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철마중병(鐵馬重病)
말(馬)이라는 동물은 한자문화권에서는 상징적인 의미가 깊다.
12가지 동물이 등장하는 12지(支) 중에서 말은 오(午)에 해당된다.
오는 불 또는 양기(陽氣)가 가장 센 동물을 상징한다.
말띠인 데다 태어난 시도 오시(午時)이면, 대개 활동적이고 정력도 좋다.
계절적으로는 음력 5월에 해당한다.
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하루 12시간 중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한낮을 정오(正午)라고 한다.
정오는 말의 시간이다.
쥐(子)가 한밤중을 상징한다면, 말은 가장 활동이 많은 한낮의 시간대를 맡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정오를 활오시(活午時)라고 부른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도 있다.
바둑에서 쓰는 표현이다.
가만히 보면 바둑에서는 말(馬)이 들어간 표현이 많다.
'행마(行馬)'라는 표현도 그렇다.
전성기 시절 조훈현 바둑의 '행마'는 기가 막히게 빨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둑에서 말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둑을 흔히 병법(兵法)에 비유한다.
전쟁을 연구하는 병법에서 중요한 수단이 바로 말이다.
고대의 전쟁에서 말을 탄 기마병의 숫자는 전투력의 척도였다.
말은 전쟁의 성패에 있어서 인간 다음으로 중요한 동물이었던 것이다.
말은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인간으로 하여금 공간을 축소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동물이었다.
다른 동물은 인간을 태운 채로 빨리 달릴 수 없었다.
공간을 축소시킨다는 것은 시간을 축소시킨다는 의미이다.
공간과 시간을 축소시킬 수 있는 힘, 즉 스피드(speed)가 전쟁의 승패를 갈랐다.
칭기즈칸이 천하통일을 할 수 있었던 힘도 기동력, 즉 말의 스피드에서 나왔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자동차가 말을 대신하였다.
자동차는 쇠로 만든 철마(鐵馬)인 셈이다.
옛날 마구간이 지금은 주차장이다.
집집마다 철마를 보유하고 있다.
20세기 삶의 공간을 축소시킨 말은 적토마가 아니라 철마이다.
철마의 본고장은 미국이다.
철마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국력의 기반으로 삼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빅쓰리 철마'가 중병에 들었다.
미국이 내리막길에 접어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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