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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정상까지 갈 필요 있나?… 즐거운 '언저리 산행'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08. 12. 1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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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정상까지 갈 필요 있나?… 즐거운 '언저리 산행'


어쩌면 이건 "산 좀 탄다"는 분들에겐 비웃음 사기 딱 좋은 얘기일지도 모릅니다.

등산을 했다면 모름지기 땀을 주룩주룩 흘려야 맛이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아래 한 번 굽어보고는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역시 "한심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찍이 에베레스트 산을 처음 올랐던 영국인 에드먼드 힐러리도 등산을 하는 이유를 두고 "산이 거기 있어 산을 오른다"고 말했다지 않습니까.

한데요, '게으른 산행'의 저자 우종영씨는 "사람들이 믿건 말건 전국엔 지금 하루 종일 산행을 했는데도 산 중턱까지도 올라가지 않고 밑에서만 맴돌며 산행을 하는 소위 '초입산악회' 회원들이 곳곳에서 암암리에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새벽 일찍 일어나 배낭에 등산화까지 단단히 신고 산을 오르는데도 정상까지는 올라가지도 않고 올라갈 필요도 못 느끼는 산행인들이 도처에 있다는 겁니다.

'나를 부르는 숲'의 저자 빌 브라이슨이 이 소리를 무심코 들었다면 그들은 "운동화 등산객"이라고 폄하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400만명의 등산객 중엔 '리복 등산객'―차를 주차한 뒤 350m쯤 걷다가 다시 차로 돌아오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룹도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비꽜던 그가 아니던가요.

우종영씨는 그러나 "흔히들 춤 중에서도 '정중동(靜中動)'을 표현해야 하는 학춤이 가장 어렵다고 하듯 정상까지 오르지도 않으면서 하루 종일 산에서 있는다는 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자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산 중턱까지만 올라가면서도 산행을 충분히 즐기는 방법! '산 좀 탄다'는 고수들도 함부로 흉내내지 못할 이들의 게으르기 짝이 없는 '언저리 산행'의 비결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쉬엄쉬엄, 따라오세요.


▲ 정상까지 꼭 올라갈 필요가 있나.
북한산 중턱 언저리에서도 시간은 이렇게 잘만 가는 걸.
차곡차곡 쌓인 낙엽, 좋아하는 노래만 담은 MP3, 차갑고 알싸한 공기, 진홍빛 단풍….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 목 마른 당신이라면,
지금 당장 '언저리 산행인'을 자처해 봐도 좋겠다.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기자 canyou@chosun.com



■ 정상보다 언저리가 전망이 좋다

우종영씨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정상보단 언저리 중턱 지점이 더 낫다"고 말한다. 산 꼭대기에 올라서면 오히려 가려지는 아득한 봉우리나 화려한 단풍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언저리 '포인트'가 어느 산이나 있다는 말씀. 때로는 반대편 낮은 산이 더 나을 때도 있다. 가령, 태백 두위봉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은 두위봉이 아니라 두위봉 건너편에 있는 민둥산 정상. 민둥산은 차를 끌고 정상 근처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산으로 차를 세워놓고 딱 30분만 걸어가면 민둥산 정상이 나온다. 두위봉의 흘러내린 병풍 같은 능선 그림자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 생태는 언저리에서 숨쉰다

나무나 꽃에 관심이 많은 사람 역시 정상보단 언저리가 낫다. 대개 다양한 수종과 꽃은 햇빛이 많이 드는 능선 부근 중턱이나 산 언저리에 살고 있기 때문.

우종영씨는 "나무나 꽃 사진을 찍으면서 하루 종일 숲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언저리에서 다양한 생물체를 만나는 게 낫다"고 말했다.


■ 1시간에 1㎞ 이상 걷지 마라

스스로를 '초입산악회' 회원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1시간에 1㎞ 이상을 걸어가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정상을 꼭 밟으려는 욕심만 버리면 청설모, 바람 소리, 수피가 벗겨진 거제수, 열매를 가득 떨어뜨리는 신갈나무…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등반거리가 짧을수록 볼 건 더욱 많아진다"는 충고 때문이다. 언저리 산행을 처음 시작하려는 초보자라면 산행 코스도 편도 3㎞ 이상으로 잡지 않는 게 좋다.

너무 게으른 것 아니냐고? 언저리 산행이란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일어나서 어슬렁대는 산행이 아니다. 새벽밥 먹고 산에 올라서서 가급적 많은 시간을 오래도록 산에서 보내는 행위다. 생물에 관심이 전혀 없거나 목적 없는 산행을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언저리 산행이야말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치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산을 유기체처럼 온몸으로 느끼면서 천천히 걷고 대화를 나눌 때 진정한 산행이 시작된다"는 우종영씨의 말을 떠올린다면 한 번쯤 꼭 해볼 만한 산행이지 않을까 싶다.




** 언저리 산행에 챙겨가면 좋은 간식


말린 무화과|휴대하기도 간편하고 달콤하고 향긋해 산행 간식으로 안성맞춤. 갈증을 심하게 불러일으키지도 않아 더욱 좋다.

