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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절터… 시골 5일장… 눈보다 마음에 남는 여행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12. 1. 3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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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절터… 시골 5일장… 눈보다 마음에 남는 여행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전적으로 ‘눈’으로 합니다. 간혹 먹거리 여정에서는 ‘입’을 앞세우는 때도 있지만, 여행의 목적은 대개 ‘빼어난 경치’를 감상하는 데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은 그 앞에 선 이들을 정화합니다. 빼어난 경치 앞에서 토하는 탄성과 느끼는 감동은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지요. 불원천리하고 여행자들이 꼬박 차로 대여섯 시간 걸리는 남해안 끝의 섬마을이나 남도 땅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여행 경험에서 보면 눈을 만족시키는 여행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여행이 감동이 짙고 오래도록 기억의 창고에 남아 있더군요. 돌이켜보건대 눈보다는 귀로, 때로는 손끝으로, 어떤 때는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이 더 즐거웠습니다. 이를테면 충남 부여 무량사의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의 깊은 울림이나, 전남 나주 운흥사의 사방이 산으로 둘러친 오목한 공간에 선 대웅전 앞에서 듣는 새소리는 지금도 그 여운이 남아 있습니다.

마음으로 느끼는 여정 중의 최고는 아마도 폐사지로의 여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허물어지고 없는 절집의 빈터에선 시간의 깊이는 물론이거니와 그곳에 간절한 기원으로 손을 모았을 이들이 떠올려집니다. 경기 여주의 고달사지가 그렇고, 강원 인제의 한계사지가 또 그렇습니다. 절집은 세워졌던 순서의 반대로 빠르게 허물어졌을 것이고, 쓸쓸하게 서 있는 석물들을 쓰다듬으며 빈터로 남은 자리에 마음으로 절집을 짓습니다. 몇 개의 오래된 석물과 기왓장이 뒹구는 빈 절터는 이렇듯 눈이 아닌 마음으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지요. 그러니 폐사지로의 여정을 놓고 ‘아무것도 없는 빈터에 왜 가느냐’는 질문은 우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골 중소도시의 오일장으로의 여정도 비슷합니다. 장터 마당에서 상인들과 어울려 곁불을 쬐며 고작 한두 줌이나 될까 싶은 푸성귀 따위를 올려놓은 좌판을 지키는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이나 흰 김이 펄펄 나는 국밥집의 가마솥 같은 것들을 만나다 보면 빠져나갔던 기운도 불끈불끈 솟습니다.

눈으로 보는 경치야 처음에는 입이 딱 벌어지다가도 길어야 1시간쯤이면 심드렁해지는 법입니다. 신상품 TV를 새로 샀을 때, 처음에는 화면이 선명하고 소리도 좋다며 탄복하다가도 며칠만 지나고 나면 무덤덤해지는 경험을 한번씩 해 보셨겠지요. 그것과 매한가지입니다. 눈만으로 하는 여행보다는 오감을 열고 하는 여행이 더 즐겁고, 그것보다는 마음으로 보는 여행이 더 오래 남고 가슴을 울리는 법입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보는 여행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면 때로는 공부가 필요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눈도 필요하답니다. 여행이 단지 풍경과 음식을 탐하는 것이 아닌 ‘공부와 마음을 닦는 휼륭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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