더 덕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두 사람에게 떡을 물게 했다.

이때 이빨자국이 더 많이 난 유리왕이 왕위체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유리왕은 왕호를 '이사금'이라고 했다.


당시 왕위 계승자를 이사금이라고 한 것도 치아와 연관이 있다.

이사금은 '치리(齒理)'라는 뜻으로,

잇자국을 뜻하는 '니슨금-닛금-니은금'이 변한 말이고

이 이사금이 다시 발음이 변해 '임금'이 된 것이다.

따라서 '임금'은 왕위 계승 과정에서 치아의 상징적 역할을

그대로 담고 있는 말이다.


치아는 남성성 또는 권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표현은

막강한 힘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서양에서도 치아는 공격의 원초적 무기이자 활동성을

상징해서 성벽, 담, 요새 등 난공불락의 견고함과 힘을 의미했다.

특히 남성에게 이가 빠진다는 것은 거세와 비슷한,

완전한 인생의 실패 또는 상실을 의미했다.


<삼국유사>에서는 임금의 치아 수를 판별할 때

인절미 대신 능금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능금은 우리말로 나라님을 뜻하는

임금과 발음이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오래전부터 능금을 재배했다.

능금을 사과의 주생산지인 경상도 사투리로 오래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능금은 우리나라 토종 사과를 뜻하며

한자어로 임금(林檎) 또는 내금(來禽)에서 유래한 우리 고유의 명칭이다.

능금의 한자인 수풀 '림(林)'에 금수 '금(禽)' 또는 올래 '래(來)'에 금수 '금(禽)을

풀어보면 능금의 맛이 좋아 새들이 숲을 이룰 정도로 모들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능금은 과일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과일의 왕'인 셈이며

이것이 왕을 의미하는 임금과 발음이 같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붉은 능금은 사람들이 껍질째 베어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과일이다.

특히 과일을 베어 먹을 때 잇자국이 그대로 남는 과일로는 능금이 거의 유일하다.

따라서 떡을 대신해 능금을 물게 해서 잇자국을 보고

왕위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때문인지 능금은 고려 시대에도 수도 개성에서 재배를 장려했고,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광화문 왼쪽의 자하문 밖 세검정에

능금 재배로 유명한 과수원이 많았다.



- 김진섭의 <이야기 우리문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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