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영호론(嶺湖論 )
충청·전라·경상의 삼남(三南) 지역을 구분 짓는 경계선은 영(嶺)과 호(湖)로 이루어졌다. 경상도인 영남(嶺南)은 ‘영(嶺)의 남쪽’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영’이라 하면 ‘조령(鳥嶺)’을 가리킨다. 조령, 즉 ‘문경새재’ 밑으로는 영남인 것이다. ‘관동(關東)’도 대관령(大關嶺)의 동쪽을 가리키는 표현이니까, 대관령이라는 ‘영’이 그 기준이 된 것이다.
충청도는 호서(湖西)라고 부르고, 전라도는 호남(湖南)이라고 부른다. ‘호(湖)’가 기준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호(湖)는 어디를 가리키는가.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금강 상류인 대청댐 부근이 호서와 호남의 기준이 된다는 관점이다. 같은 금강 줄기이지만 대청댐 부근을 옛날 사람들은 ‘초강(楚江)’이라고 불렀고, 남쪽인 대전 방향의 강줄기를 ‘형강(荊江)’이라고 불렀다. 초강에 해당하는 대청댐 북쪽은 호북(湖北)이 되는 것이고, 형강에 해당하는 대청댐 남쪽 지역은 호남(湖南)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서쪽은 호서(湖西)가 된다.
대청댐을 기준으로 호서와 호남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여말선초(麗末鮮初)부터이다. 금강 상류에 미륵원(彌勒院)이라는 원(院)이 있었다. 경상도에서 서울을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이 미륵원의 주인이 회덕황씨(懷德黃氏)인 황수(黃粹)라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재산이 넉넉한 데다가 손님 대접을 잘해서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미륵원에 모여서 놀다 가곤 하였다. 변계량(卞季良), 이색(李穡), 정이오(鄭以吾) 등이 미륵원에 모여서 한담을 나누다가 그 자리에서 이색이 ‘미륵원기(彌勒院記)’를 쓴다. 여기에서 ‘호서’와 ‘호남’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영(嶺)은 산이고, 호(湖)는 물을 가리킨다. 영남은 배산(背山)이고, 호서와 호남은 임수(臨水)로 해석할 수 있다. 산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면, 물은 움직이면서 많은 묘용(妙用)을 일으킨다. 이번 선거에서 호남의 광주(光州)가 가장 큰 변수라고 한다. 광주는 ‘호중광(湖中光)’이니, 물속의 불이다. 이 불이 호남의 물을 어떻게 끌지 지켜볼 일이다.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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