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1000년 된 부적
옛날엔 종기가 나면 그 환부(患部)에 '견(犬)'자를 쓰고 둘레에 '호(虎)'자를 아홉 개 둘러쓰곤 했다고 한다. 호랑이 아홉 마리가 개를 가두어놓고 으르렁대고 있는 걸 보면 병마(病魔)도 무서워서 도망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근대에 들어서도 학질을 앓으면 '주재소 순사(駐在所 巡査)'라고 쓴 종이를 이마에 붙여 병을 쫓았다. 산길을 떠날 때는 여자의 살내가 스민 속적삼 한쪽을 오려 들고 가면 호랑이나 뱀의 접근을 막는다고 했다.
▶과거를 앞두고는 공자를 모시는 문묘의 뜰이나 출세한 고관대작의 집 뜰 흙을 몰래 퍼다 자기 집 아궁이에 바르면 그 기운을 받아 과거에 급제한다고 생각했다. 옛날 비석 중에는 문(文) 공(孔) 맹(孟) 급(及) 제(第) 인(仁) 의(義) 예(禮) 지(智) 같은, 학문과 관련된 글자들이 파여나간 경우가 많다. 유생들이 이런 글자를 파 가루를 내 마시면 급제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옛 사람들은 이처럼 물건이나 문자, 도형에 자기 소망을 실어 병이나 화(禍)를 쫓고 복(福)을 불러들이려 했다. 이러한 주술 행위가 간소화돼 종이나 나무 위에 형상을 그려넣게 된 것이 부적(符籍)이다. 신라 헌강왕 때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이 밤늦도록 놀다 들어와보니 아내가 역신(疫神)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처용은 화를 내기는커녕 "다리 둘은 내 것이고 둘은 뉘 것인고" 노래하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역신은 감복해 앞으로 처용의 얼굴을 그려 붙인 집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고대 기록으로 나타난 부적의 사례다.
▶경남 창녕 화왕산성 저수지에서 출토된 목간(木簡·나무 위에 문자를 기록한 것)을 국립중앙박물관 김재홍 연구관이 정밀 판독했더니 서기 9세기 만들어진 부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부적에는 '시(尸)'자 밑에 입 '구(口)'가 네 개 그려져 있어 최근까지 배의 안전을 기원할 때 썼던 부적과 놀랍게도 모양이 매우 비슷하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박찬호는 시즌 중엔 수염을 깎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선 태풍에 떨어지지 않고 버텨낸 사과가 '합격 사과'라고 해 입시철에 5만엔이나 되는 값에 팔리기도 했다. 부적은 미신에 지나지 않고, 그것이 뭔가를 해결해 줄 리 없다. 사람들이 첨단과학의 시대에까지 부적에 집착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약한 존재이며, 불행을 피하고 복을 불러들이려는 열망은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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