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엽에 영동 지역 명천 지방에 살던 어부가 이름 없는 고기를 잡아
관아에서 주방 일을 보는 친구에게 전해주었다.
주방장은 이 생선을 요리해서 관찰사 민씨의 식탁에 내놓았다.
관찰사는 아주 맛있게 생선 요리를 먹고 생선 이름을 물었다.
하지만 생선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관찰사는 그 자리에서 명천 지방의 첫 자인 '명(明)'과
고기를 바친 어부의 성씨인 '태(太)'를 합쳐 '명태(明太)'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앞으로 300면간 명태가 귀한 생선으로
대접받을 것이라는 예언을 덧붙였다.
이후 이름을 갖게 된 명태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명태는 맛이 좋고 살 이외에 다른 부위도 쓰임새가 다양해서
알은 명란젓으로, 창자는 창난젓으로, 내장은 기름으로 쓰는 등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경제적인 생선으로 각광받았다.
- 김진섭의 <이야기 우리문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