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春分'의 의미
'철부지'는 철을 모른다는 말이다. '부지'는 한자로 '부지(不知)'이다. 철을 안다는 것은 사계절의 순환에 맞추어 산다는 의미이다. 여름이 와서 더우면 옷을 벗고, 겨울이 와서 추우면 옷을 껴입어야 한다. 여름에 털옷 입고, 겨울에 삼베옷을 입으면 철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과연 벗을 때인가, 아니면 껴입을 때인가?
철(時)을 아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 어제(21일)는 춘분(春分)이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음과 양의 길이가 똑같으므로 음기와 양기가 균형 잡힌 날이다. 이런 절기에 판단을 내리면 비교적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 우리가 보통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고 하면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균형 잡힌 사관(史觀)을 말한다.
봄과 가을은 밤과 낮의 길이가 비슷해서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은 계절이다. 특히 춘분과 추분(秋分)은 봄과 가을이 상징하는 중정의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공자가 자신이 서술한 노나라 역사서의 제목을 하필이면 '춘추(春秋)'라고 지은 연유는 이 때문이다. 균형 잡혀 있다는 것은 엄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춘분이 지닌 또 하나의 의미는 용(龍)이 저녁 하늘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하늘의 28수(宿)가 있다. 이 가운데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별이 각각 7개씩 있다. 동방을 상징하는 별도 7개이다. 각·항·저·방·심·미·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동방 7수는 청룡을 상징하고, 서방 7수는 백호를 상징하고, 남방 7수는 주작을, 그리고 북방 7수는 현무를 상징한다고 여겼다. 춘분날 저녁 술시(戌時:9시 무렵)가 되면 청룡의 뿔부터 하늘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시일이 흐르면서 용의 머리가 나타나고, 몸체가 드러나다가 꼬리까지 완전히 하늘에 나타난다.
하지(夏至)가 되면 용이 중천에 떠 있다가, 추분(秋分)이 되면 그때부터 이 용이 하늘에서 사라진다. 아시아의 농경 문화권에서 춘분은 바로 농사가 시작되는 시점이었음을 말해준다. 용은 물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이다. 쌀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반드시 필요하고, 물을 관장하는 용이 출현해야만 농사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농경 문화권에서 춘분은 바빠지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춘분날 저녁에 산방의 마루에 앉아 동쪽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철이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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