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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사도

라이프(life)/명리학

by 굴재사람 2015. 3. 1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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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12사도

 

 

 

 

고흐 그림 ‘밤의 카페 테라스’ 속 인물들이 예수와 12사도를 상징한다는 주장은 여러 모로 흥미롭다. 해외 언론은 미술 연구가 제어드 박스터의 분석을 인용해 긴 머리에 흰옷 입은 사람이 예수, 테이블에 앉거나 주변에 서 있는 열두 명이 12사도, 카페에서 걸어나가는 한 사람이 배반자 가롯 유다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고흐가 작품 속에 은밀한 형태로 ‘최후의 만찬’을 그려 넣었다는 얘기다.

왜 하필 12사도였을까. 학자들은 예수가 수많은 추종자 중에서 12명을 선택해 사도로 삼은 것은 이스라엘 12지파의 통합 및 복음 전파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예수 생전에 제자였던 이들은 예수 승천 후 복음을 선포하고 귀신을 쫓는 권능을 갖춘 사도로 임명돼 각지로 파견됐다. 자살한 유다를 대신해 부활의 증인이 될 사람을 제비뽑아 채운 것도 ‘12’라는 숫자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 도성이 12기초석과 12진주문을 가진 것 또한 그렇다.

기독교뿐만이 아니다. 동서양 문명권 모두에서 숫자 12는 ‘우주의 질서’와 ‘완전한 주기’를 상징하는 완성수다. 수리학이 완성되기 전부터도 1년은 12개월, 하루 밤낮은 12시간씩이었다. 태양 궤도를 상징하는 원을 12등분하고 12개의 별자리를 붙인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신화와 인도 경전 베다 속의 12신, 동양의 간지를 이루는 12지(支), 북유럽 신화 속 우주수(宇宙樹)의 12과실, 아서 왕의 원탁 기사 12명도 같은 범주다.

현대적인 발명품이나 문화 콘텐츠에도 무수히 많다. 축구공은 12개의 검은색 정오각형과 20개의 흰색 정육각형으로 구성돼 있고, 피아노 건반은 한 옥타브가 12개의 반음으로 이뤄져 있다. 키보드의 기능 키(F1~F12) 12개, 연필 1다스 12개,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이 꼽은 최고 와인 12가지, 호주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12사도 바위상까지 거론한다면 좀 지나칠까.

 

고흐가 그림 속에 종교적인 암시를 숨겨놓았다면 그 이유는 성장 배경과 관련 있을지 모른다. 그는 화가가 되기 전 목회자를 꿈꿨다. 아버지가 네덜란드개혁교회 목사였고 삼촌이 저명한 신학자였던 걸 보면 그럴 법하다.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릴 무렵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종교가 대단히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썼으니 더욱 그럴 수 있겠다. 평생 고달프게 산 그가 어두운 밤의 밑바닥을 천국의 빛인 노란색으로 칠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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