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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父辭 - 屈原

글모음(writings)/한시(漢詩)

by 굴재사람 2015. 8. 3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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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父辭(어부사)

 

- 屈原(굴원) -

 

屈原旣放 遊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稿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於斯

屈原曰 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

 

漁父曰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

何不掘基泥而揚基波

衆人皆醉 何不飽基糟而歠基醨

何故深思高擧 自令放爲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漁父莞爾而笑 鼓枻而去

乃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不復與言

 

<1>

屈原旣放 (굴원기방)  屈原이 이미 추방되어

遊於江潭 (유어강담)  강과 못에서 노닐고

行吟澤畔 (행음택반)  못가에서 거닐며 글을 읊는데

顔色憔悴 (안색초췌)  顔色이 초췌하고

形容枯稿 (형용고고)  형상이 볏짚같이 말라

漁父見而問之曰 (어부견이문지왈)  漁父가 보고 물어 가로대

子非三閭大夫與 (자비삼려대부여)  당신은 三閭大夫 아니십니까

何故至於斯 (하고지어사)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습니까

屈原曰 (굴원왈)  屈原 말하기를

擧世皆濁我獨淸 (거세개탁아독청)  온 세상 탁한데 나홀로 깨끗하고

衆人皆醉我獨醒 (중인개취아독성)  뭇 사람 다 취하고 나홀로 깨어 있어

是以見放 (시이견방)  그래서 추방당했소이다

 

*

:

行吟행음:거닐면서 글을 읊다. 귀양살이 하며 글을 읊다

澤畔택반:못가

:파리하다

:파리하다

形容:형상

:마르다

稿:볏집

:당신(경칭)

:아닌가

三閭大夫삼려대부:楚나라 昭氏(소씨), 屈氏(굴씨), 景氏(경씨) 세 왕족을 감시 감독하는 직책​

:어조사

:어조사

:,이것

擧世거세:온 세상,모든 사람

:흐리다

衆人:여러 사람,뭇 사람

是以:이로 인해, 그래서

:당하다

 

<2>

漁父曰 (어부왈)  漁父 말하길

聖人不凝滯於物 (성인불응체어물)  聖人은 주위에 구애받지 않고

而能與世推移 (이능여세추이)  능히 세상의 推移를 따르거늘

世人皆濁 (세인개탁)  세상 사람 다 濁하면

何不淈其泥而揚其波 (하불굴기니이양기파)  어찌 그 진흙탕 휘저어 흙탕물 튀기고

衆人皆醉 (중인개취)  모든 사람 취했으면

何不飽其糟而歠其醨 (하불포기조이철기리)  어찌 그 지게미 먹고 그 박주 마시지

何故深思高擧 (하고심사고거)  어이하여 생각이 깊고 뜻이 높아

自令放爲 (자령방위)  추방을 자초하시었소

*

:엉기다

:체하다

:환경,주위,처지

推移추이:추이

淈굴:흐리다,어지럽히다,진흙

泥니:진흙​

:키질하다,까부르다

何不淈其泥而揚其波 (하불굴기니이양기파)  어찌 그 진흙탕 휘저어 흙탕물 튀기고

어찌 그들이 노는 진흙탕에서 그 흙탕물 튀기며 놀지 않고

飽:배부르다,着服하다​

:들이마시다

:묽은 술,薄酒박주, 粗酒조주

:진한 술

醇醨:진한 술과 묽은 술

何不飽其糟而歠其醨 (하불포기조이철기리)  어찌 그 지게미 먹고 그 박주 마시지

어찌 그들이 먹는 지게미 같이 먹고 그들이 마시는 박주 마시지

高擧고거:높이 들다

 

<3>

屈原曰 (굴원왈)  屈原

吾聞之 (오문지)  내가 이렇게 들었소

新沐者必彈冠 (신목자필탄관)  새로 머리 감은 사람 관을 털어 쓰고

新浴者必振衣 (신욕자필진의)  새로 목욕한 사람 옷을 털어 입는데

安能以身之察察 (안능이신지찰찰)  어찌 더없이 깨끗한 몸으로

受物之汶汶者乎 (수물지문문자호)  참으로 더러운 것 받아드리겠소

寧赴湘流 (영부상류)  차라리 소상강에 가서

葬於江魚之腹中 (장어강어지복중)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내리라

安能以皓皓之白 (안능이호호지백)  어찌 새하얀 몸이 능히

而蒙世俗之塵埃乎 (이몽세속지진애호)  世俗의 먼지를 덮어 쓰리오

漁父莞爾而笑 (어부완이이소)  漁父 빙그레 웃더니

鼓枻而去 (고예이거)  뱃전을 두드리고 떠나가며

乃歌曰 (내가왈)  이에 노래 불러 왈

滄浪之水淸兮 (창랑지수청혜)  滄浪의 물이 맑으면

可以濯吾纓 (가이탁오영)  가히 나의 갓을 씻고

滄浪之水濁兮 (창랑지수탁혜)  滄浪의 물이 하면

可以濯吾足 (가이탁오족)  가히 나의 발을 씻으리라

遂去不復與言 (수거불부여언)  그리하여 떠나가니 다시 말할 수 없었다

 *

:머리 감다, 물로 씻다

:털다

:갓을 쓰다

:목욕하다

:떨다

:옷을 입다

:깨끗하다

察察:매우 깨긋하다

江魚:강고기

:더럽다

汶汶:매우 더럽다

:차라리

:나아가다,다다르다

湘流상류:

