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1956년 봄 서울 명동의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시인 박인환이 가수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한다. 나애심이 사양하자 박인환은 종이에 뭔가를 끄적였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 라틴음악과 샹송에 조예가 깊던 시나리오 작가 이진섭이 즉석에서 악보를 만들었다. 마침 술집에 들어선 테너 임만섭은 악보를 받아들고 노래를 불렀다.
합석했던 마담이 박인환의 어깨를 툭 쳤다. “그 노래 눈물난다. 어쩔라고 그런 노래를 지었노.” 가수 현인이 첫 녹음했고 나중에 박인희가 불러 히트한 ‘세월이 가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명동 백작’으로 불리던 신문기자 겸 작가 이봉구는 그 때를 명동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로 회상했다. ‘다방 레지’가 청마 유치환의 시를 줄줄 외고, ‘명동 황제’로 통하던 주먹 이화룡이 예술가들을 ‘선생님’으로 대접하던 무렵이었다.
탤런트 최불암의 모친이 운영했던 ‘은성’이라는 술집은 가난한 문화예술인의 집결지였다. 그곳엔 언제든 외상을 주는 넉넉함이 있었다. 청년실업가 김동근이 동방문화회관이란 다방을 연 건 1955년이다. 1층 다방, 2층 집필실, 3층 회의실로 구성된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이었다. 공초 오상순을 중심으로 가톨릭 계열 문인들이 모이던 청동다방, 박수근 박항섭 등 서양화가들이 드나들던 금꿩다방, 연극인들의 단골이던 은하수다방도 이름을 날렸다.
전후 허무에 젖은 예술인들이 술 먹고 추태를 부리는 일도 흔했으나 밤새워 인생과 예술을 논하고, 출판기념회나 전시회를 여는 열정도 있었다. ‘세월이 가면’을 쓴 지 얼마후 박인환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고, 전혜린은 은성에서 술을 마신 다음날 자살했다. 각각 30세, 31세의 젊은 나이였다. 김은성이 조니워커 한 병을 구해와 죽은 박인환의 입에 부어주고 나서 한 모금 마시자 너도 나도 뒤따랐다. 고인과 대작을 한 셈이다.
그 시절 명동의 낭만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서울 신문로 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제목은 ‘명동 이야기’. 위스키 시음장 ‘포엠’과 명동 뒷골목을 재현한 전시장에는 낡은 책자와 빛바랜 사진, 손때묻은 유품들이 다채롭게 나와 있다. 김수영이 1959년 낸 시집 ‘달나라의 장난’ 육필 원고, 화가 백영수의 1953년 개인전 방명록, 공초가 쓰던 지포라이터…. 외국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유행의 거리 명동은 이런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어 더 풍요로워지는 게 아닐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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