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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은 ego가 일탈한 마운틴 오르가슴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10. 10. 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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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은 ego가 일탈한 마운틴 오르가슴"

입산과 하산 반복하는 삶 살아…"산은 새 사고(思考) 창출의 최고 장소"
[월간 산 491호 (2010. 09) - 名士와 산 / 동양학 조용헌 박사]


“공간이 사고를 창출합니다. 산은 새로운 사고를 만들기 가장 좋은 공간입니다.
역대 많은 종교인들이 고행을 하고 깨침을 얻은 장소가 바로 산입니다.
산은 우주와 나를 연결하는 중간고리이고, 우주를 느끼게 해주며, 지극한 평화를 주는 신의 전도사가 되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산을 좋아했고, 산에 들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20대엔 스님이 되려고 했는데, 그럴 팔자가 못 되었는가 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스님이 못 돼서 세상과 접촉하고, 세상을 좀더 정확하게 바라보고, 나아가 한국이 세계중심으로 우뚝 서기 위한 일들의 일종입니다.”




▲ 조용헌 박사가 장성 축령산 자락 편백나무숲을 오르다
편백나무에 기대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스스로 도인이 되지 못한 강호(江湖)의 은자에 비유하는 동양학(엄격히 말하면 불교민속학이고 한국학) 박사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에 속한다. 그러나 ‘도인이 되지 못한 은자’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치고는 너무나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4년 9월 강호에 묻혀 살던 조용헌 박사는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이란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강호에서 일약 속세의 명망 있는 문필가로 떠올랐다.

이전까지는 ‘조용헌’이란 이름 석자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지금은 전국에서 동양학, 즉 천문·지리·인사에 관한 문의와 자문이 잇따르고 초청도 줄을 잇는다. 강호에서 수십 년 쌓은 내공을 세상에 하나씩 선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산에 살고 있다. 산에 한 번씩 가는 게 아니라 아예 산과 함께 부대끼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그를 있게 한 것이 강호이고 산이기 때문에 산을 떠날 수 없다. 더더욱 산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도 하다.



▲ 위) 조용헌 박사가 그의 ‘휴휴산방’ 마당에서 동양학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하고 있다.
아래) 장성 축령산 자락에 있는 조용헌 박사의 ‘휴휴산방’ 전경


“저는 입산과 하산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입산은 휴식이고 쉬는 개념입니다. 인간이 휴식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보통 산에 가면 휴휴산방(休休山房)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말 그대로 쉬고쉬고 또 쉬라는 얘기입니다. 쉬라는 말은 사색이 전제돼야 합니다. 제가 사는 곳도 축령산 자락 ‘휴휴산방’입니다.

반면 하산은 곧 속세이고 삶입니다. 속세는 사람을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들고 황폐화시키기 때문에 반드시 균형을 잡아줘야 합니다. 그 균형은 입산을 통해 잡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옛날 한때 ‘입산한다’는 말은 곧 ‘절에 가서 중이 된다’는 의미였다. 그도 정말 스님이 되려고 굳게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20대 후반부터 스님이 되려고 전국의 암자나 토굴을 찾아다녔다.

그런 이력이 지금도 남았는지 1년에 3분의 1가량은 방랑생활을 한다. 산에도 가고, 외국 도시를 구경하며 세상천지를 누빈다. 세상을 누빈 덕분에 지금 어디를 가더라도 걱정이 없다. 웬만한 산이나 절, 심지어 도시에서까지 먹고 재워 줄 지인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그가 왜 스님이 되려고 했으며, 왜 못 됐을까? 아니, 왜 출가를 하지 않았을까? 타인의 개인사는 언제든지, 누구나 궁금한 법이다. 더구나 속세의 명망 있는 문필가는 더더욱 그렇다.

“어렸을 때는 단순히 산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산을 동경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스님이 되겠다는 판단과 연결됐을 겁니다. 조금 더 커서는 존재에 대한 의문, 즉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지만 지금도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되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우선 인생에 처절한 실패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사업이 쫄딱 망했다든지,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왔다든지 하는 등의 경험 말입니다.

다음으로 팔자소관입니다. 종교인은 타고난 팔자가 있습니다. 팔자에 없으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속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체험이 없어도 기도발로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딱 깨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발로 바로 입산하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산이 많은 나라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는 애초부터 스님이 될 인연은 조금 멀었던 듯하다. 단순히 산을 좋아하고 산을 동경하는 정도만으로 스님이 되기엔 약발(?)이 약한 느낌이다. 스스로도 그런 결론을 내려서인지 스님이 되지 못한 한(恨)을 동양학의 대중적 접근을 통해 세상으로 계속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덕분으로 동양학이 이젠 어느 정도 낯설지 않게 됐다.



▲ 편백나무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조용헌 박사.


기독교 지도자들도 산에서 깨친 사람 많아

그가 공부하고 연구하는 동양학은 기본적으로 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산은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70% 가까이 차지한다. 어디서든지 산을 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기거할 수 있는 해발 1,000m 내외의 산이 기도발이 가장 잘 받으며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이 살기 어려운 고산에서는 날씨나 기온 등 혹독한 조건 때문에 균형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기도와 무속이 성행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산과 기도발,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평지에서는, 들판에서는, 사막에서는 기도발이 먹히지 않을까?

