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비정하다.
아름다운 산일수록 비정하다. 높은 산은 더 비정하다. 바위산은 더 더 비정하다.
산은 또 위험하다.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산을 경외시 하였다. 산은 멀리서 우러러 보고, 올려다 보는것이 전부였다.
현대인은 산을 즐겨 찾아간다. 등산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배낭을 하나 메고, 멋진 등산복을 차려입고, 등산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스틱을 잡고 산을 오르는 모습은 참으로 멋지고 건강한 힘이 넘친다.
혼자서 침묵을 벗하며 산을 오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둘이서 셋이서 대화를 나누며 산 길을 걷는 모습은 퍽 다정스럽다. 무리를 지어 산을 찾아가는 산악회원들은 무엇이 그렇게도 좋은지~ 웃음소리가 냇가를 흐르는 물 소리처럼 산 골짜기를 흔들며 지나간다.
산은 태생이 조용하다.
산은 침묵을 본업으로 지킨다. 나무가 침묵하고, 바위가 침묵을 한다. 침묵속에 질서가 있고, 침묵을 하면서 변화가 연속으로 꽃처럼 피어난다.
산은 겨울에는 겨울 잠을 잔다. 나무는 잎을 떨구고 나신으로 자고, 바위는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서 잠을 잔다. 눈이 내려 이불처럼 덮는다.
산은 추워도 춥다는 말을 않고, 얼음이 꽁꽁 얼어도 그대로 참고 견딘다. 찬 바람이 불어와 매마른 가지를 흔들면 쏴하고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불평은 하지 않는다. 참고 견디며 조용히 침묵하는 산이다.
산은 죽은듯이 조용하고 침묵으로 일관하지만, 때를 기다릴 줄도 안다. 겨울이 아무리 춥고 얼음이 얼어도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굳세다. 겨울바람이 강하게 요란하게 소리를 치며 불어와도 봄이오면~ 연약한 미풍에 밀리고 마는 겨울바람은 뒤를 힐끔 돌아보며 도망을 친다.
산은 봄에 다시 살아난다.
산의 봄 맞이는 눈 속에서 부터 시작한다. 아직 겨울의 진객 잔설속에서 꽃을 피우는 복수초는 강인하다. 복수초는 무엇이 그렇게 급하여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가, 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혼자 독야청청 굳세고 억센 생명력인가, 등산을 즐겨하는 등산객은 가끔 눈 속에서 얼굴을 내 민~ 반가운 친구 복수초를 만나는 즐거움은 관포지교의 친구를 몇 년만에 만난듯이 그 기쁨을 가슴에 고이 담아온다.
봄에 피는 꽃들은 잎도 피기전에 꽃부터 피운다. 오랜 기다림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리며 참고 견디어 온 꽃들은 노랗게 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꽃 향기를 전한다.
산은 여름에 나뭇잎으로 치장을 한다.
죽은 듯이 미동도 하지 않든 나무가지마다 연초록의 잎이 돋아나면 꽃보다 더 아름다운 그리움이 나뭇잎 하나하나 마다 반짝인다.
아주 작은 나뭇잎이 돋아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과정은 나뭇잎의 칼라가 녹색에서 청색으로 물들면 잎은 다 자란다.
나뭇잎이 나무를 외워싸면 산의 여름은 성큼 다가온다. 따가운 햇살을 가리기위해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 준다. 나뭇잎은 산의 모습을 아름답게 푸르게 꾸며 놓는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좋고, 안개구름이 산을 가려도 좋다.
산 골짜기에는 개울의 물흐르는 소리가 메아리 친다. 산 새가 지저귀고, 다람쥐가 한가롭게 길 안내를 한다.
산은 가을에 또 한번 변화를 가져온다.
그 푸르던 나뭇잎은 날씨가 쌀쌀해 지면 물들기 시작한다. 이름하여 단풍은 온 산을 붉게 노랗게 불꽃처럼 물들인다. 만산홍엽의 단풍은 등산객을 손짖하는 흡인력을 가졌다.
꽃은 남쪽에서 시작하고, 단풍은 북쪽에서 물들기 시작한다. 파란하늘은 높고 푸르며, 산은 붉고 아름다우며 바람은 서늘하다. 봄은 봄 꽃이 피었다가 지면 아지랑이 처럼 사라져가고, 가을은 아름다운 단풍잎이 찬 바람에 낙엽이 지면 가버린다.
오면 가고, 가면 다시 찾아오는 산의 일년 사계절의 변화는 기다림과 그리움을 안겨주고, 즐거움과 가슴벅찬 감동을 안겨준다.
겨울 산은 자연의 순수성을 대변한다.
겨울산은 가장 따분 할것 같지만, 겨울산이 가장 아름답기도 하다. 산에는 일년내내 야생화가 지칠줄 모르게 피고 지고 피어난다. 산은 야생화의 천국이며, 그 향기 또한 자연이 주는 혜택이다.
겨울 산에도 꽃은 계속 피어난다. 앙상한 가지에도 피어나고 연약한 가지에도 겨울의 하얀 꽃이 무수히 아름답게 피어난다.
겨울의 꽃은 눈 꽃이다. 눈 꽃 중에서 상고대가 일품이다. 겨울 등산은 눈 꽃 상고대를 감상하기 위해 산행을 한다. 겨울에 파란 소나무의 솔잎사이에 눈이 내려 앉으면, 솦잎 사이에 하얀 소나무의 하얀 꽃이 아름답게 피어난다.
안개가 자욱한 산 정에 바람이 솔솔불면 안개은 바람에 날려 나무가지마다 안개가 연속으로 달라붙어 안개꽃을 피운다. 우리는 이 꽃을 서리꽃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겨울 꽃 서리꽃은 햇볕이 쪼이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꽃이라 그 순간을 즐기는 꽃이다.
산은 일년 내내 등산객을 부른다.
꽃을 피워서 부르고, 그 향기가 부르고, 그 숲이 부른다. 봄에는 숲의 향기가 손짓을 하고, 여름에는 그 숲의 그늘이 부른다.
가을에는 눈부신 단풍이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낙엽밟는 즐거움이 낭만이 흐르는 산 길을 걷는 아련함이 스며난다.
친구와 둘이서 오솔길을 걸으며 주고받는 마음 나누는 시간은 행복이다. 산은 아무렇게나 크고 작은 나무와 바위와 암벽이 산재해 있는 것 같으나, 그곳에는 엄연한 질서와 조화가 있으며, 냉철함과 침묵이 있고, 크고 작은 것과 높고 낮은 산이 함께 존재하며 중용의 도를 깨우친다.
능선과 골짜기가 한데 어울려 산을 형성하며 가장 낮은 곳엔 물이 흐른다. 등산객은 산 길을 걷고, 산의 정상을 오르며, 자연속에서 나무와 바위를 벗하며 질서와 변화를 배우고 느끼며 때로는 감동하면서 산을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 눈 속에 피어난 복수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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