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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와 크리스마스

라이프(life)/명리학

by 굴재사람 2011. 12. 2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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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동지와 크리스마스

 

 

# 그제 오전 전화가 울렸다. 원불교 은덕문화원의 법열교무였다. 날이 동지(冬至)여서 팥죽을 쑤었는데 먹으러 오시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오후 느지막이 들르겠다고 한 후 지인 몇 분과 함께 갔다. 창덕궁 비원을 마주보는 은덕문화원에 들어서니 이선종 원장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함께 상에 둘러앉아 동치미를 곁들여 동지 팥죽을 나눴다. 동지에 팥죽을 쒀 먹는 까닭은 예부터 붉은 팥에 벽사(?邪) 곧 사악함을 막아내는 힘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팥의 붉은색이 양색(陽色)이므로 어두운 음귀와 잡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함께 나누는 팥죽 한 그릇에도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일 년 가운데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는 묘한 절기다. 전통적인 24절기가 대개 달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하는 태음력 절기이지만 유독 동지만은 태음력에 해의 움직임을 감안한 태양력을 섞어 만든 태음태양력의 ‘퓨전 절기’다. 게다가 동지는 해가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남회귀선) 곧 황경(黃經) 270도에 위치해 있을 때여서 양력으로는 늘 일정하게 12월 22일이나 23일 무렵이지만 음력으로는 일정치 않다. 그래서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할 만큼 음력상으론 시간편차가 적잖다.

 # 절기와 예법의 기준이 되었던 중국 주나라에서는 동지를 설로 삼았다. 당나라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에서도 동지를 역(曆)의 시작으로 보았다. 우리의 경우에도 고려 때까지 선명력을 썼기에 고려 말 충선왕 복위 원년(1309)에 와서 원(元)의 수시력(授時曆)으로 바뀌기 전까지 동지가 곧 설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민간에서는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이 남아있는 것이다. 본래 『주역(周易)』에서도 복괘(復卦)에 해당하는 동짓달을 자월(子月)이라 해 일 년의 시작으로 여겼다. 주역의 괘는 모두 6개의 효(爻)로 이뤄져 있다. 긴 막대(―)는 양효(陽爻), 짧은 막대 둘­(--)은 음효(陰爻)로 각기 양의 기운과 음의 기운을 나타낸다. 복괘는 맨 아래 양효가 있고 그 위엔 모두 음효가 덮고 있는 형상이다. 마치 빛을 어둠이 덮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복괘엔 양의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해 어둠을 뚫고 다시 빛이 드러나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담겨 있다. 동지도 마찬가지다.

 # 페르시아의 미트라스교 등의 영향으로 태양신을 숭배하던 고대 로마인들은 매년 12월 하순이면 동지축제를 즐겼다. 특히 그들에게 25일은 어둠이 극상에 달했던 동지 이후 사흘 만에 태양이 부활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태양신의 부활축제일은 역시 빛으로 인식된 예수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로 둔갑했다. 물론 역사적 존재로서의 예수의 생일이 지금의 크리스마스 때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참으로 절묘한 융합이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축제를 계속할 수 있었고 기독교는 이교도들 사이에 파고 들어갈 여지를 얻었기에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타협이었던 것이다.

 

 # 미래가 보이지 않을 만큼 시절의 어둠이 참으로 깊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고 포기하면 안 된다. 어둠이 가장 긴 동지를 지나야 빛이 부활하는 크리스마스가 오듯 우리는 그 긴 어둠의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이제 그 막바지 어둠마저 그치면 빛은 어김없이 우리 삶에 광명을 펼치리라. 비록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진짜 생일이 아니라 고대 로마인들이 태양신의 부활을 숭배하던 날이었지만 긴긴 밤 동지의 깊은 어둠 속에서 다시 빛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또 어둠의 힘을 물리치고 새 빛의 힘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특정 종교의 기념일을 떠나 우리 모두에게 새로움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깊은 뜻과 의미를 던진다. 그런 뜻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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