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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 도솔천의 세계 ‘달마산 도솔암’

라이프(life)/풍수지리

by 굴재사람 2012. 11. 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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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 도솔천의 세계 ‘달마산 도솔암’

  • 글·사진 | 조용헌 동양학박사·칼럼니스트

 

 

동북아 神仙설화 발전한 전형적인 水火旣濟의 땅끝 산
▲ 주변에서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높은 절벽 위 구름 속에 솟아 있는 듯한 도솔암 전경. 무림의 고수들이 1년에 한 번씩 회합을 가질 법한 그런 곳에 자리 잡고 있다.

50대가 되니까 자연이 눈에 들어온다. 연두색의 신록이 마음을 환하게 만든다. ‘오십 이전에는 신록이 신록인줄 몰랐지만, 오십 이후에는 신록이 신록임을 알겠구나’라고 해야 할까. 숲길 옆에 피어 있는 자그마한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숲에 들어가면 소나무의 송진 냄새가 아랫배까지 내려오도록 깊이 호흡을 해본다. ‘자연이 좋구나!’ 왜 이 맛을 이제야 느끼는 걸까? 20~30대부터 알았으면 내 인생이 훨씬 더 풍요로워졌을 것 아닌가! 왜 배터리가 방전되는 50대에 들어와서 이 맛을 알게 된 것일까!


해남의 달마산 도솔암 가는 숲속의 산길에 피어 있는 철쭉꽃을 보면서 가슴속에 들어와 뭉친 소회(所懷)이다. 인간이 50대 이전에는 오로지 자기 앞만 보고 자기만 알고 바쁘게 살다가, 이후가 되면 비로소 옆길에 뭐가 있는지 쳐다보면서 주변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일까? 아니면 배터리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절감하면서, ‘인생 별 것도 없네’라는 이치를 깨달으면서, 자연이 갖는 무한함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경외로운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일까? 하루살이같이 유한한 존재가 영겁의 무한한 천지자연에 대하여 갖는 질투와 부러움이란 말인가?


해남의 도솔산은 물건이다. 높이는 비록 500m도 안 되지만, 산 전체에는 영기가 가득 차 있다. <陋室銘>(누실명)에 나온다. ‘산부재고 유선즉명(山不在高 有仙則名)’이라고. 산이 높다고 장땡이 아니다.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라고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은 갈파하지 않았던가. 달마산은 신선이 살 만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선 땅끝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땅끝’이라는 단어는 어감이 다르다. 끝이라는 것은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뜻이다. 한반도의 땅끝인 해남, 그리고 그 해남을 관통하는 달마산은 ‘땅끝 산’이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더 이상 가면 바다이다. 산이 바다를 만나면 거기서 멈추어 선다. 그리고 기운을 만든다. 화기와 수기의 교류가 그것이다. 주역에서는 수화기제(水火旣濟)라고 말한다. 그래서 바닷가에 있는 바위산들이 명산이고, 이런 지점에서 동북아시아의 신선 설화들이 발전했다. 중국 산동의 노산(嶗山)이 그렇다. 해상선(海上仙)의 발원지가 바로 노산인 것이다. 조선의 금강산, 남해 금산(錦山)도 역시 그렇다. 신선이 좋아하는 산은 대개 바다를 바라 볼 수 있는 산들이다. 달마산이 이것이다. 풍수가에서는 ‘천리행룡 일석지지(千里行龍 一席之地)’라고 표현한다. 용맥이 천리를 내려오다가 그 끝머리에 자리 하나를 만든다. 호박 열매가 끝자락에 열리듯이 기운이 뭉친 명당도 끝자락에 만들어진다. 끝자락에 영양가가 있는 셈이다. 끝이라는 어감은 비장한 감도 있다. 더 이상 갈 데가 없으니 꼼짝 달싹 할 수 없다는 느낌도 준다. 갈 데가 없구나! 그러나 반대로 새로운 차원이 열릴 수도 있다. 갈 데까지 간 만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궁즉변(窮則變)이요, 변즉통(變則通)이라 하지 않았던가. 달마산이 상징하는 것은 이러한 양면성이다. 궁(窮)도 있고, 변(變)도 있는 것이다.


