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도둑·대문·거지 없는 3무 의 섬 제주도가 ‘4무도 ’ 된 까닭은
올여름 코르시카에서 며칠을 지냈다. 나폴레옹의 생가(生家)가 있는 아작시오에 숙소를 정하고 렌터카로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분수에 안 맞게 ‘맨발의 호사(barefoot luxury)’를 좀 누렸다고나 할까. 코르시카는 태양과 바다, 백사장과 꽃이 어우러진 ‘지중해의 보물섬’이었다. 해발 2000m가 넘는 산이 스무 개나 될 정도로 산세(山勢)도 험하다. 유럽에서 최고로 치는 트레킹 코스가 거기에 있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 코르시카가 있다면 한국에는 제주도가 있다. 크기는 코르시카의 5분의 1밖에 안 되지만 기후나 풍광은 제주도가 낫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이곳에 살고 싶다’는 강한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영화 ‘건축학 개론’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새 삶을 찾아 제주도로 가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은퇴와 동시에 1년 정도 살아볼 요량으로 훌쩍 제주도로 떠난 선배도 있다. 선정 과정에서 비록 잡음은 있었지만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뽑힌 걸 허투루 볼 일은 아니다. 걷기 열풍 속에 올레길은 제주도의 느린 삶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며칠 전 올레길 21코스가 개통됨으로써 섬을 한 바퀴 도는 460㎞ 일주 코스가 완성됐다.
제주도가 육지와 달리 ‘나 홀로 호황’을 구가하면서 ‘4무도(四無島)’가 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도둑·대문·거지가 없어 ‘3무도’인 제주도가 불황까지 없는 4무도가 됐다는 것이다. 제주의 호경기는 숫자로 입증된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제주도에서 걷힌 국세가 46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5%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 241대에 불과했던 제주도 내 수입차 판매대수가 올해는 10월 말까지 3493대로 폭증했다는 통계도 있다.
제주의 호황은 국제학교와 중국인 관광객 효과로 설명되고 있다. 3개의 국제학교에 다니는 1400여 명의 학생과 이들 때문에 제주로 거처를 옮겼거나 수시로 제주를 찾는 학부모들 덕에 제주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부터 무비자 혜택이 적용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제주를 불황을 모르는 섬으로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지난달 말까지 제주도를 찾은 중국인은 약 100만 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배가 늘었다. 이달 초까지 중국인을 포함, 약 150만 명의 외국인이 제주를 방문했고, 이들이 쓴 돈만 2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매일 4000~5000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제주 호황의 최대 견인차인 셈이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유럽 곳곳에서 분리·독립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스페인의 카탈루냐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코르시카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다 언젠가 제주도도 홀로서기를 하겠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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