湘江상강. 瀟湘江소상강. 廣西省에서 발원하여 호남성을 거쳐 동정호로 들어간다

:깨끗하고 희다

皓皓:매우 깨끗하고 희다

:덮어 쓰다,받다,어둡다,어리석다

塵埃진애:티끌,먼지

莞완:빙그레 웃다

:,,어조사,그러하다

莞爾완이:빙그레 웃다

:,치다,두드리다

:뱃전

:,이에,그래서,그리하여

滄浪창랑:창랑,창파,큰 바다의 푸른 물결 물빛이 검푸르다

:그래서,떠나가다

 

*

굴원(屈原)은 중국 호북성() 자귀현() 굴원진에서 출생하였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왕족과 동성()이며, 이름은 평(), 자는 원이다.

생몰연대는 기본자료인 <사기()> <굴원전>에 명기()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설이 있으나,

지금은 희곡 <굴원>의 작자인 궈모뤄[]의 설에 따른다.

 

굴원의 대표작인 <이소()>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정칙()이라고 했고 자를 영균()이라고 표기했다.

굴원은 젊어서 부터 학식이 뛰어나 초나라 회왕()의 신임을 받았고 26세에 좌도(:)의 중책을 맡아,

내정·외교에서 활약하였다. 하지만 법령입안() 때 궁정의 정적()들과 충돌하여,

중상모략으로 국왕 곁에서 멀어지기도 하였다. <이소()>는 그때의 분함을 시()로 표현한 것이라고 <사기>에 기록하고 있다.

 

*

당시 초나라는 제()나라, 진()나라 3국이 대립하였던 때였다.

 

굴원은 제()나라와 동맹하여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설()을 주장하였으나,

초나라 회왕과 중신들은 연횡설()을 주장한 진나라의 장의()의 전략에 속아 오히려 굴원이 실각하고 말았다.

초나라는 연횡설에 따라 제나라와 단교하였다가 진나라에 기만당하였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출병()하여 진나라와 전쟁을 벌였지만 고전만 거듭하다 패하였다.

 

굴원이 다시 등용하여 정사를 맡게 되었고 진나라와의 화평조건으로 장의의 목숨을 요구하였다.

장의가 자진하여 초나라의 인질이 되었지만 내통한 정적과 왕의 애첩()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장의를 석방하고 말았다.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굴원은 귀국하여 장의를 죽여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이미 장의는 진나라로 달아난 뒤였다.

 

이후 진나라에서 화평을 위해 초나라 왕을 진나라로 초대한다는 계략을 펴오자

굴원은 왕이 진나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지만 결국 왕은 진나라로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왕이 진나라에서 객사()하자, 장남 경양왕()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이 영윤(:재상)이 되었다.

자란은 아버지를 객사하게 한 장본인이었으므로, 굴원은 그를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쯔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다.

굴원의 대표작인 <어부사()>는 정계에서 쫓겨나 강남에 머물며 집필한 작품이다.

창강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깨친바를 집필한 책이다.

굴원은 어부사에서 자신을 중취독성()이라 일컬으며 초나라가 처한 상황을 한탄했다.

 

<사기>에는 <회사부()>를 싣고 있는데, 이는 절명()의 노래이다.

한편, 자기가 옳고 세속이 그르다고 말하고, 난사(:최종 악장의 노래)에서는,

죽어서 이 세상의 유(:법·모범)가 되고 자살로써 간()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 창사[]에 있는 멱라수()에 투신하여 죽었다.

 

그의 작품은 한부()에 영향을 주었고, 문학사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된다.

 

굴원이 멱라수에 투신하여 죽은 날이 음력 5월 5일 단오날인데 중국에서는 이날을 문학의 날로 기린다.

특히 단오날에 댓잎에 싸서 먹는 쫑쯔()는 굴원을 기리기 위한 음식로 유래되었는데

쫑쯔를 강물에 던져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뜯어먹지 못하게 했다는 풍속이 전해진다.

또한 중국에서 행해지는 용선() 경주 시합도 강물에 빠진 굴원의 시신을 빨리 건져내기 위한 것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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