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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나고 큰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글모음(writings)/꽃과 나무

by 굴재사람 2008. 3. 2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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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나고 큰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 도종환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산수유나무가 샛노란 손을 흔들며 제일 먼저 인사한다.

모든 것이 죽은 듯이 보이던 잿빛 대지 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그들은 생명을 가진 것들은 얼마나 소중한가 얼마나 끈질기며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것을 봄마다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들여다보면
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삶의 지혜를 일깨워 준다.

모과나무잎이 가지 위에 하나씩 돋아나는 걸 보면
거기에도 일정한 순서가 있다.

오른 쪽에 잎 하나를 내면 반드시 왼 쪽에도 하나를 내고
그 가운데 또 하나를 낸다.

해뜨는 쪽으로 잎을 내면 해지는 쪽으로도 꼭 한 잎을 내곤 한다.
많은 나무들이 잎새 하나를 내는데도 정교한 질서가 있다.
그걸 잎차례라고 한다.
잎을 내는 순서 때문에 싸우지 않고 순리를 따른다.

튼실한 과일이 열리는 복숭아나무 사과나무는
나뭇가지를 하늘 쪽으로 너무 높이 올리지 않는다.

가지 하나를 키워도 굵고 튼튼하게 키운다.
흙의 향기를 잊지 않고 뿌리내린 대지를 멀리 떠나지 않는다.

하늘을 향해 너무 높이 올라가려고만 하는 나무에는
실속있는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늘로 하늘로 치솟기만 하는 가지는 허약하며
허약한 꿈의 나무는 큰 과일을 가질 수 없게 마련이란 점을
과일나무들은 알고 있다.

일찌기 신경림 시인은 ‘나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나무를 길러 본 사람만이 안다 /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 너무 잘 나고 큰 나무는 /
제 치레 하느라 오히려 /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 또는 못나고 볼품 없이 자란 나무에 /
보다 실하고 /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로 본 사람만이 안다 /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
이웃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
동무나무가 꽃피고 열매 맺는 것을 / 훼방한다는 것을 /
그래서 뽑거나 /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
사람이 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같을까마는”

사람 사는 일이 나무가 자라는 것과 꼭 같을 수는 없겠지만
너무 잘 나고 큰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데 비해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자만하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곁에 있는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 막는 나무는
뽑혀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오랜 날 같이 일하다가도 생각이 달라 갈라지면 원수가 된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을 원수보다도 더 미워한다.

그러나 나무는 그렇지 않다.
어느 정도 둥치가 굵어지면 자연스럽게 줄기가 갈라진다.

한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도 그렇고
단단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하는 박달나무도 그렇다.

햇빛을 받고자 하는 방향 때문에도 갈라지고
바람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도 갈라진다.

그러나 갈라졌다고 서로 미워하거나 해치지 않는다.
서로가 한 뿌리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무를 가까운 곳에 심어두고 사는 데도 다 이유가 있고
나무가 자꾸만 사람사는 곳으로 내려오고자 하는 데도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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