▲ 도솔암 가는 이정표. ‘땅끝서 만나는 하늘끝’이란 문구가 가슴에 다가온다.

바위가 단단하면 센 기운 나와
나는 산에 가면 바위의 질을 본다. 단단한가? 무른가? 화강암인가? 석회암인가? 현무암인가? 맥반석인가? 산에 다니려면 바위에 대한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위 이름 10개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산지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바위에 따라 기운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위가 단단하면 기운도 단단한 기운이 나오고, 무르면 기운도 부드럽다. 화강암에서 도인이 많이 나온다. 화강암은 단단한 돌이다. 단단한 기운이 몸속에 들어가면 한계상황을 돌파하는 힘이 비축되기 마련이다. 일본은 화산지대가 많아서 한국보다 돌이 무르다. 한국은 화강암이 많다. 그래서 무당도 한국 무당이 일본 무당보다 세다. 적어도 무당세계에서 만큼은 조선무당이다. 산의 바위 강도 때문이다.


달마산의 도솔암 가는 숲길에서 돌출된 바위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규석(硅石)이 많다. 쌍토 ‘규’(圭)자가 들어간 이름이다. 바위의 결이 평평하게 나 있어서, 깨질 때도 네모나게 깨진다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나 싶다. 규암(硅巖)이라고도 한다. 약간 흰 색깔을 띠면서 바위 표면이 매끌매끌한 암석인데, 강도는 아주 단단한 편이다. 화강암보다 약간 더 단단할까? 규암에서 추출한 성분은 용광로에서 높은 온도의 불을 견디는 방화재(防火材)로 사용된다. ‘조선내화’(朝鮮耐火)라는 회사에서 생산되는 방화재는 대부분 이 규석에서 채취한다고 들었다. 아! 도인들이 좋아할 산이겠구나! 영양가 많겠구나! 단백질이 부족한 사람은 이 산에서 도 닦으면 단백질을 대거 보충할 수 있겠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도솔암은 비범한 자리에 있다. ‘머털도사’가 머무르는 암자가 바로 이런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 위에 솟아 있는, 주변에서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높은 절벽 위에 있는 암자 말이다. 그런가 하면 무협지에 나오는 무림의 고수들이 1년에 한 번씩 회합을 가질 때 바로 이런 장소에서 하면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의 장소다. 50~60m 높이의 절벽 위 아슬아슬한 지점에 축대를 쌓아 암자를 지어 놓은 것이다. 절벽 위는 마치 거대한 창검(槍劍)처럼 뻗은 바위들이 직립으로 솟아 있었고, 그 직립한 바위 속에 조그만 암자를 지어 놓았다. 원래 자연 공간은 겨우 한 칸짜리 암자만 지을 수 있고, 마당은 나올 수 없는 입지였지만, 절벽 틈 사이에 돌 축대를 10m가량 다져 넣어서 7~8평쯤 되는 마당 공간이 나올 수 있었다. 아래쪽에서 보면 아주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인다. 거기에 한 칸짜리 자그마한 암자 하나가 자리 잡고 있으니, 자연과 인공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100% 자연만 있는 것보다는 이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한 인공이 약간 섞여 있는 것이 보기에 좋다. 달마산 신선이 산다면 어디에 살겠는가. 이런 곳에서 살아야지.


▲ 땅끝마을 해남의 달마산 꼭대기에 있는 도솔암으로 가는 길은 사람이 일일이 돌로 조성해 놓았다.

