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한반도 개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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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묘용(妙用)이 나온다. 동(洞)자를 풀어 보면 ‘삼 수’(?)에 ‘같을 동’(同)이다. 물이 같으면 동(洞)이 된다.
우리나라의 모든 동네에는 동(洞)자가 들어간다. 어양동, 삼청동, 수송동, 영등동…. 이를 살펴보면 동(洞)이라는 글자 속에는 “같은 물을 먹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옛날에는 먹는 물을 중심으로 동네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우물을 중심으로 아낙네들이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동네 정보와 여론이 형성되는 이치이다.
우물보다 더 큰 개념이 냇물과 강, 그리고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이다. 경주(慶州) 충주(忠州) 나주(羅州) 등의 ‘주(州)’는 강물이 돌아가는 곳이고, ‘진(津)’이나 ‘포(浦)’ 자가 들어가는 곳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이다. 이는 고대사회에서 강물이나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음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물이 들어오는 곳이 바로 배가 다닐 수 있는 물류(物流)의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먹는 물이 되었건, 물류가 되었건 간에 물이 있는 곳에서 여론이 형성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고대의 인문지리학자들은 “같은 물을 먹으면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同水同想], “다른 물을 먹으면 생각도 서로 달라진다”[異水異想]고 여겼다. 물이 합해지면 여론이 통합되고, 물이 나누어지면 여론도 분산된다는 논리로까지 나아간다. 조선시대 풍수가들이 영남과 호남의 수세(水勢)를 논하면서 “영남은 낙동강 하나로 물줄기가 모아지니까 여론이 통합되고, 호남은 금강·만경강·동진강·영산강으로 강줄기가 분산되어서 여론이 나누어진다”고 진단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논리에서 나왔다.
호남 사람 입장에서 20대 후반에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호남 사람 물 먹이기 위해 고의로 꾸며낸 불량한 이야기로 들렸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공부를 해보니까 이 진단이 전혀 황당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洞)’이라는 글자가 바로 그 이치를 한마디로 이야기해 주고 있다.
느닷없이 물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요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부운하론’ 때문이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겠다는 계획은 한반도의 인심과 통합을 좌우하는 문제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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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지세(地勢)는 ‘동고서저’(東高西低)이다. 동쪽은 높은 산이고, 서쪽으로 내려오면서 낮아진다. 이 때문에 한반도의 강물은 동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내려온다. 이북 지역의 압록강·임진강·예성강·청천강·대동강도 그렇고, 이남 지역의 한강·금강·동진강·만경강·영산강도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단 낙동강과 섬진강은 남쪽으로 흐른다.
문제는 이들 강물이 쉽게 바다로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비가 오고 난 뒤에 대략 3일이면 서해 또는 남해로 빠져나가 버린다. 이를 인체에 비유한다면 설사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강물이 내륙에 오래 담겨 있어야 기운이 함축되는데, 빨리 빠져나가 버리면 기운도 함께 빠져나가 버리는 셈이다. 감여가(堪輿家·풍수지리를 공부하여 묘지나 집터의 길흉을 가리는 사람)들은 그동안 한반도의 이런 약점을 대단히 애석하게 여겨왔다. 강물이 길어야 유장(悠長)한 인물이 나오는데, 강물이 짧은 데다가 빨리 바다로 빠져나가 버리니까 인물이 나오기 힘들다고 한탄하였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앞으로 ‘물 부족’ 시대가 도래한다는 사실이다. 물이 부족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세계 도처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한국의 1년 강우량은 적은 편이 아니지만 이를 거의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다. 물을 어느 정도 가둬 두어야 한다.
문명사 전체를 놓고 볼 때도 그동안 불(火)의 에너지를 쓰는 시대였다면, 이제부터는 물(水)의 에너지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에 이르렀다. 대도시는 불을 먹고 산다. 빌딩, 전기, 자동차, 컴퓨터, 통신, 냉난방, 이 모든 것이 따지고 보면 불에서 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들은 불이 머리로 치솟는 ‘주화입마’(走火入魔)에 걸려 있다. 주화입마에는 물이 특효이다. 나는 이런 각도에서 청계천의 물을 서울의 ‘주화입마’를 치료하는 치료제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반도 전체의 입장에서 물을 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해안과 남해안으로 빠지는 강물을 서로 연결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20년간 이 문제를 연구한 청곡(淸谷) 김종회(金鍾懷)의 주장이다. 우선 한강에서부터 금강·영산강을 거쳐 부산의 낙동강까지 한반도의 서남해안을 따라 ‘ㄴ’자 형태로 운하를 만드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한반도를 개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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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淸谷) 김종회(金鍾懷)가 주장하는 ‘서해안 비보론(裨補論)’의 골자는 강화도의 한강 하구에서부터 시작하여 금강, 동진강, 만경강, 목포의 영산강, 하동의 섬진강, 사하 포구의 낙동강 하구까지 해안선을 따라 운하를 파서 서로 연결하자는 주장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 지역의 대동강과 압록강 하구까지도 소급해서 연결하는 계획이다. 운하의 폭은 100m, 깊이는 20m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방조제 형태로 운하를 만들 수도 있으며, 지형에 따라서 어떤 지점은 내륙으로 약간 들어와서 운하를 팔 수도 있다. 방조제와 이어진 강물 곳곳에 갑문(閘門)을 설치하여 바다로 물을 내보낼 수도 있으며, 갑문을 닫으면 강물은 운하를 따라 계속 순환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실로 엄청난 스케일의 계획이다. 10~20년이 아니라 적어도 한반도의 100~200년 앞을 내다보고 하자는 것이다.
