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다 가고 2012년 새해가 다가오니 다시 한 번 지구 종말론이 화제다. 과연 지구 종말은 올 것인가.
고대 마야 인들이 사용한 마야 달력은 기원전 3114년 8월 13일을 원년으로 시작해 394년을 주기로 1박툰이라고 불렀으며, 13을 신성한 숫자로 여겨 13번째 박툰인 2012년 12월 21일을 끝으로 달력은 끝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날이 지구 종말은 아닌지 걱정하는 것이다.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는 쓰나미로 20만 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고,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때에는 7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지난 3월 9.0의 강진에 이어 거대한 해일과 원전 폭발의 공포가 일본열도에 몰아쳤다.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일본TV 앵커의 참담한 멘트에 이를 지켜본 세계인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지구가 멸망하는 순간이 되면 앵커의 말처럼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마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마야인의 달력엔 2012년까지밖에 나와 있지 않답니다. 이제 슬슬 인류멸망을 준비해야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 대학로 다사모 모임에서 한 지인이 나에게 심각하게 질문했다. 나는 그 말에 크게 웃고 말았다. 사실 내가 처음으로 지구멸망을 걱정한 것은 초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당시 '학원'이라는 잡지에 '2045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글이 있었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모두 녹으면서 순식간에 지구가 물바다가 되어 인류가 멸망한다고. 내가 2045년 그때까지 살아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어린 나이에도 과연 지구가 멸망할지 무척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옛날 중국의 기국(杞國)에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하여 침식을 전폐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소리를 들은 어떤 사람이 이를 딱 하게 여겨 그 사람에게 가서 깨우쳐 말하되 "하늘은 기운이 가득 차서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무너져서 떨어지겠는가!"
그 사람이 말하되 "하늘이 과연 기운이 쌓여 이루어졌다면, 해와 달과 별은 떨어지지 않겠는가."
일깨워 주는 사람이 말하되 "해와 달과 별도 또한 기운이 쌓여 있는 가운데 빛이 있는 것이다. 비록 떨어지더라도 또한 능히 맞아서 상하는 바가 없느니라."
그 사람이 말하되 "그럼 어찌 땅은 무너지지 않으리오."
일깨워 주는 사람이 말하되 "땅은 기운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그 무너지는 것을 근심하리요?" 그 사람은 그제야 근심을 풀고서 크게 기뻐했다.
우리는 살면서 그것이 기우(杞憂)이든 아니든 많은 걱정을 하고 산다. 그 걱정에서 하루도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며, 30%는 이미 일어난 것이고, 22%는 사소한 것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즉 나머지 4%만이 진짜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이며, 96%의 걱정거리는 모두 쓸데없는 것들이라는 말이다.
나는 걱정거리를 두 가지로 나눈다.
내가 걱정해서 해결할 수 있는 고민과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다. 내일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비가 오면 우산을 준비하면 된다. 그러나 비를 멈추게 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 한계를 벗어난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며, 신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는 신에게 맡겨야 한다. 오직 자신이 걱정해서 풀 수 있는 문제들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
지구의 종말도 사람이 걱정할 영역이 아니다.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은 자신의 종말이다.
지구 종말이 오기 전에 마야 인들은 모두 멸망했다. 왜 자신들이 사라지는 것은 알지 못하면서 달력에 지구의 멸망 시기를 정했을까. 그리고 만약 내가 없다면 미래에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가 지구 종말을 걱정하는 것도 결국은 그것이 나의 종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12년 지구의 종말이 오든 안 오든, 그것이 기우이든 아니든, 지금 이 순간 사람의 영역에서 할 일만 다 하면 될 것이다. 나의 종말이 먼저 오지 않도록.
- 차길진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hankyung.com / 2011.12.26 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