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요리에서 술의 역사는 어림잡아도 4천년. 장구한 세월에 걸쳐
무르익은 빛깔과 향기는 깊고 그윽한 울림으로 남는다. 짜릿하고 따끈한 기운이 목젖을 타고 흐르면, 이제 중국 술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국에는 4천 5백 여 종의 술이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에 따라 꼽는 것이 조금 다르지만 명주(名酒)로 이름 붙여진 술들을
알아보고, 또 명주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오래전부터 사랑을 받아온 서민주(庶民酒)인 공부가주(孔府家酒)와 이과두주(二鍋頭酒)도 포함시켜
이야기해본다.
중국의
명주들
오량액(五粮液)
오량액의 역사는 당대(唐代)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천성
의빈시(宜賓市)에서 생산되는 것을 제일로 친다. 주액이 순정 투명하고 향기가 오래간다. 65% 알코올 함량에도 불구하고 맛이 부드러우며
감미롭다. 진품 오량액은 병뚜껑 봉인 종이에 새겨진 국화문양으로 알아본다.
죽엽청주(竹葉靑酒)
분주(汾酒)에 열
가지 한약재를 넣어 담근 명주다. 약재가 우러나 황록색을 띠며 분주 맛은 옅어지고 약재 향이 감돈다. 양조 명인들이 공산정권 수립 당시 대거
대만으로 이주해 중국 본토산보다 대만산을 더 높이 친다.
백년고독(百年孤獨)
강한 중국인의 소화력으로 중국 술이 되어버린 일본 술. 이름만큼이나 깊고 그윽한 맛은 다양한 계층과 기호를
만족시켜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알코올 농도 38%의 비교적 순한 백주.
오가피주(五加皮酒)
고량주에 오가피, 당귀 등 20여 가지의 천연생약을 배합하여 오랜 기간 숙성시켜 만든 약미주. 맑은 적갈색을
띠고있으며 오가피와 한약재가 어우러져 맛과 향이 독특하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있는 술.
장수장락주(長壽長樂酒)
등소평이
애용하던 보약주. 한국의 모 재벌기업 회장이 5천만달러를 제시하며 비법을 사려했으나 거절당해 더 유명해진 중국 귀주성의 약주다. 녹용,
동충하초, 대항정 등이 주요 성분이며 비타민이 다량 함유되었고, 약리, 병리실험을 거쳐 독성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 증명된
보주.
주귀주(酒鬼酒)
1970년대 중국
호남성 마왕퇴에서 2천여 년 전 서한나라 옛 무덤을 발굴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술이다. 당시 1천여 점 진기 유물과 함께 출토된 고대 양조처방에
따라 현대인들이 탄생시킨 술. 몸을 보양하는 중국 전통 최고급 명주.
이과두주(二鍋頭酒)
두 번 고아
걸렀다고 하여 이과두주라 부른다. 중국인들은 이 술맛에서 고향을 느낀다고 할 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있다. 보통 유리병에 담아 저렴하게
판매되는 것은 1~2년 숙성시킨 것. 오래 숙성시킬수록 깊고 그윽한 맛으로 탄생한다.
소흥가반주(紹興加飯酒)
중국에서도 술 산지로 유명한
절강성, 소흥현의 지명에 따라 명명된 것으로 8대 명주의 하나이다. 황색 또는 암홍색의 황주로 4천년 역사를 자랑한다. 오래 숙성할수록 향기가
좋다. 14~16% 정도의 저 알코올 술. 사진은 항주의 명주인 금곡가반주.
귀주마오타이주(貴州茅台酒)
백주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술. 주은래가 이 술의 품질관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닉슨 대통령이 반했으며 북한의 김일성이 응접실에 비치했다는 명주. 무려
8차례의 반복 증류와 3년의 저장을 거쳐 출고된다. 스카치위스키, 코냑과 함께 세계 3대 명주로 꼽힌다.
수정방(水井坊)
쓰촨성(四川省)에서 생산되는 6백 년 전통의 수정방은 원나라 이후
명맥이 끊겼다가 1998년 양조장 유적이 발굴되면서 옛 방식 그대로 다시 양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3년 샌프란시스코 세계 증류주대회에서
수상했고, 알코올 도수는 38~52도 까지 있다고 한다. 색깔은 수정같이 투명하고 그윽하며 강한 향이 일품이고, 맛은 순하고 부드러우며 높은
격조를 품고 있다고 한다.
공부가주(孔府家酒)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에서 생산되는 술로 2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일찍이 명나라 때부터 제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공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쓰였으나 곡부를 방문하는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늘어나면서 연회용 술로 사용되며 유명해졌다. 1984년 곡부주창(曲阜酒廠)은 공부가(孔府家)의
양조기술을 발굴하여 현대양조 과학기술과 결합, 지금의 술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공부가주는 시장에 나온 후 호평을 받았으며 가격이 저렴하여
외국으로 가장 많이 팔려나가는 백주의 하나로 손꼽힌다.
