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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국 주막 '한잔'

라이프(life)/술

by 굴재사람 2013. 12. 2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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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국 주막 '한잔'

 

 

2010년 뉴욕 맨해튼 헬스키친 식당가에 한식당 '단지'가 문을 열자 교민들은 시큰둥했다. 열다섯 평에 다닥다닥 서른여섯 석을 들인 공간부터 옹색했다. 테이블은 두어 개뿐, 바처럼 길게 놓은 좌석에 모르는 사람과 엉덩이를 비비고 앉아야 했다. 잡채·육회·보쌈·부대찌개가 10~20달러씩이지만 양이 야박했다. 손바닥만 한 고추전이 13달러, 김치도 따로 돈을 받았다. 푸짐하게 끓이고 구워야 성이 차는 한국 사람 식탁과 거리가 멀었다.

▶맛은 오히려 32가(街) 한식당들보다 토속적이었다. 김치는 주인이자 요리사 후니 김의 장모가 담가줬다. 된장은 뉴욕에서 서너 시간 떨어진 곳 한국 할머니가 담근 것을 쓰다 포항에서 가져온다. 그래서 된장찌개를 메뉴에 '냄새 고약한(stinky) 스튜'라고 썼다. 대신 말끔한 미국인 웨이터들을 고용해 음식 맛과 먹는 요령을 자세히 설명하게 했다. "육회에 메추리알 날노른자를 끼얹고 젓가락으로 휘저어 먹으라"고 하면 손님들이 재미있어했다.

만물상 일러스트

▶미국인들은 자극적인 맛과 냄새를 각오하며 먹어보고는 열광했다. 넉 달 만에 줄이 늘어섰다. 열 달 뒤엔 권위 있는 음식점 평가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하나를 받았다. 국내외 통틀어 한식당이 처음 받은 미슐랭 별이었다. 한국 이름 김훈이, 마흔 살 후니 김은 세 살에 한국을 떠났다. 의대를 그만두고 프랑스 요리 학교를 다닌 뒤 미슐랭 별 셋짜리 뉴욕 최고 프랑스 식당과 일식당에서 2년씩 일했다.

▶후니 김은 26가에 두 번째 한식당 '한잔'을 열었다. 문간에 술 주(酒) 자 쓴 청사초롱을 매달았듯 한국식 주막이다. 해물파전, 오징어볶음, 파채 족발에 서울서도 보기 힘든 24도 소주를 곁들인다. 생막걸리는 맥주 머그에 담아 낸다. 그는 서울을 드나들며 삼각지 차돌박이, 을지로 냉면집 불고기, 오장동 함흥냉면을 즐긴다. 광장시장 '마약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한다. '한잔'의 '돼지기름 떡볶이'는 통인시장 '기름 떡볶이'에서 착안했다.

▶'한잔'이 뉴욕타임스가 뽑은 '올해 가장 주목받은 레스토랑 톱10'에 들었다. 후니 김은 재료에 각별히 공을 들인다. 쇠고기는 콜로라도 농장에서 날라 온다. 닭고기는 잡자마자 가져와 따뜻한 채로 도착한다. 라면 국물은 돼지뼈를 열두 시간 고아낸다. 그는 무엇보다 한식을 '퓨전'으로 얼버무리지 않고 미국인 입맛과 정면 대결한다. "순한 일식이 로맨틱 코미디라면 강렬한 한식은 액션 영화"라고 말한다. 후니 김을 보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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