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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 시절 이성계가 꾼 불길한 꿈, 무학대사의 해몽은…

라이프(life)/명리학

by 굴재사람 2015. 2. 2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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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 금화편양도(金華鞭羊圖)



야인 시절 이성계가 꾼 불길한 꿈, 무학대사의 해몽은…

근심 없애려 羊 세던 밤... 평화가 내려앉고 별이 드리웠다.


을미년(乙未年)이 밝았다. 새해라고 해서 태양이 새 걸로 바뀌는 것도, 나 또한 새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겠지만, 희망을 품어보는 것도 새해의 도리가 아니겠냐고 애써 다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띠라든가 절기 같은 게 되돌아 오는게 아니겠냐며 마음을 돌려 먹는다.

양을 언제부터 가축으로 키웠는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고대 이란 지역 석판.점토판에 나온 기록을 통해 기원전 1만 1000~9000년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무풀론'(일종의 야생 양)등과 유사한 양이 길러진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의 양은 큰 뿔이 달려 야생동물에 가깝고, 털을 얻기보다는 고기로 이용하기 위해 가축화가 시도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아는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양의 역사는 기원전 6000년쯤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쯤 고대 석판에도 양에서 털을 얻었다는 기록이 나온다.양 전문가인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조재운 박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기록을 종합해 (우리가 아는 종류의) 양의 가축화는 BC6000년 정도로 보는게 적절한 듯 하다고 말했다.

기원전 9000년 경에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개와 순록, 염소보다 약간 늦게 양을 뜻하는 라틴어 '오비스(ovis)'와 암양을 뜻하는 '유(ewe)' 는 모두 산스크리트어 '아비(avi)' 에서 나왔다. 이 단어의 어근 '아브(avi) ' 는 '지키고 보호하다' 라는 뜻. 우리가 양을 돌보았는가? 아니면 우리를 돌보았는가?

어째든 길 들여진 양은 전 세계에 분포한다 고 하지만 작정해야 볼 수 있는게 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 양을 쫓는 모험' 의 주인공은 양을 보겠다고 홋카이도까지 가야 하고 한국에서도 강원도 어딘가로 가야 한다. 목축과 농경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적이되 비현실적인 동물이란 말이다.

그래서 작심하고 양을 둘러싼 꿈들, 허망한 것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먼저 이성계의 꿈. 야인 시절 이성계가 불길한 꿈을 꾼다. 양을 잡으려는데 양의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진 것. 무학대사는 이렇게 해몽한다. " 양(羊)'에서 뿔과 '꼬리' 가 떨어지면 "왕(王)'자가 되니, 임금이 되시는 꿈입니다.

다음은 모세의 꿈. 미디안이란는 곳으로 망명한 모세는 그곳에서 결혼해 장인의 양들을 치게 된다. 어느 날 모세의 꿈(혹은 환상). 훨훨 타오르는 가시덤불 속에서 신이 나타나 명한다. 이스라엘 후손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가라고. 그래서 모세는 사람들과 양떼를 몰고 그곳으로 간다. 나는 모세가 이름을 남긴 최고(最高)의 양치기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양치기라는 직업은 꽤 근사한 직업이 아닐까라고 . 왜냐하면 내가 아는 양치기들은 본업보다 꿈의 세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일단. 독서망양(讀書亡羊)' 이라는 고사를 만들어 낸 장(臟)이라는 양치기. 주간(竹簡)으로 된 책을 읽다 양을 잃어버린 인물이다. 그리고 '양치기 소년'. 양을 치는게 충분히 고려됐다면 거짓말을 할 여력이 있었었을까? 마지막으로 알퐁스 도테 '별'의 양치기. 여기에는 양치는 일의 고역 대신 아름다운 스테파네트 아가씨에 대한 연정이 있다.

양치기들이 이런 여유를 향락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양 때문이다. 양은 다른 무리에서 온 양을 식별할줄 알고 , 양치기의 얼굴을 길게는 2년까지 기억하며, 어떤 능선과 바위와 냇물이 목초지의 경계인지 한 번 배우면 잊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새끼에게 가르치면서, 수백년 뒤까지 대대전승.

하지만 근심도 있다고 한다. 양치기들은 양이 맹수에게 습격 당할까 봐 잠자리에서 양을 세기 시작했다. 놀라지 말 것. 우리가 불면에 시달릴 때 양을 세는 것의 기원이 양치기들의 근심이었다. 프랑스어에는 'compter lrs moutons'라는 관용어가 있는데 '잠을 청하기 위해 양을 세다'라는 뜻이다. 멋지지 않나. 양치기의 근심이 우리의 근심으로 이어졌다니.

양이 새끼의 새끼에게 그러는 것처럼 우리도 자자손손. 우리의 조상이 양치기일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 잠이 안 오면 양을 세 볼일이다. 양털은 구름으로 바뀔 것이고, 구름이 있다면 그곳이 하늘. 잠자리는 하늘이 될 것이며, 나는 하늘에서 별과 함께 빛나며, 양떼를 내려다 볼 수 있을 것이다.


- 한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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