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 ‘칸첸중가 등정 의혹’
오은선 ‘칸첸중가 등정 의혹’ 지난 4월27일 한국의 오은선(44·블랙야크)이 세계 여성 산악인으로는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봉을 모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오은선은 이날 14봉 중 마지막으로 안나푸르나 정상에 서면서 히말라야 14개봉 완등의 새 역사를 썼다. KBS는 마지막 등정을 생중계했고 국민들은 오은선의 완등을 축하했다. 하지만 이전부터 오은선의 14봉 중 열 번째로 오른 칸첸중가 등정에 대한 의혹이 국내외에서 불거졌고 논란이 이어졌다. 의혹은 지난 21일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오은선 칸첸중가 등정의 진실’을 방송하면서 크게 확산됐다. 결국 26일 대한산악연맹이 “오은선의 등정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려 파장이 번지고 있다. 고산 등정 의혹을 둘러싼 궁금증을 짚어 본다. 1. 14봉 완등이란 히말라야 8000m급 14개봉을 모두 오르는 것을 말한다. 에베레스트(8848m) K2(8611m) 칸첸중가(8586m) 로체(8516m) 마칼루(8463m) 초오유(8201m) 다울라기리(8167m) 마나슬루(8163m) 낭가파르바트(8126m) 안나푸르나(8091m) 가셰르브룸1봉(8068m) 브로드피크(8047m) 가셰르브룸2봉(8035m) 시샤팡마(8027m) 등 히말라야와 카라코람 산맥의 14개 봉우리가 그 산들이다.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가 첫 14봉 완등을 했고 국내에선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에 이어 오은선이 네 번째로 14좌에 발자국을 남겼다. 2. 칸첸중가는 어떤 산 칸첸중가는 네팔과 인도의 국경에 위치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5개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3개가 8000m를 넘는다. 산 이름이 ‘다섯 개의 빙하의 보고(寶庫)’라는 뜻을 갖고 있다. 1955년 영국의 C 에번스가 이끄는 탐험대가 얄룽 빙하를 거쳐 최초의 등정에 성공했다. 산의 최정상은 ‘신성(神性)’을 지녔다 해서 밟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엄홍길 등 남자 산악인 7명이 등정했고 논란을 빚고 있지만 오은선까지 8명이 정상에 올랐다. 3. 등정 성공은 어떻게 인증되나 국제 산악계에서 고산 등정을 인증하는 기구가 따로 있진 않다. 등정 인증은 산악인이 스스로 해야 한다. 따라서 칸첸중가 등정 의혹도 결국 최종 책임은 확실한 증거를 남기지 못한 오은선의 몫이다. 보통 카메라를 가지고 정상에서 사진을 찍는다. 등반가가 들어가게 사방으로 찍어 주변 지형을 통해 정상임을 입증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요즘은 동영상을 찍고 GPS를 통해 인증받기도 한다. 카메라가 작동이 안 되거나 없을 때는 등반가 자신만이 갖고 있던 물건을 정상에 놓아두고 나중에 올라간 등반가를 통해 인증받기도 한다. 반대로 먼저 오른 사람이 놓고 간 물건을 가지고 내려와 인증을 받는다. 히말라야 14봉을 두 번째로 완등한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는 1981년 마칼루를 혼자 오르고도 사진 촬영을 못해 등정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 1982년 5월 한국의 산악인 허영호가 마칼루에 올라 쿠쿠츠카가 놓고 간 무당벌레 모양의 마스코트를 발견해 등정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4. 엘리자베스 홀리는 누구인가 세계 산악인들은 엘리자베스 홀리(87) 여사를 찾아가 자신의 기록을 인정해 달라고 한다. 홀리 여사는 히말라야 고봉은 물론 베이스캠프에조차 올라본 적 없으며 공식적인 지위를 가진 것도 아니다. 미국 출신의 전직 언론인으로 1962년부터 로이터통신 특파원으로 네팔 카트만두에서 일하며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등반대를 인터뷰하고 등반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정리해 왔다. 1960년대 이후 히말라야 고봉 등정 기록은 홀리 여사의 손으로 쓰여졌다. 2003년에는 그가 모은 기록에 1905년부터의 히말라야 등반사를 더해 ‘히말라야 데이터베이스’를 제작했다. 그는 원정대가 네팔에 도착했을 때와 등반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두 번을 만나 등반 계획과 결과에 대해 인터뷰하고 기록한다. 그러다 보니 홀리 여사가 정식 공인자는 아니지만, 등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산악계의 ‘권위자’가 됐다. 5. 오은선 등정 의혹은 무엇인가 먼저 오은선이 정상에서 찍었다는 사진이 문제가 됐다. 주변 경관을 알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정상에는 없다는 바위가 옆에 있다. 이로 인해 정상에 오른 등반가들로부터 ‘오은선의 사진 어디에도 칸첸중가 정상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가 없다’는 의심을 받았다. 또 다른 의문점은 당시 오은선이 산소호흡기도 사용하지 않고 해발 8000m 지점에서 다른 등반가들보다 훨씬 빠른 3시간30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함께 등반한 셰르파 중 한 명이 오은선의 등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SBS가 제기한 의혹 중에는 오은선이 정상에 올라 수원대 깃발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았다고 밝혔지만 그가 정상에서 찍은 사진에 수원대 깃발이 품에 담겨 있어 더 의문을 가중시킨 점도 있다. 홀리 여사의 ‘히말라야 데이터베이스’도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을 ‘논쟁 중’으로 기록하고 있다. 6. 파사반은 왜 계속 의혹을 제기했나 등정 의혹이 처음 제기된 것은 국내 산악인에 의해서다. 오은선과 14봉 완등 경쟁을 벌이던 고 고미영씨의 산악대 등반대장인 김재수씨는 오은선 등정 12일 후 칸첸중가에 올랐다. 그는 등반 직후 오은선의 정상 사진을 문제 삼았다. 