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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넘버3'라고? 한왕용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10. 10. 1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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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넘버3'라고? 한왕용… 스폰서 없이 '순도 100%' 등정은 나밖에 없어"

 

 

"대장님, 방금 지나간 모녀(母女)가 '저분 한왕용 대장 아니냐'면서 안부 전해 달래요." 9일 오전 10시, 서울 강북구 북한산 둘레길에 '클린마운틴'이라고 쓰인 초록색 가방을 멘 사람들 약 30명이 집게로 쓰레기를 줍고 있다. 눈에 띄는 사람은 그 대열을 앞에 서서 이끌던 한왕용(44).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14좌(座)를 모두 오른 산악인이다. 앞서 14좌를 오른 박영석, 엄홍길은 매체출연과 CF까지 찍으며 산악인으로서 유명세를 누리고 있지만, 한왕용은 그들에 비하면 유명세가 낮은 편이다. 그의 소박한 성격 탓일까, 아니면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

"내가 넘버3? 어떻게 나를 그들과 비교하나"

14좌란, 해발 8000m가 넘는 전 세계 14개 봉우리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박영석이 2001년 처음 완등했다. 엄홍길은 같은 해, 한왕용은 2003년 14좌를 모두 올랐다. 올해 4월엔 우리나라의 오은선이 여자로서 세계 최초로 14좌를 완등했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영석과 엄홍길에 비해 지명도가 낮은 한왕용에게 붙여진 별명은 '넘버3'다. 세 번째로 14좌를 완등해서다. 한왕용은 이에 대해 "그들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고 잘라 말한다. 박영석과 엄홍길 모두 14좌를 오르며 '등정 논란'이 일어나 '재등정'을 했지만 한왕용은 논란도, 재등정도 없는 '순도 100%' 14좌 완등이기 때문이다. 엄홍길은 2001년 가을 시샤팡마 주봉(8027m)을, 박영석도 같은 해 로체(8516m)에 다시 오르고 나서야 등정을 인정받았다.

"저에게 박영석, 엄홍길은 책도 쓰고 방송에도 나가는데 당신은 왜 그런 거 하지 않느냐고 묻는 분이 많으신데 사실 그 말을 들을 때 스트레스를 받아요. 저는 저하고 그분들하고 비교하는 것 자체를 받아들 일 수 없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쳐갔다가 나중에 죄책감이 들어 다시 갖다 놨다고 해봅시다. 다시 가져다 놓으면 죄가 아닙니까? 저는 14좌 등정(기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서울 홍대 정문 앞에 있는 사무실에서 사진을 촬영하던 중 그의 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한왕용은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존댓말을 썼다.“ 왜 존댓말을 쓰냐”고 묻자“존댓말을 듣는 아들이 바른 성격으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한왕용은 '오은선 칸첸중가(8586m) 등정 의혹' 때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다. 오은선을 옹호하던 셰르파인 다와 옹추가 "만약 오 대장이 칸첸중가 등정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면 (2002년 함께 올랐던) 한왕용 대장도 등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한왕용은 말로 해명하는 대신, 14좌 등반할 때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했다.

한왕용이 다른 사람과 비교당하길 거부하는 데는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그는 산에 오를 때 스폰서를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팀원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 간다. 한 좌를 오를 때 필요한 비용은 비행기 삯을 제외하고 약 5000달러 정도다. 한왕용은 "스폰서를 받으면 편하긴 하지만 자기 돈을 걷을 때보다 산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한왕용에게 "다른 사람은 받는 스폰서를 왜 구하지 못했나?"라고 묻자 "창피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업이나 단체를 돌아다니면서 '나 이런 사람인데 산에 올라가게 돈을 대주세요'라고 말해야 하는데, 산악인으로서 차마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기록은 이제 그만, 내가 남긴 쓰레기 다시 주울 것"

세계 곳곳에서 14좌를 모두 등정한 사람은 20명에 불과하다. 이 중 하나인 한왕용은 왜 계속해서 산에 오르면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지 않는 걸까. 한왕용은 "내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기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는 후배들에게 길을 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주목을 받았던 산악인이 계속 누리기만 한다면 후배들에게 돌아갈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엄홍길씨는 국제 산악계에서는 전혀 인정하지 않는 '16좌'(14좌+칸첸중가의 위성봉인 얄룽캉과 로체의 위성봉인 로체샤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이름을 남기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같은 산이라도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셰르파 없이도 산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도 평생 산에 올랐던 사람인데 산이 그립지 않을까. "뇌혈관을 다쳐서 '산에 오르면 위험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저를 가장 걱정했던 건 아내였어요. 이제 미안한 마음에 걱정을 끼칠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지난 2000년 7월 K2 등반을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내려오면서 고소증세를 보이며 쓰러졌고 네 차례 뇌혈관 수술을 받았다.

한왕용은 산에 오르긴 오른다. 정상정복이 목표가 아니라 청소하기 위해서다.

그는 2003년 11월부터 자원봉사자와 함께 '클린마운틴 운동'을 하고 있다. 국내외 산에서 쓰레기를 주워오는 운동이다. "일본팀이 산에 오르며 한국인들이 남긴 참치캔이나 마늘, 깻잎 등을 구해서 먹곤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버린 쓰레기가 아직도 산에 많이 남아 있겠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어서 시작한 운동이다. 이미 에베레스트, 로체, K2에 올라가서 쓰레기를 주웠다.

한왕용은 18일 또다시 안나푸르나로 간다. 해외에서 펼쳐지는 열 번째 '클린마운틴 운동'이다.

"우리 산엔 왜 이리 쓰레기가 많나"

'한왕용의 클린마운틴' 회원 158명

한왕용 대장과 함께 산에 있는 쓰레기를 주우려고 나선 사람들은 ‘한왕용의 클린마운틴’ 회원들이다. 처음 활동을 시작했던 작년 3월엔 한왕용과 직접적으로 아는 열댓 명이 모여 쓰레기를 주웠다. 회원은 조금씩 늘어나 현재 이 모임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은 158명이다. 회원들은 매달 두 번째 토요일 모여 산에 오른다. 이미 무등산·월악산·월출산 등을 다녀왔다.

온라인 ‘클린마운틴’ 클럽대표인 김진학(43)씨는 “매주 30~40명이 모여서 활동을 같이 하는데 혼자 온 20대도 있지만 50대 부부가 같이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밴쿠버에 살며 한국에 가끔 들어올 때마다 모임에 참여하는 김정의(49)씨는 “외국 산은 술 먹는 사람뿐만 아니라 땅에서 쓰레기 하나 발견하기 힘든데, 하루 모여 산에서 쓰레기를 주우면 가지고 온 쓰레기 봉지가 모자랄 정도로 많다”고 말했다.

회원들의 말에 따르면 가장 쓰레기가 많이 발견되는 장소는 ‘산 중턱 쉼터’다. 산을 오르는 중간중간에 숨이 찬 사람들을 위해 평평한 공간을 만들어 놓는데 막걸리·깨진 소주병·비닐봉지 등이 가장 많이 발견되지만, 고무로 된 폐기물이나 고철 더미도 간혹 있어 들고 내려올 때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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