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을 펴기만 해도, 쥐기만 해도 불구다.
"스님들은 그저 개구일성 보시하나 나누어주라 약조라도 한 듯이 그렇게 말씀들을 하시던데
자기 재산이 좀 있다고 해서 허펑허펑 남에게 퍼주기만 하는 게 옳겠습니까?,
아니면 안 쓰고 절약해서 자기 재산을 일구는 게 옳겠습니까?"
이진사의 물음에 한암스님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했다.
"허허허허! 그럼 이번에는 소승이 이진사께 감히 여쭙겠습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이진사께선 오른손을 한번 펴 보시지요."
"예? 소, 손을 펴보라니 이렇게 말씀입니까?"
이진사는 영문을 모르고 한암스님이 하라는 대로 오른손을 쫘악 펴 보였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손가락을 활짝 다 폈는데
그 손가락을 오므리지 못하면 그것은 불구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아, 손가락을 오므리지 못하면 그거야 불구지요."
"그럼 이번에는 주먹을 한번 쥐어 보시지요."
"이렇게 말씀입니까?"
"예, 쥔 주먹을 펴지 못하면 그것 역시 불구가 아니겠습니가?"
"한번 쥔 주먹을 펴지 못하면 그것 역시 불구가 아니겠습니까?"
한암스님은 싱긋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예에? 아니 바로 그렇다니요?"
"재물을 허펑허펑 허비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요,
재물을 덮어놓고 움켜쥐기만 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니,
나눠줄 줄도 알고 절약할 줄도 알아야 옳은 일이라 할 것입니다."
- 윤청광의 <고승열전 15 한암큰스님. 바구니에 물을 담고 달려가누나>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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