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과 칸첸중가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는 8000m 넘는 히말라야 열네 개 봉우리를 세계 두 번째로 모두 오른 뒤 기록을 의심받았다. 1981년 마칼루 등정 사진을 못 찍었기 때문이다. 등반대에 참여했던 네팔 연락장교도 그가 정상을 밟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그를 궁지에서 구해낸 이가 허영호다. 허영호는 이듬해 마칼루에 올랐다가 쿠쿠츠카가 남긴 무당벌레 모양 마스코트를 발견해 의혹을 씻어 줬다.
▶1989년 한 산악인이 한국인 최초로 초오유를 산소통 없이 올랐다고 해 정부의 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맑은 날 정상에서 찍었다는 사진에서 남쪽 에베레스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6년 뒤 초오유 등정이 거짓이었다고 고백했다. 세계 산악계에 등정 의혹과 조작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산의 숫자와 높이에 집착하는 성과주의,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등정주의 탓이다.
▶미국 기자 마이클 코더스는 책 '에베레스트의 진실'에서 돈에 오염된 히말라야를 까발렸다. 베이스캠프엔 텐트 500채에 1000명이 북적인다. 음식과 술을 팔고 마약에 매춘까지 이뤄진다. 2억원을 내면 대행사가 팀 구성, 장비 운반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준다. 이렇게 해마다 500여명이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코더스는 등반이 상행위로 전락했고 에베레스트는 '인간성의 무덤'이 됐다고 개탄했다.
▶대한산악연맹이 오은선의 14좌 완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 됐던 칸첸중가 등정 사진 속 지형이 실제 정상엔 없는 것이라고 판정했다. 오은선의 여성 최초 14좌 완등 기록이 국제적으로도 흔들리게 됐다. 스페인 경쟁자 에두르네 파사반은 오은선보다 열하루 늦게 14좌 등정을 달성했다.
▶산악계는 오은선이 적어도 등정 사진을 확실히 남기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가 셰르파 말만 믿고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2000년까지 14좌를 모두 오른 엄홍길은 시샤팡마와 로체 등정에 시비가 일자 이듬해 두 봉우리를 다시 올랐다. 오은선은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당당하게 칸첸중가 재등정에 나서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산악계는 산을 오르는 '태도(attitude)'보다 '높이(altitude)'를 중시하는 상업주의를 되돌아볼 일이다.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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