또 “정상 200m 아래에서 오은선의 수원대 깃발이 네 군데에 돌로 고정된 채 발견됐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오은선이 정상에 가지 않고 깃발을 고정시킨 곳까지만 갔다 온 게 아니냐는 것이다. 오은선과 14봉 완등 경쟁을 벌이던 스페인의 산악인 에두르네 파사반(36)도 여러 차례 “오은선이 칸첸중가에 등정하던 날 자신도 같은 장소에 올랐다”면서 “그녀가 보여준 사진 배경에는 바위가 있지만 당시 정상지역은 완전히 눈으로 덮여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지난 5월 14봉 완등에 성공했다. 7. 홀리는 오은선의 등정을 인증했나 홀리 여사가 오은선의 14봉 완등을 인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은선은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한 뒤 지난 5월3일 카투만두에서 홀리 여사를 만났다. 당시 현지에 동행한 국내 언론은 홀리 여사의 “축하한다”는 말을 “14좌 완등에 대한 인증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산악인 중엔 홀리 여사의 발언을 ‘14봉 인증’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홀리 여사가 “나는 어디까지나 기록자일 뿐 판단자가 아니다”며 “파사반의 스페인팀이 의혹을 철회하지 않는 한 당장은 ‘논란 중’이라는 평가를 삭제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기 때문이다. 홀리 여사의 판단은 ‘논쟁 중’이란 평가에 담겨 있는 것이다. 8. 서밋미팅, 왜 전격적으로 이뤄졌나 국내 대표 산악단체인 대한산악연맹은 칸첸중가를 오른 국내 산악인 7명과 오은선이 ‘서밋미팅(summit meeting)’을 갖고 ‘합리적으로,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등정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다고 지난 24일 언론에 밝혔다. 오은선이 이 같은 통보를 받은 것은 이날 오후 2시40분쯤이었다. 오은선은 26일 오전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자료가 준비되면 언제든지 서밋미팅에 참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날 오후 연맹은 전격적으로 서밋미팅을 갖고 ‘오은선의 등정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은선에게 통보한 지 단 이틀 만에 소명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연맹은 “칸첸중가 등정 의혹이 처음 나온 지난해 5월부터 검증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단 며칠을 기다리지 않고 오은선이 없는 서밋미팅을 열어 결론을 내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연맹은 또 오은선이 “서밋미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오은선의 주장과 다르다. 이로 인해 이번 등정 의혹 논란을 둘러싸고 한국 산악계의 오랜 갈등이 배경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9. 칸첸중가 등정은 거짓이 된 건가 앞에 밝힌 대로 등정의 성패를 판단하는 단체나 기구는 없다. 다만 산악인 정신에 맡길 뿐이다. 하지만 한국 산악계의 대표 기구인 연맹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림에 따라 파사반 등 국제 산악계 일각에서 제기해 온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 의혹은 설득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현재 누구도 진위를 단정 지을 수 없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여러 의혹을 제기했고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받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오은선의 ‘거짓’에 포커스를 맞추고 취재했다는 느낌을 갖는 산악인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오은선의 등정을 인정하는 셰르파 옹추는 무언가 거짓말을 하는 듯하고, 인정하지 않는 누르부는 양심고백을 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칸첸중가를 네 번이나 오른 베테랑 옹추가 예를 들면 ‘돈에 매수돼’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또 문제가 된 수원대 깃발 역시 오은선은 거기가 정상이 아닌 줄 알면서 왜 4개의 돌로 받쳐 놨을까?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증’하고자 했단 말인가? 여전히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은 단정 짓기에 풀리지 않는 문제가 많다. 10. 국내외 등정 의혹은 어떤 게 있나 근대 알피니즘 초창기부터 등정 의혹은 이어져 왔다. 100년이 넘어 의혹이 해소된 경우도 있다. 1786년 프랑스의 자크 발마와 미셸 파카르는 몽블랑 등정에 성공, 근대 알피니즘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발마는 몽블랑 초등정의 업적을 독점하기 위해 파카르가 동상에 걸려 오르지 못했고 자기 혼자서만 올랐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진상이 밝혀져 파카르의 등정도 인정됐다. 1906년에는 미국의 프레드릭 쿡이 매킨리를 등정했다면서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증거로 내놓았다. 그는 매킨리 등정을 계기로 부와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1913년 스턱과 카스턴스가 산에 올라 쿡이 정상에서 찍어 온 사진이 매킨리의 한 낮은 봉우리였음을 밝혀냈다. 등정 의혹은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있었다. 우리의 해외 고봉 등정 역사에도 처음부터 시비가 있었다. 1970년 세계 최초로 추렌히말(7371m) 등정에 성공했지만 뒤이어 오른 일본 원정대에 의해 등정 의혹이 제기됐고, 끝내 의혹을 풀지 못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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