“바위는 거대한 기운의 덩어리입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화강암의 바위 덩어리로 된 산들입니다. 단단한 바위일수록 기(氣)가 넘쳐 흐릅니다. 지구가 거대한 자석과 같은 이치인거죠.

바위산이 많으면 영성(靈性)계발에 유리하며, 종교적 기도가 성행합니다. 다 기를 받기 위한 작업들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기독교 지도자들 상당수도 산에서 기를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산과 함께 사막에서도 종교적 체험이 가능합니다. 산은 고요하면서 새소리, 동물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사막에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절대 고독입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극한적 상황이죠. 역설적으로 이 극한 상황이 종교의 영성계발엔 오히려 유리합니다.

조금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미국의 9·11테러는 ‘돈과 영성의 충돌’인 측면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절대 고독으로 영성을 닦은 알카에다는 그래서 자신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극단을 선택할 수 있는 겁니다.”



▲ 2008년 2월 조선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조용헌살롱’ 500회를 맞았을 때의 조용헌 박사


영성계발은 알프스 자락에서도 활발하다. 우리나라의 산과 달리 해발 3,000m 내외의 알프스는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하지만 그래도 산에서 기를 받기 위한 각종 영성모임은 성행하고 있다. 유럽의 ‘도사’들은 대부분 알프스 출신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칼 융, 루돌프 슈타이너와 같은 유명한 학자, 예술가들도 알프스 출신들이 많다. 전부 알프스의 기운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북한산 자락의 평창동에 예술과 문화촌, 부촌이 형성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히말라야 자락에서 달라이 라마와 같은 큰 스님이 탄생한 것도 히말라야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바위산이 氣 많아 기도처로 각광

바위산이면 어디에 있든, 아무 산이든 똑 같은 기가 쏟아져 나오는 걸까?
조 교수는 한마디로 “개성의 차이고,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차이”라고 말한다.

그의 책 <사주명리학 이야기>
‘종교인들이 기도를 하면 기도발이 잘 받는 산을 화체(火體)의 산이라 한다. 불꽃처럼 끝이 뾰족뾰족한 산이 화체의 산으로 영암 월출산이 대표적이다’고 적고 있다.

조선시대 풍수지리가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월출산을 ‘화승조천(火乘朝天)의 지세(地勢)’라고 했다. ‘아침 하늘에 불꽃처럼 기를 내뿜는 땅의 형세’정도 되겠다. 월출산과 비슷하게 암벽이 많은 설악산, 계룡산, 가야산 등은 어떨까?

월출산은 산 전체가 수석으로 둘러싸여, 바둑으로 치자면 속전속결형에 해당합니다. 이런 산에서는 흙이 있는 장소가 명당이죠. 그래서 월출산 자락의 흙이 많은 명당자리에 무위사가 자리 잡고 있죠. 그것은 마치 세상의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음양과 선악이 공존하는 이치와 같은 겁니다. 산에서의 음양과 선악의 양면성은 바위와 흙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월출산은 접근성도 좋아 고려시대 때는 천신제를 지낸 명산이었습니다.

설악산은 웅장한 면에서는 월출산보다 뛰어나지만 1년에 8개월가량 눈에 덮여 있어 너무 춥고 먹을 것이 부족해 사람이 살기 적합하지 않습니다. 산이 아무리 기가 세더라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적당한 조건과 접근성을 충족시켜야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설악산은 월출산과 다르죠.

계룡산은 중앙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고 균형감각까지 갖춰 주거지역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바둑에서 다케미야의 우주류에 가까운 산이죠. 전체 균형감과 접근성이 좋으니 세상 변혁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어떤 변화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항상 거론되죠.

가야산은 은둔지로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예로부터 오대산, 소백산과 더불어 삼재(三災·화재, 수재, 풍재)가 들지 않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산이 오죽 깊었으면 그랬겠습니까. 가야산의 대표 인물인 고운 최치원 선생은 홍류동 계곡으로 들어가면서 다시는 나오지 않겠다고 한 글귀가 아직 남아 있죠. 그만큼 깊은 산입니다. 계룡산보다는 먹을 것 없고 접근성이 떨어져 일반인이 살기 힘든 산입니다. 이와 같이 산마다 조금씩 개성의 차이, 즉 특성이 있습니다.”

그의 산에 대한 해박한 이론과 설명은 자연히 산에 기반을 둔 풍수지리로 넘어갔다.

“풍수는 기본적으로 균형이론입니다.
바위 많은 산에서는 흙이 있는 곳이 명당이고, 땅만 있으면 물이 있는 곳이 명당입니다. 서울은 명당 중의 명당이죠.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불암산 등 바위산들이 서울 외곽을 에워싸고, 내부로는 인왕산, 북악산, 안산 등의 악산이 있죠. 기운이 철철 넘쳐 흐릅니다.