서·남해안을 따라 이 ‘L’자형 운하가 완성되면 생기는 이점은 무엇인가? 첫째, 삼한(三韓)의 인심을 통합할 수 있다. 서·남해안으로 분산된 강물이 합해지므로 인심이 합해진다. 서해안으로 여러 갈래로 산발되어 흐르는 호남의 강물도 합해지고, 이 합해진 강물이 다시 영남의 낙동강 물과도 섞인다. 인심이 섞이고 통합되어야 경제도 있고, 발전도 있다. 인심이 분열되고 흩어져 버리면 되는 일이 없다.
둘째, 앞으로 다가올 물 부족을 대비할 수 있다. 서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저장·순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은 대체재가 없다. 총강우량의 26%만 이용할 뿐, 현재 31%는 바다로 유실되는 상황이다. 셋째, 새로운 교통로와 물류 인프라가 건설된다. 방조제 위로 고속도로와 철도를 가설할 수 있으므로 배·기차·자동차가 동시에 달릴 수 있다. 20m 깊이의 운하는 대형 선박도 통행이 가능하다.
넷째, 식량자원을 확보하고 국토를 확장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도는 30% 정도이다. 서해안과 남해안을 따라 새로운 국토와 농경지를 확보하면 식량의 무기화에 대비할 수 있다. 다섯째, 문화관광 자원을 확보한다. 서해와 남해를 따라 방조제가 완공되고 그 위로 기차·자동차·운하로 배가 다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이는 세계적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볼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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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는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이 있다. 아이디어와 통찰력은 ‘미시’(微視)와 ‘거시’(巨視)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때 나온다. 풍수학도 마찬가지이다. ‘미시풍수학’(微視風水學)과 ‘거시풍수학’(巨視風水學)이 있다. 미시풍수가 개인의 묏자리를 잡는 분야라고 한다면, 거시풍수는 도읍지를 잡거나 국토 전체를 유기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안목을 말한다. 과거에는 미시풍수가 주종을 이루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거시풍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시풍수적인 관점에서 한반도를 보자. 그동안은 서해안으로 흐르는 강물을 통하여 한반도의 기(氣)가 빠지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빠진 기를 받아먹는 곳을 추적해 보면 중국의 산동반도(山東半島)이다.
산동반도는 묘한 지점이다. 여기에서 중국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수없이 배출되었다. 대표적으로 공자도 산동반도 출신이고, 전국시대의 신의(神醫)인 편작(編鵲)도 산동 출신이다. 오늘날까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추연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도 산동반도에서 나왔고, 태산(泰山)도 산동에 있으며, 고대의 박물지인 ‘산해경’(山海經)도 산동문화권과 관련이 깊다.
산동에서 이처럼 많은 인물이 배출된 이유는 한반도(韓半島)가 ‘안산’(案山)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지도를 펴놓고 산동반도를 보면 황해 건너편에 한반도가 가로놓여 있다. 산동의 좌청룡(左靑龍)이자 안산에 해당하는 곳이 한반도인 것이다.
거시풍수에서 보자면 한반도에서 배출되는 기운을 곧바로 받아먹었던 지점이 산동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서남해안으로 운하를 파서 강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돌리면 산동 쪽으로 기운이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산동의 기운을 우리가 받아먹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이 우리의 우백호(右白虎)로 작용하게 된다. 한반도가 기운을 함축해서 자기 관리를 잘하면 중국의 산동 쪽이 우리의 안산이자 우백호가 된다는 말이다.
한반도는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국의 속국 노릇을 해왔다. 이제 그만둘 때도 되었다. 한반도를 개조해서 중국이 우리의 우백호가 되도록 할 수 있는 천시(天時)가 도래하였다. 필자는 도선국사(道詵國師) 이래로 그 수많은 조선의 풍수가들이 염원했던 숙원사업이 바로 한반도 개조라고 생각한다.
(조용헌 goat135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