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동그라미

글모음(writings)/토막이야기

by 굴재사람 2011. 7. 17. 23:00

본문

동그라미

 

 

오랫동안 수행의 길을 떠났던 젊은 스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장경(章敬)선사를 찾아가 인사를 올렸습니다.

장경 선사가 물었죠.
“이곳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느냐.”
“8년쯤 지났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장경 선사가 ‘제자의 공부’를 물었죠.
“그래, 그동안 자네는 무엇을 얻었는가.”
그러자 젊은 스님은 꼬챙이를 하나 집었습니다.

그리고 몸을 구부려 땅에다 커다란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습니다.

이 모습을 쭉 지켜보던 장경 선사가 다시 물었죠.
“그래, 그것뿐인가. 다른 것은 또 없는가.”
그러자 젊은 스님은 발로 동그라미를 ‘쓱싹쓱싹’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절을 나가버렸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입니다.

 

원불교 교당에는 ‘불상(佛像)’이 없습니다.

대신 교당의 벽에는 큼지막한 ‘동그라미’가 하나 걸려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일원상(一圓相)’이죠.

 

 

-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

 

 

*진리를 뜻하는 ‘동그라미’는 그냥 동그라미가 아니죠.

여기에는 테두리가 없습니다. 시간적 테두리도 없고, 공간적 테두리도 없습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흐름도 없고, ‘이곳-저곳’이란 공간의 나뉨도 없죠.

그럼 무엇이 있을까요. 테두리조차 없는 동그라미, 그 하나만 온 우주에 꽉 차있을 뿐입니다.
젊은 스님이 그린 ‘동그라미’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장경 선사가 “그뿐이냐, 달리 무엇은 없느냐”라고 되묻자 젊은 스님은 동그라미를 지워 버렸죠.

실은 그 순간, ‘진짜 동그라미’가 드러난 겁니다. 살아 숨 쉬는 ‘부처’가 드러난 거죠.

그게 어디냐고요? 동그라미를 지운 곳에 ‘남은 곳’이죠.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이 세상 전부입니다.

'글모음(writings) > 토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의 가장 큰 이적   (0) 2011.07.18
나의 소는 지금 어디에 있나   (0) 2011.07.18
마음이 곧 부처  (0) 2011.07.17
스님이 뿌린 ‘차’와 ‘주먹’  (0) 2011.07.17
간디의 신발 한 짝  (0) 2011.07.17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