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가꾸는 일을 하는 이에게 ‘선생’이란 칭호가 붙는 이유
한국인에게 ‘나무’의 의미는 참으로 각별한 것 같습니다. 시골마을 어귀에는 그늘을 드리우는 우람한 당산나무 하나쯤 없는 곳이 없고, 풍수에서 지세(地勢)의 기운을 보(補)하기 위해 조성한 숲도 전국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 향교와 이름난 사찰에는 수백년은 족히 넘은 은행나무며 느티나무 몇 그루 없는 곳이 없습니다. 이즈음도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숭고하게 여기며, 평생 나무를 심고 가꿔온 이들의 정신을 높이 기리고 있습니다. 전북 장성 축령산의 편백나무 숲. 596㏊의 산자락에 1956년부터 1976년까지 20년 동안 심은 편백나무가 무려 253만그루입니다. 이렇듯 장대한 숲을 만들어낸 이는 춘원 임종국(1915~1987) 선생입니다. 그의 이름 뒤에는 늘 ‘선생’이란 호칭이 따라다닙니다. 그에게 기꺼이 ‘선생’이란 칭호를 붙여주는 것은 아마도 나무를 심어 가꾼 그의 초인적인 노고를 기리려는 뜻이겠지요. 극심한 가뭄이 들었던 1968년에는 그는 물론이고 온가족이 나서 물지게를 지고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며 이 숲을 지켰다니 말입니다. 거대한 메타세쿼이아가 하늘을 찌르고 서 있는 대전 서구의 장태산 휴양림에도 한 사람의 일생이 담겨 있습니다. 임창봉(1922~2002) 선생은 1972년부터 타계하기 직전까지 이 산자락에 20여만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꿔왔습니다. 그가 타계하자 대전시에서 휴양림을 인수해 가꾼 것이 지금의 장태산휴양림입니다. 하나의 일에 자신의 평생을 바친 이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평생 고기잡이를 해왔던 이도 있을 것이고, 거친 산을 일구며 개간한 이도 있겠지요. 그러나 평생 한 가지 일을 했더라도 웬만해서는 ‘선생’이란 호칭을 붙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생 나무를 심어 가꾼 이들에게는 ‘선생’이란 칭호가 자연스럽습니다. 왜 나무를 심어 가꾼 이들에게만 ‘선생’이란 칭호가 붙여질까요. 그건 아마도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그 대가가 멀고 먼 미래에나 돌아올 것임을 알면서도 묵묵히 나무를 심어왔기 때문일 겁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죄다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할 때, 돌아올 이득을 눈치 빠르게 셈하지 않으면서도 고된 노동을 마다않고 지극 정성으로 나무를 가꾸는 일에만 몰두해왔습니다. 이렇게 피땀으로 가꾼 숲을 제 소유가 아닌 모두의 것으로 되돌려줬다는 것은 더욱 감동적입니다.
생전에 영화를 누리지 못했고 나무를 돈으로 바꿔 거금을 챙기지도 못했으니, 세속의 시선으로 본다면 이들의 삶을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이들은 타계한 뒤에도 오래오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평생을 가꾼 숲에 들어서면 그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살아 있다면 아마도 매사에 서둘지 말고, 당장의 이익에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이 평생을 바칠 일을 찾아서 긴 호흡으로 밀고나가라는 말을 들려줄 것 같습니다. 신년초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빌었던 경박한 소원이 부끄러워질 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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