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태청이 무궁에게 물었다.
"당신은 도를 알고 있소?"
"나는 모르오."
태청은 다시 무위에게 물었다.
"당신은 알고 있소?"
"나는 알고 있소."
"당신이 안다는 그 도에 무슨 속성 같은 게 있습니까?"
"있소."
"그 속성이란 어떤 거요?"
"나는 도가 고귀하면 제왕이 되고 천하면 노예가 되며 모이면 삶이 되고
흩어지면 죽음이 된다는 것을 아오."
이 말을 들은 태청이 옆에 있는 무시에게 말했다.
"이와 같이 무궁은 도에 대해 알지 못하고 무위는 알고 있는데
대체 누가 옳은 것입니까?"
무시가 대답했다.
"알지 못한다는 쪽이 심오하고 안다는 쪽은 천박한 것입닏.
모른다는 쪽은 앎이 안으로 쌓여 있기 때문이고, 안다는 쪽은 앎이
밖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태청이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모르는 게 아는 것이고 아는 것이 모르는 것인가?
과연 어느 누구가 모르는 것이 아는 것임을 알고 있는가?"
무시가 말했다.
"도란 귀로 들을 수가 없는 것, 들었다면 도가 아니오.
도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보였다면 도가 아니오.
도란 말할 수 없는 것, 말했다면 도가 아니오.
만물에 형체를 베풀어주면서도 그 스스로는 형체가 없는 것임을 안다면
그 도는 의당 뭐라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것이오,
그래서 도를 물었을 때 이에 대답하는 자는 도를 모르는 것이고
도를 묻는 자 역시 아직 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도는 물을 수도 대답할 수도 없는 그 무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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