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수많은 유랑민들이 남대문 밖으로 모여들었다.
세도가에서는 빈대떡을 만들어 소달구지에 싣고 와서
유랑민들에게 "아무개 대감댁의 적선이오"라고
외치면서 던져주는 구호 활동을 했으니
당시 빈대떡은 일조의 구호 식품이었던 셈이다.
빈대떡은 녹두를 주 원료로 한 먹거리로 '빈자떡'이라고도 했다.
빈자떡은 본래 '병자병(餠子餠)'이라는 전병의 일종인데
눅두지짐 사이에 꿀을 넣고 반죽한 팥을 곁들여
위에는 잣과 대추 등으로 꽃모양을 붙여서 만들었다.
지역에 따라 빈대떡은 지짐, 부침개, 문두, 녹두떡 등으로도 불렀다.
기록에 따르면 빈대떡의 종류는 다양하다.
고기를 재료로 한 달고 화려하며 향기로운 빈대떡에서부터,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팥소 대신 채소를 넣는 지극히 소박한 빈대떡까지 있다.
조선 시대에 명물로 꼽힌 평안도 지방의 빈대떡은
한양의 빈대떡에 비해 크기가 세 배나 되고 두께도 두 배나 되었으니
빈대떡에도 귀천(貴賤)이 있었던 셈이다.
동시에 권세가에서부터 일반 서민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빈대떡을 즐겼음을 의미한다.
- 김진섭의 <이야기 우리문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