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저 혼자 그냥 오지 않는다. 먼저 음식을 데리고 온다. 쑥에다가 도다리를 넣고 끓인 '쑥도다리탕'을 먹으면서 봄맛을 실감한다. 세포가 봄을 실감해야지 봄이 온 것이다.
봄은 꽃향기를 데리고 온다. 꽃향기 중에 제일은 아마도 매화 향기가 아닌가 싶다. 용연향(龍涎香), 침향(沈香), 사향(麝香)에 이어 제4의 향이 바로 매향(梅香)이다.
매향은 깊이와 격조가 있는 향이다. 코로 깊이 들이마시다 보면 뱃속 아래까지 들어가는 향이다. 그만큼 존재의 자족감을 느끼게 해준다. 꽃잎에다가 코를 바짝 갖다 대고 매향을 맡다보면 '돈 욕심'도 잠시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한 일 없이 나이만 먹어 버렸다'는 허탈감도 잠시 사라지게 한다.
매년 봄이 오면 매화를 찾아 나서는 '탐매기행'(探梅紀行)의 1번지는 순천 선암사(仙巖寺)이다. 선암사는 300~400년 된 오래된 매화들이 수십 그루나 있는 매화 사찰이다. 그래서 나는 선암사를 고매사(古梅寺)로 생각한다.
선암사는 뒷산인 조계산에서 내려오는 봉우리들도 좋다. 봉우리 3개가 차례로 내려온 지점의 아래에 절터를 잡았다. 좌측의 청룡도 좋고, 우측의 백호 줄기도 좋다. 앞산의 높이도 높지도 낮지도 않고, 문필봉도 포진해 있다.
물이 빠져 나가는 수구(水口)도 너무 벌어지지 않고, 이만하면 지기(地氣)가 쉽게 빠져 나가지 않게 생겼다. 계곡물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서출동류(西出東流)의 명당수이다. 옛날 풍수 고단자의 안목을 여실히 보여주는 절터이다.
선암사 지맥(地脈)의 중심부에 원통전(圓通殿)이 있고, 이 원통전 바로 뒤 왼쪽 편에 적어도 수령이 500년은 되어 보이는 중후한 매화가 한 그루 서있다. 국내에서 본 매화나무 가운데 가장 큰 것 같다. 어른 팔의 크기로 한 아름은 된다. 선암사에 가면 이 매화부터 본다.
뒤에서 볼 때 원통전 오른편에 또 한 그루가 있다. 약간 작지만, 나무에 이끼가 끼어 있어서 고매(古梅)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나무이다. 원통전 옆에 각황전(覺皇殿)이 있고, 이 각황전 돌담을 끼고 10여 그루 수 백년 된 매화들이 살고 있다. 이 매화나무 밑에서 매화 향기를 코로 잡아당겨서 저 아랫배까지 내려 보내면 그 효과가 적어도 한 달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