난공불락 요새에 자리… 자연과 인공의 완벽 조화
원래 이 도솔암 법당 터는 400년 동안이나 비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암자가 있었지만, 명랑해전에서 패한 왜군들이 이 달마산으로 후퇴하면서 여기에 있던 암자와 절들을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400년 동안 빈터로 있었다. 터가 좋으니까 무속인들이 몰려와 치성 드리는 장소로 이용되어 오다가, 2002년에 조계종의 법조(法照) 스님이 와서 터를 정화하고 법당을 지었다.


“어떻게 이런 신선들이 살 법한 곳에 법당을 지었는가? 가장 전망이 좋은 때는 언제인가?”


“내가 여기서 10년을 살아 보았다. 1년 중에 평균 5번 정도는 이 터에서 제주도의 한라산이 아스라하게 멀리 보인다. 그 꼭대기 부분이 보인다. 주로 청명한 가을에 잘 보인다. 이곳은 일몰과 일출이 모두 보이는 장소이다. 법당은 서향(西向)이다. 서쪽으로 있는 진도 앞바다가 보인다. 섬들 사이로 석양이 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특히 석양의 빛이 간접조명을 아래에서 위로 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장관이다. 해가 수평선에 거의 다다를 무렵, 바다 밑에서 하늘의 구름들을 향해 붉은 노을을 반사시킨다. 이때 노을이 붉은 물감처럼 하늘의 구름들을 물들인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다가온다. ‘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잘했구나!’하는 느낌이 온다. 요사체는 남향에 가깝다. 완도 앞바다 쪽이 보인다. 새벽에 올라오는 해는 에너지를 준다. 바다 밑에서 올라오는 해를 보면 의욕이 생긴다.”


“해는 그렇다 치고 달이 뜰 때의 풍광은 어떤가?”


“완도 앞바다에 보름달이 뜨면 바다 전체가 하얗게 보인다. 월광이 바다에 물들면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이 하얀색이 달마산의 바위 전체를 비춘다. 그러면 바위도 하얀색으로 보인다. 산속에 혼자서 바다와 산 전체가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년 사계절이 다 나름대로 특색과 분위기가 다르지만, 겨울이 되면 특히 더 좋은 것 같다. 추위 속에서 바라보는 자연이 장엄하고 인간을 숙연하게 만든다.”


▲ 하늘끝 절벽에 둘러싸여 있는 도솔암 지붕 기와.

1년에 5번 정도 제주도 한라산 보여
불교의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이라는 경전에 보면 16가지 관법(觀法)이 나온다. 관법은 도 닦는 방법을 일컫는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일몰관(日沒觀)이다. 석양의 해를 바라보는 방법이다. 뜨는 해는 잠깐이지만, 지는 석양은 한 시간 가까이 볼 수 있다. 대낮의 태양은 눈이 부시어 바라볼 수 없다. 그러나 저녁 무렵의 석양은 눈이 부시지 않아 눈으로 감상할 수 있다. 석양을 한 시간 정도 바라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평화스러운 마음이 든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내가 받은 상처, 내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가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 이 상처들이 치유받는 시간은 석양을 바라볼 때가 아닐까. 그래서 16관법 중에 제1번에 배당시켜 놓았지 않았나 싶다.


사람 사는 게 상처의 연속이다. 어렸을 때 마음은 깨끗하고 구김살이 없는 명주천 같다고 한다면, 나이가 들고 먹고 산다고 발버둥치면서 마음이 걸레가 된다. 누더기처럼 여기 저기 터져 있고, 찢어져 있다. 이 누더기를 다시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방법이 바로 일몰관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허함과 상처를 치료하려면 명산에 올라와 석양을 봐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장엄한 장소에서 봐야 효과가 있다. 장엄함을 자주 겪을수록 마음이 펴진다. 마음의 주름살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것은 역시 자연밖에 없는 것이다.