그 센 기운을 한강이 서울 중앙을 가로지르며 삭이고 있습니다. 청계천도 서울 도심의 기운을 삭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화기형인 이명박 대통령도 청계천을 복원한 것과 같이 물을 잘 이용해서 대통령이 됐다고 봅니다. 현대 도시들은 이와 같이 치수를 잘해야 합니다.

반면 치수가 가장 잘 안 된 도시가 북경입니다. 전형적인 불의 도시입니다.
불의 도시에서 전염병이 발병하면 순식간에 창궐합니다. 가장 위험에 노출된 도시라고 봐야죠. 강이 없는 분지의 도시에서는 도심에 분수와 같은 물이 있는 장소를 많이 만들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서양의 풍수와 한국의 풍수는 기준이 조금 다릅니다.
서양은 방내정원(方內庭園)인 반면, 우리는 방외정원(方外庭園)이죠. 서양은 건물 내부 마당의 구조와 위치 등에 관심을 두지만 우리는 집 외부의 풍향과 산의 위치 등에 초점을 두고 집을 짓습니다. 결국 산과 관련된 것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산의 형태에 따라 마을의 5일 장날도 결정됩니다.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 오행에 따라 수는 1·6일, 화는 2·7일, 목은 3·8일, 금은 4·9일, 토는 5·10일입니다. 불 기운이 많은 산이 있는 마을은 1·6일로 장날을 정해 물로 다스려 주는 이치인 거죠.”

이러한 모든 것들은 동양학, 그가 말하는 한국학에 전부 담고 있다.
동양학의 3대 요소가 천문, 지리, 인사의 문제다. 다르게 표현하면 시간, 공간, 존재를 말한다.

먼저 천문이 바로 시간, 즉 타이밍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주팔자의 문제이고, 경제적으로는 ‘과연 어느 때 베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투자시기의 문제인 것이다. 요즘은 세계 최대의 금융 중심지인 월가에도 천문 점성술가를 동원해서 베팅 타이밍을 결정한다고 한다.

조 교수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재물욕, 성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의 오욕에 덧붙여 미래욕도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인간이 결국 최종 승리자가 되는 세상이 됐다는 주장이다.

지리는 공간이고 환경의 문제다.
이는 곧 풍수와 연결된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있는 땅에 인간이 거주하면 세세손손 건강하게 부귀를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인사의 문제는 사상의학인 한의학의 본질이다.
한의학이 바로 인간 존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주의 축소판인 인간 신체를 절대 균형에 맞추기 위해 연구를 한다. 우주를 압축한 것이 바로 인간의 몸이다. 역설적으로 인체라는 소우주를 통해 세상의 음양과 균형을 유지하게 한다. 그 한의학의 하위체계가 바로 관상인 것이다.


산이 많아 영성 발달하고 자살 방지 도움

조 교수는 “나는 한의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한 동양학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강호에서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동양학자들이 많다”고 겸손해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강호에서 강단으로 들어온 명망 있는 문필가가 됐다. 따라서 그에게 자문을 하는 사람들은 전국에 숱하게 많다. 재벌부터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또한 그의 내공을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운명을 파악하려면 얼굴을 보는 순간 알 수는 없고, 그 사람의 습관, 태도, 버릇 등 다양한 측면을 봐야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로 역술가가 되려면 2만 명 이상을 보고 정확히 예측해야 되지만 아직 4분의 1 정도인 5,000명 정도밖에 못 봤기 때문에 프로는 아직 못 됐다고 한다. “역술가는 비싸게 놀면 교주가 되고, 싸게 가면 점쟁이가 된다”고 우스갯소리도 덧붙였다.

‘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싸지도 않은’ 그는 우리나라에 산이 많아 자살 방지에 특히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아마 산이 자살률을 평균 20% 이상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산(千山)대학을 설립해야 된단다.
“중년이 다녀야 할 대학이며, 죽을 때까지 천 개의 산을 올라야 과정을 마칠 수 있는 대학”이라고 보충설명을 했다. 아마 곧 그의 이름으로 설립될지도 모르겠다.

천산대학과 더불어 한국의 전통적인 학문, 즉 산과 관련된 모든 학문을 연구하는 ‘토종대학’ 설립은 벌써 구체화되고 있다. 전국의 강호들이 토종대학 설립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의 산에 대한 학문적 접근과 연구결과에 대한 설명과 애정은 계속됐다. 어릴 때부터 외국으로 간 유학생들에게 한국 정체성 복구 프로그램으로 ‘10대 명산’, ‘36대 명당’, ‘72대 유적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정통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이 곧 우주고 신이며, 등산은 산에서 에고(ego)가 일탈한 마운틴 오르가슴의 상태입니다.”

이 정도면 산이 곧 조용헌이고, 조용헌이 곧 산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는 산에 살고 있다. 입산과 하산을 반복하는 그의 삶은 산을 더욱 대중적으로 접근시키기 위한 작업의 일환일 수도 있다. 그가 산을 사랑하는 만큼 산에 대한 강호의 학문은 계속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작업의 결과가 과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 글 : 박정원 부장대우 / 월간 산 9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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