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황윤석 집안의 예절교육
구한말에 대원군은 책을 한 권 구하고 있었다. '이수신편(理藪新編)'이라는 책이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이과(理科) 분야를 다룬 책으로서 과학, 천문학, 수학, 음악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저자는 조선후기 호남의 실학자였던 황윤석(黃胤錫·1729~1791)이었다. 대원군이 이 책을 수소문한다는 소문을 접한 황윤석의 6대 후손은 집에 보관되어 있던 '이수신편'을 가지고 서울 운현궁으로 찾아가 바쳤다.
대원군이 물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전라도 순창 회문산(回文山)에 있는 명당인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에 묘를 한자리 쓰는 것이 소원입니다." '다섯 신선이 모여 바둑을 두고 있는 형상'이라고 알려진 이 묏자리는 당시 호남 최고의 음택지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 이 자리는 만일사(萬日寺)라고 하는 절 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만일사로 말하면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위하여 기도를 했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이성계가 무학을 만나러 만일사에 왔다가 절 아래의 동네에서 고추장을 맛보았는데, 이 고추장이 바로 오늘날 순창이 고추장의 명소로 알려지게 된 계기이다. 결국 대원군의 명에 의하여 만일사는 산 아래쪽으로 이전해야만 했고, 원래 있던 절 자리에 황씨 집안이 묘를 쓰게 되었다.
이 묏자리 쓰는 작업을 했던 황윤석의 7대 후손이 바로 전주에서 서예가로 유명했던 석전(石田) 황욱(黃旭·1898~1993)이다. 석전은 오른손이 떨리는 수전증이 생기자, 손바닥에 붓을 쥐고 글씨를 쓰는 악필법(握筆法)을 개발하였고, 80대 중반에 가서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좌수악필(左手握筆) 서체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이 묘를 쓴 뒤에 '묘바람'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손 중에 여러 명의 교수와 박사들이 배출되어 학자가 많다.
몇 년 전에 '송하비결(松下秘訣)'에 대한 해석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황병덕 박사도 이 집안이다. 엊그제에 전주 한옥마을에 가 보았더니만, 석전 황욱의 며느리인 전인주(71) 여사가 깔끔한 한옥에서 '전북예절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기호지방 양반 집안에서 내려온 예절을 가르치는 곳이다. 조선 선비집안의 가풍과 정신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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