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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꼬마리씨 하나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5. 4. 1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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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꼬마리씨 하나

 

                     - 임영조 -

 

 

멀고 긴 산행길

어느덧 해도 저물어

이제 그만 돌아와 하루를 턴다

아찔한 벼랑을 지나

덤불 속 같은 세월에 할퀸

쓰라린 상흔과 기억을 턴다

그런데 가만! 이게 누구지?

아무리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억센 가시 손 하나

나의 남루한 바짓가랑이

한 자락 단단히 움켜쥐고 따라온

도꼬마리씨 하나

왜 하필 내게 붙어 왔을까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예까지 따라온 여자 같은

어디에 그만 안녕 떼어놓지 못하고

이러구러 함께 온 도꼬마리씨 같은

아내여! 내친김에 그냥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빚이 있다면

할부금 갚듯 정주고 사는 거지 뭐

그리고 깨끗하게 늙는 일이다

 

- 시집 『귀로 웃는 집』, 창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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