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바람과 방사능
고대 인도 철학자들은 지(地)·수(水)·화(火)·풍(風) 네 가지가 물질계를 이루는 근본요소라고 보았다. 이를 사대(四大)라고 부른다. 사람이 죽으면 그 육신도 썩어 없어진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은 결국 지·수·화·풍으로 각각 흩어진다는 말이다. 장례법도 땅에다 묻는 매장(埋葬), 물에다 띄우는 수장(水葬), 불에 태우는 화장(火葬), 바람에 노출하여 풍화시키는 풍장(風葬)이 있다.
인간세계에 발생하는 재난의 종류도 이 네 가지로 귀결된다. 땅이 흔들리는 지진이 지재(地災), 홍수는 수재(水災), 화재(火災) 그리고 태풍으로 인한 풍재(風災)가 있다. 이번 일본 동북부 대지진은 드물게도 이 네 가지 재난이 한꺼번에 몰려왔다는 특징이 있다. 한 가지만 와도 감당하기 힘든 법인데 네 가지가 동시에 몰려 왔으니 타격이 엄청나다. 지진이 일어나니까 해일이 밀려오면서 얼마 있다가 도시에 큰 화재도 발생하였다. 여기까지는 지·수·화 삼재(三災)였다. 삼재까지는 인류 역사에서 그 사례가 더러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번 지진은 여기에다 하나의 재난이 더 추가되었다. 추가된 하나가 앞의 세 개보다 더 엄청난 파괴력과 공포를 지니고 있다. 바로 '풍재'이다. 태풍은 고전적인 풍재이고, 방사능이 21세기 풍재이다.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능은 바람에 날아가니까 풍재에 해당한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미국 서해안까지는 8000km 거리인데도 여기까지 방사능이 날아갔다. 바람과 방사능이 이렇게 궁합이 잘 맞는지는 예전에 미처 몰랐다. 방사능에 노출되느냐의 여부, 즉 생살여탈권은 바람이 쥐고 있는 셈이다. 후쿠시마 방사능 누출 이후 바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가 세계인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으면서 안 가는 데가 없다. 눈에 안 보이지만 작용은 분명히 한다. 이 점이 참 묘한 것이다. 그래서 지·수·화·풍 가운데 풍을 가장 높은 차원으로 본다. 요가에서는 바람을 인체의 네 번째 차크라인 '아나하타 차크라'로 설명한다. '아나하타'는 마음이다. 마음은 바람과 같은 것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은 미묘하면서도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