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의 아홉 가지 덕 - 도종환
나쁜 환경을 견디어내는 인(忍), 뿌리를 잘려도 새싹이 돋는 강(剛),
꽃이 한번에 피지 않고 차례로 피므로 예(禮), 여러 용도로 사용되니
온몸을 다 바쳐 세상에 기여한다하여 용(用), 꽃이 많아
벌을 부르므로 덕(德), 줄기를 자르면 흰 액이 젖처럼 나오므로 자(慈),
약으로 이용하면 노인의 머리를 검게 하여 효(孝),
흰 액은 모든 종기에 잘 들어 인(仁), 씨앗은 스스로의 힘으로
바람 타고 멀리 가서 새로운 후대를 만드니 용(勇) 의 덕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 이유로 어린 학생들의 배움터에 민들레를 심고
이러한 것을 가르치는 훈장을 포공이라 하였으며
민들레의 다른 이름을 포공영이라고도 한 것입니다.
-이유미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중에서
산속은 도시보다 기온이 낮아서 꽃나무들은 꽃을 늦게 피웁니다.
마당가의 매화꽃은 아주 느리고 완만한 속도로 연한 분홍빛 봉오리를
조금씩 조금씩 열고 있고, 자두나무도 콩알보다 작은
연초록 얼굴을 내밀고 있지만,
벚나무는 꽃을 피우려면 아직 더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상사화 잎은 땅껍질을 뚫고 푸르게 솟아 오른 지 오래 되었습니다.
나는 상사화 잎을 보면서 과일 깎는 칼을 흙속으로 찔러 넣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봅니다.
저 잎이 땅을 뚫고 나올 때의 힘도 그러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사화 잎은 푸른 칼날이라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겨울을 견디면서 경직될 대로 경직된 땅껍질을 뚫고 나오는
풀잎의 힘과 단단한 나무껍질을 뚫고 나오는
어린 새순의 힘은 칼날보다 강한 데가 있습니다.
뜰에는 제비꽃 몇 송이가 피어서 다소곳하게 앉아 있고,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서 꽃밭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약초 캐는 이들이 뒤뜰과 텃밭을 가로질러 갔지만
민들레는 손을 대지 않아 방싯거리고 피어 있습니다.
민들레는 생명력이 강한 꽃입니다. 아무리 뽑아내도
그 자리에서 다시 자라납니다.
민들레가 뿌리를 워낙 깊이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민들레는 땅위에 올라와 있는 줄기의 15배까지
뻗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씨앗은 바람을 타고 100리를 날아간다고도 합니다.
민들레가 집 주위를 포위하다 시피 자라고 있는데다
여름엔 집에 습기가 찬다고 뽑아내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냥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민들레에게 무엇을 배울 것인지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유미 박사는 민들레가 아홉 가지 덕을 지닌 꽃이라고 합니다.
민들레꽃 한 송이에서도 이렇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민들레꽃 한 송이에서 이런 가르침을 발견해 내는 분들의
지혜로운 눈에 감사하게 됩니다.
이 글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 보니 민들레는
그저 생명력이 강한 꽃이 아닙니다.
환경을 탓하지 않는 용기 있는 꽃이고, 꺾여도 굴하지 않는 강한 꽃이며,
쓰임새가 많은 유용한 꽃이며, 가진 것으로 다른 많은 생명을 살려내는
덕 있는 꽃입니다.
스스로도 굳건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꽃,
화려하진 않지만 어디에 피어 있어도 아름다운 꽃,
피어 있을 때도 아름답고 지고 나서도 생명력이 사라지지 않는 꽃,
우리가 그런 민들레만큼만 아름다울 수 있다면 하고 바라면서
민들레 옆에 나란히 앉아 봄 햇살을 쬐고 있습니다.
- 도종환의 산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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