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여행을 할까.
여행전문기자로 일해 온 지난 15년 내내 이 질문은 내 직업상 ‘화두’였다. 하지만 쉼 없이 여행을 하면서도 답을 구하지 못했으니 화두라기보다는 ‘난제’에 가까웠다. 그런 만큼 더더욱 그 답에 조바심이 날 수밖에. 그러던 중 재밌는 사실을 접했다. ‘travel(트래블)’이라는 단어가 ‘travail(트러베일·고생하다, 수고하다)’에서 왔다는 것이다.
좀 더 파보니 ‘travail’의 어원은 로마시대 고문기구의 하나인 라틴어 tripalium(트리팔리움)이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여행=고생’이라는 등식인데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고의 진리다.
그런 고생보따리 여행이건만 여행에 대한 로망은 식지 않는다. 잘나가던 50대 중반의 뉴욕타임스 서평기자 리처드 번스타인. 언젠가부터 설명되지 않는 우울함에 빠진다. 무미건조한 일상, 부르주아적 중년의 삶에 대한 회의, 꿈에 대한 갈망…. 돌파구를 찾아 여러 계획을 세우지만 최종 선택은 여행(1999년)이었다.
영국 해군의 잠수함 로퀄호 함장 개빈 멘지스도 같다. 필리핀 수비크 만에서 정박 중에 실수로 미 군함을 들이받고는 이듬해(1970년) 전역한다. 고향에서 의회 진출로 변신을 시도하지만 결과는 실패. 그런 그가 내린 다음 선택 역시 여행이었다. 이후 14년간 부인과 함께 120여 개국을 여행한다.
‘뉴욕타임스 기자의 대당서역기’, 세계 40여 개국에서 번역된 스테디셀러 ‘1421’. 모두 리처드 번스타인과 개빈 멘지스가 선택한 여행의 산물이다. 번스타인은 당나라 고승 현장 스님의 대당서역기(629∼645년 천축국 인도를 향한 17년간의 구법 여행기)를 들고 발자취를 따랐다. 멘지스는 명나라 제독 정화(환관)의 보선단이 1403∼1425년 7차 원정을 통해 5대양 6대주는 물론 남극과 북극까지 항해했다는 주장의 증거를 찾아 여행했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 상황에서 선택이 왜 여행이었는지가 설명되지 않아서다. 그런 중에 한 편의 영화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잭 니컬슨과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버킷리스트’(2007년)로 이 영화는 시한부 생명 선고를 받은 두 환자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목록(버킷리스트)을 만들고는 그걸 찾아 떠난 여행길을 그렸다.
버킷리스트. 그건 평생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보고 거기 앉아 보기, 로마를 보고 루브르박물관에서 한 주 보내기 등등.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찾아 떠난 여행의 끝. 그것은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새로운 것과의 만남 속에서 잉태된다. 이게 여행의 본성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여행은 새로운 것과 조우의 연속이다. 그 과정은 고생스러울지 몰라도 결과만큼은 행복한….
이런 결론을 확신시켜 준 사람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요리물리학을 강의 중인 스페인의 미슐랭 별 셋 스타 셰프 페란 아드리아다.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 엘 불리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지만 고급차나 빌라를 사는 데 쓰지는 않는다. 그 대신 하루 15시간씩 일하며 새 요리 만드는 데만 전념한다. 그리고 하버드대의 초청에 주저 없이 응했다. 왜? 새로움에 접하는 것,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거기서 얻는 자극만큼 그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없어서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여행이란 고생보따리 속에 고이 감춰진 행복 덩어리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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