도솔산 절벽 위에 머털도사가 사는 암자처럼 지은 도솔암. 깎아지른 절벽 위의 도솔암 마당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것은 정신병 치료에 해당한다. 우리 모두 정신과 환자 아니던가! 필수사항이 풍광이 장엄한 장소를 많이 알아 놓는 일이다. 시간 날 때마다 그 장엄한 장소에 달려가 해를 보고 달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듣고, 바다를 바라보아야 산다.
“인적이 드물고 신도도 별로 없는 이런 외진 곳에 혼자 사니까 스님은 춥고 배고플 것 같다. 특히 전라도 땅은 쿠르드족(族)이 사는 데 아닌가! 경상도야 불교 신도가 많지만, 전라도는 불교 신도가 적다. 무엇을 먹고 사는가?”


▲ 조용헌 박사(오른쪽)와 도솔암 스님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은 외로워야 한다.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는 말이 있다. 춥고 배고파야 도 닦을 마음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등 따습고 배부르면 도는 멀어진다. 그런 점에서 경상도 절에 있으면 스님이라고 대우받지만, 전라도에 있으면 대우 못 받는다. 도는 전라도에서 닦아야 제대로 닦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 속에서 살아야 마음이 가라앉고 사물을 관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눈 오고 추운 겨울에 이 산 꼭대기 절벽 위에 있으면 엄청나게 춥다. 밥을 할 때도 물이 얼어버려서 눈으로 했다. 얼음을 깨서 밥을 한다. 물이 없으니까 샤워도 못 하고, 겨우 뒷물 정도 하는데, 그 뒷물도 눈으로 할 때가 많았다. 손으로 얼음을 깨고, 눈을 뭉쳐야 하니 손이 시렸다. 손으로 전달되는 그 고통스런 느낌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다. 시린 느낌을 겪으면서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천지와 감응되는 것이다.


자연을 통해서 천심(天心)과 지심(地心)을 느낀다. 천심, 지심을 알아야 도를 느끼는 것 아니겠는가. 중 노릇을 하려면 자연 속에 푹 파묻혀서 어느 정도 세월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이 달마산에 와서 알았다. 편하게 살면 고통을 모르고, 자연을 모르고, 도를 모른다.”


법조 스님이 빈터로 남아 있었던 달마산 도솔봉에 와서 암자를 짓게 된 사연이 있었다. 2002년에 오대산 상원사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통한 꿈을 세 번이나 연거푸 꾸었다. 첫 번째 꿈은 ‘놋쇠 요강’이 나타났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오래된 터로 이사 가는 꿈이었다. 옛날에 요강은 여행 다닐 때 휴대하고 다니던 물품이었다.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방에 요강을 두고 잠을 잤던 것이다. 놋쇠는 오래되었다는 뜻으로 해몽했다. 두 번째 꿈은 밑에 소(沼)가 있고, 그 위 절벽에 칡넝쿨이 있어서 거기에 스님이 매달려 있었는데, 시커먼 용이 소에서 올라와 스님 어깨에 기대는 꿈이었다. 도솔암 터에 와서 보니까 법당 터 밑에 물이 나오는 샘터가 있고, 이 샘터 위로는 절벽이니까, 꿈에 본 장면하고 도솔암 터가 맞아 떨어졌다.


세 번째 꿈은 바닷가에서 숭어가 펄쩍펄쩍 뛰어 오르는데, 모래사장을 한참 지나고 보니까, 검정 돼지가 나타나 그 숭어를 껴안았다. 한참 후에 그 검정 돼지가 50대 남자로 변하는 꿈이었다. 이 세 번째 꿈은 미래를 예시하는 꿈으로 해석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경관이 기가 막히고 영험한 터는 반드시 꿈이 있기 마련이다. 영지(靈地)는 영몽(靈夢)을 꾸게 만든다.


진도와 완도 앞바다에서 올라온 해무(海霧)가 끼어 있는 달마산 도솔암의 숲길. 군데군데 피어 있는 붉은색의 철쭉꽃을 보면서 한국이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명산이 많고, 가 볼 데가 많은 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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