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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한 잔씩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5. 4. 1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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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한 놈은 너고 한 놈은 나다, 접시 위에 차례로 놓이는 날개를 씹으며, 꾼 옆에도 꿈이 판 없이 떠도는 마음에 또 한잔, 젖은 담배에 몇 번이나 성냥불을 그어 댕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수 없이, 다만 다 같이 풀리는 기쁨, 멀리 뒷산에는 문득 나무들이 손 쳐들고 일어서서 단풍을 털고 있다.

 

- 김태준詩, <흔들릴 때마다 한 잔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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