다시마|산 속에서 오래도록 걷다 보면 몸속 수분과 염분이 배출되기 마련. 이때 먹으면 좋은 음식이 다시마 또는 미역이다. 천연식품인데다 무게도 거의 나가지 않는다.





육포|짭짤한 육포도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 가을 산행 중 술 한 잔을 걸칠 때도 최고의 안주.

아몬드|오독오독 깨물어 먹다 보면 공복감도 덜어주고,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콜레스테롤이 많은 이들에게 좋은 다이어트 식품.

밀크 캐러멜|초콜릿, 캐러멜, 양갱 등은 모두 당분이 들어 있어서 배고픔과 피로감을 덜어주는 데 적절한 음식. 우종영씨는 "배터리는 완전 방전이 돼야 충전이 잘 되지만, 사람은 완전 방전이 되면 오히려 충전이 잘 안 된다"며 "배고프기 전 먹고, 지치기 전에 쉬라"고 말했다.

미니 와인|산행에선 '효율'이 높은 술일수록 좋다. 적게 먹고 빨리 취하고 또 금방 깨는 술을 찾아 마실 것. 언저리 산행가 여러 명이 이때 값싼 미니 와인을 꼽아줬다. 독일산 화이트 와인인 '블랙타워' 200mL 같은 술이 대형마트에서 한 병에 3000원꼴.

빈 필름통|꼬냑이나 위스키를 수통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마시는 산행인들이라면 꼭 챙겨야 할 필수품. 일회용 컵은 잘 젖고 찢어지고, 등산용 컵은 조금 크다.

깨끗하게 씻은 빈 필름통은 휴대용 술잔 대용으로 딱 알맞다. 반드시 잘 닦아 사용할 것.




** 정상보다 전망 좋은 곳… 30분 만에 갔다


언저리 산행가들이 꼽아준 '정상보다 나은 중턱 산행지'를 소개한다. 올라가는 시간은 길어야 1시간. 대부분은 걸어서 30~40분이면 충분한 코스다.



▲ 청계산 매봉으로 가는 길,
계곡물 위로 푸른 단풍잎이 비쳐 보인다.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붉은 단풍잎 하나가
‘화룡점정’ 처럼 계곡물에 잠겨 있다.
이 맛에‘언저리 산행’을 하는가 보다.
이 눈부신 가을 풍경의 단면이라니!
/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도봉산 '거북샘' 근처 '내 바위'

지하철 1호선 도봉산역에서 내려 도봉서원을 지나 왼쪽으로 갈 것. 용호천 계곡이 나오고 이를 지나쳐 가면 거북골 '거북샘'이 나온다. 거북샘 위 금줄이 쳐진 곳을 찾아 그 안으로 바위를 타고 3~4분 정도 올라간다. 주봉과 능선을 지나쳐 계속 걸으면 넓은 바위가 하나 나온다.

사람들이 서로 '내 바위'라고 이름 붙였다는 바위인데, 여기에 앉으면 도봉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북한산 사기막골 '숨은 벽'이 보이는 바위

'숨은 벽'은 암벽 등반을 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입소문 난 절벽. 흔히들 날렵한 '릿지화'를 신고 올라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코스라고 하는데, 어떻게 올라간담. 우종영씨는 "숨은 벽까지 올라갈 필요가 있나. 숨은 벽이 잘 보이는 다른 바위를 찾으면 되지"라며 껄껄 웃었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 역에서 704번 버스를 타고 사기막골 입구에 내린다. 북한산성 입구 송추 방향에서 '사기막길'이란 푯말이 보인다. 푯말 밑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곧 사기막 통제소가 보인다. 여기서 비포장도로로 300m 정도 더 직진하면 오른쪽 소로 근처에 넓은 바위가 있다. 이 지점에 앉으면 그야말로 숨은 벽과 서울 시내 풍광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정상이 부럽지 않은 숨은 명소다. 잘 살펴보면 우회로가 나 있어 위험한 구간은 없다. 등산로는 정비가 잘 돼 있는 편. 주말엔 줄 서서 올라가서 줄 서서 내려와야 한다는 북한산이지만, 이곳만큼은 워낙 호젓한 산행로라 인파에 시달릴 염려도 없으니 금상첨화.


청계산 '매봉' 가는 원터골 뒷길

청계산의 유명한 '매봉'으로 가는 호젓한 뒷길. 사람 많기로 소문난 원터골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대신 주차장을 왼쪽에 두고 직진, 관현사로 가는 입구로 들어서서 관현사로 가는 길을 버리고 왼쪽 샛길로 간다. '청계 주말농장'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승용차를 끌고 왔다면 그 앞 음식점 공터에 주차를 하면 된다. 이제부터 등산 시작. 청계산으로 가는 뒷길로 꾸준히 올라가면 1시간만에 매봉까지 갈 수 있다.


설악산 '등선대' 앞

설악산 한계령 휴게소까지는 자동차로도 올라갈 수 있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44번국도 오색약수터 방향으로 4㎞를 내려가면 '등선대'가 나온다. 등선대에 서면 설악산의 경치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전봉산을 둘러싼 어슴푸레한 운무도 볼 수 있다. 설악산의 풍광과 단풍을 한꺼번에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Just For You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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