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曉(춘효) 봄날 새벽
- 孟浩然(맹호연) -
春眠不覺曉(춘면불각효) 봄 잠 자느라 날이 밝는 줄 몰랐더니
處處聞啼鳥(처처문제조) 곳곳에 지저귀는 새 소리 들린다
夜來風雨聲(야래풍우성) 간밤에 비바람 치는 소리 들렸는데
花落知多少(화락지다소) 꽃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 孟浩然(689~740)은 自然詩로써 당시 王維와 병칭되던 시인이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왕유는 귀족적인 隱士로서 부귀공명을 다 맛본 뒤에 山水의 품에 귀의한 사람,
그의 심경과 작품의 분위기는 안정되고 평담한 것이다.
그러나 맹호연은 마흔 살까지, 당시 유행하던 隱逸의 기풍을 좇아 오랫동안 산수 속에서 야인으로 지냈지만
한편으로 공명을 세울 마음을 버리지 아니하였다.
그는 마흔 살에 서울로 가서 進士 시험을 쳤으나 실패, 크게 낙심하고 돌아왔다.
그렇다고 이것이 그의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맹호연의 시는 보다 정열적이고 인간미가 있다 할 수 있다.
맹호연은 호북성 양양襄陽(襄樊市) 사람이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맹양양(孟襄陽)이라 불렀다.
부근의 鹿門山에서 일생을 야인으로 보냈다.
그는 두어 번 벼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공교롭게도 놓치고 말았다.
그는 마흔 살을 전후하여 長江의 남북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많은 山水詩를 썼다.
왕창령(王昌齡)이 양양을 찾아왔을 때, 큰 병을 앓고 났던 몸인데도
너무 기뻐하다가 드렁허리(鱓魚)를 잘못 먹고 죽었다.
* 새벽녘, 시인은 잠에서 덜 깬 상태로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함께 새롭고 활기찬 하루를 맞이한다.
그러나 퍼뜩 지난밤의 폭풍우가 있었음을 생각해내고 떨어져버린 꽃잎을 아쉬워한다.
여기에서 시인은 봄날의 생명, 그 시작과 끝을 각각 새소리와 꽃잎의 떨어짐으로 대비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하룻밤 새 삶과 죽음을 겪은 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한다.
이 시는 녹문산 은거 시기인 25세에서 35세 사이에 쓴 작품으로,
시인은 봄날의 새벽에 깨어난 순간을 잘 포착하여 연상하고 묘사했다.
작품 속에 화려하고 기묘한 문체나 표현은 없지만 아름다운 정취가 잘 녹아 있다.
풍격은 평범하고 자연스럽지만 깊이가 있어서 구체적인 시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한다.
또한 감각적 요소 중 청각을 활용하여 새소리의 활기찬 삶과 비바람에 떨어진 꽃잎의 죽음을 더욱더 분명하게 대비했다.
이 시에서 보듯, 맹호연은 동진(東晋)의 도연명의 뒤를 잇는 전원시인으로, 전원시를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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