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 내린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백오십원 훔쳐 아침 해장으로 간다.
막걸리 한 잔에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냐.
근대사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렸던 고(故) 천상병의 ‘비 오는 날’이란 시다. 이 시를 생각하면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저녁때가 되어 아버지를 모셔오라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시골 장터에 나가면 아버지께서 친구 분들과 대폿집에서 술 한 잔 하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말없이 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있으면 아버지께서 “조금 마셔보렴” 하시면서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서 주셨다. 한 잔도 아니고 막걸리 반 잔과 파전 한쪽을 먹은 나는 술에 취해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끼면서 아버지를 모셔오라는 어머니 엄명을 잊어버리고 “헤헤”거리며 웃곤 했다.
이처럼 나에게 있어 ‘술’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술은 나에게 있어 추억을 연결하는 고리며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끈이다. 그래서 본의(本意)로 항상 ‘술 예찬’을 하게 된다.
10세기경 중국 북송 때의 문인 구양수(歐陽修)의 ‘酒逢知己千杯小 話不投機半句多(주봉지기천배소 화불투기반구다)’는 시가 있다. “술은 좋은 친구와 만나면 1,000잔으로도 부족하고, 말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반 마디도 많다”라는 뜻이다. 술과 말은 좋은 사람과 나누라는 의미일 것이다.
술이 이렇듯 좋은 사람을 만나는 매개체 역할도 하지만, 현실을 잠시 잊고 싶은 사람들의 비상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제시대 소설가 현진건(1900~1943년)은 그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라는 말로 소설을 마무리했다. 소설의 내용 속에서 사람들은 술을 통해 잠시 현실을 잊고 해방감을 맛보는 비상구로 여긴 것이다.
술은 화학적 구조로 볼 때 매우 간단한 물질이다. 탄소 2개, 수소 6개, 산소 1개로 돼 있다. 그런데 이 술을 마시는 순간 대뇌의 판단기준이 느려지고, 중추신경의 억제기능도 무너져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이규보는 ‘국선생전(麴先生傳)’에서 “우울하던 임금도 성(聖·청주)이 들어와 뵈면 비로소 크게 웃었다”고 적었고, 이태백은 “석 잔이면 도에 통하고, 한 말이면 자연에 합한다(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며 극찬했다.
이렇듯 술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물건이다. 하지만 넘치면 치욕스런 기억을 만들기도 한다. 주도(酒道)의 명인으로 불리던 공초 오상순(吳相淳·1894~1963) 시인은 당대의 문인 3명과 함께 술을 마시다 거나하게 취해서 거시기(?)를 다 드러내놓은 채 대낮에 소를 타고 명륜동 거리를 광가난무(狂歌亂舞)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술은 흥이 넘치는 물건이다. 일찍이 시인 조지훈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인정을 마시고, 술에 취하는 게 아니라 흥에 취한다”고 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음주가무(飮酒歌舞)의 민족이다. 그러한 민족이 어찌 술을 멀리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술에 취하지 않았으면 한다. 취하지 않고 술을 즐기면 흥도 알고, 사랑도 얻고, 사람과 돈도 얻게 되리라. 인생이 뭐 별게 있겠는가?
- 플젠 김양호 대표
매일경제 2014.06.24 1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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