중국 술 알고 마시기
“술이 없으면 자리를 마련했다고 할 수 없다”는 중국
속담이 있을 만큼, 술은 중국 식문화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제사, 명절, 손님접대, 축하연회 등의 자리에 술이 빠지는 법이 없다. 장구한
술의 역사 속에 흐르고 있는 중국의 주도 가운데 우리 것과 다른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1. 중국요리에 꼭 올라오는 생선요리는
자리한 손님 중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 쪽으로 머리가 향하게 놓는다. 이때 상석에 앉은 손님은 ‘어두주(語頭酒)’라 하여 먼저 한 잔을 비워야
한다.
2. 식사가 시작되면 주인이 손님들에게 돌아가면서 술을 권하는데 보통 첫 잔은 건배(乾杯; 잔을 완전히 비운다)한다. 또
상대방의 술잔에 술이 얼마가 남았든 첨잔하는 것이 예의다. 상대방이 술을 따라줄 때 연거푸 절해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하지만 검지와 중지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3. 술 마실 때 부지런히 권하고, 혼자 잔을 들어 마시고 내려놓는 법이 없지만
술잔을 돌려가며 바꾸어 마시지는 않는다.
4. 술을 못하는 경우에는 음료수 잔을 들어 상대방에게 술을 권해도 실례가 아니다.
상대방이 술잔을 들어 자신에게 권했을 경우에도 음료수를 마시는 것으로 화답을 해도 무방하다.
5. 주의해야 할 말은 건배(乾杯).
중국에서 건배는 말 그대로 잔을 비우라는 뜻. 건배를 외치고 난 후 잔을 비우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십시다’ 라는 뜻으로는 수의(隨意:쑤이이)라는 말이 있다.
술이 맛있어지는 이야기
1. 중국에는 인구 수만큼 많은 술잔이 있다. 수천
가지 술 중에서 자신의 술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술잔 역시 자기에게 어울리는 것,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 마신다. ‘이 술에는 이 잔’이라는
공식 대신에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가 중국 술과 술잔의 궁합을 따지는 이치이다.
2. 이틀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나눠
먹는 만한전석(滿漢全席). 만한전석이 문헌에 등장한 것은 청나라 황제 건륭제가 강남 지방으로 행차했을 때다. 기록에 따르면 이틀에 걸쳐 다섯
차례로 나눠 먹었는데 처음부터 세 번째까지는 푸짐한 요리가 열 가지 나오고, 이어 국과 밥 종류가 나온다. 네 번째는 요리 종류가 스무 가지로
늘어나고 만두와 냄비 요리까지 곁들여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술안주 스무 가지, 간식류 스무 가지, 건과류와 과일류가 각각 열 가지씩 상에
오른다. 중요한 것은 요리의 종류. 돼지 통구이, 곰 발바닥, 사슴 코, 호랑이 고환, 상어 지느러미, 전복, 제비집 등 산해진미로 구성된다.
양과 종류가 엄청난 만한전석의 전 과정에 참석하려면 술의 힘은 필요충분조건.
3. 1천가지가 넘는 중국 요리 중 술잔을 기울이는
횟수만큼 젓가락이 부지런히 오가는 것은 땅콩접시. 술상의 감초, 말린 땅콩을 하룻밤 물에 불렸다가 씻어서 팔각, 파, 생강, 소금을 넣고 푹
삶아 익힌다.
중국인의
주법(酒法)
중국사람들의 주법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그들의 술에 대한 관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 자기잔을 남에게 권하지 않는다.
우리는 경주의 포석정(鮑石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잔을
주고 받는 문화권에 속한다. 잔에 서로 입을 대고 마심으로서 상하 또는 동료간에 일심 동체감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중국은 자기 잔은 자기 앞에 두고 상대방과는 잔을 마주 부딪치므로써 일체감을 느끼는 문화권에 속한다. 대부분의 민족이 여기에 속하지만 유독
우리는 비위생적이라 할 수 있는 주고 받기 문화권에 속하였다. 누가 나은 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찌개에 이 사람 저 사람의 숟가락을
함께 담가 퍼 먹는다던가 잔을 여기 저기로 돌리면서 입을 맛대는 것은 끈질긴 우리 음식문화의 전통일 뿐이다.
둘째, 조금만
비워도 채운다.
우리는 완전히 비우지 않은 상대방의 잔에 술을 채우지 않는 것이 관례다. 혹시 남은 잔에 채우면 첨잔이라하여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첨잔이나 퇴줏잔은 그다지 좋은 감정으로 받아 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술이 약한 사람들이 간혹 술을 바닥에 남긴 채로
술을 받는 수가 있으나 혹시라도 들키면 한마디쯤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다르다. 잔을 들어 조금이라도 마시면
잽싸게 마신 만큼 채우고 만다. 이것을 소홀히 하면 관심이 없는 것으로 오해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므로 더 마실 생각이 없으면 잔에 술이
가득 찬 채로 대화만 즐기면 된다.
셋째, 새 요리가 나오면 술을 마신다.
우리는 새 요리가 나오는 것과 술
마시는 것에 별다른 관계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새 요리가 나오면 반드시 신차이라이(新菜來)!, 즉 새로운 요리가 나왔네요! 하면서
술잔을 부딛히며 마신다. 이것은 음식을 먹기 전에 입맛을 돋우는 효과를 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새 요리에 대한 감사의 뜻도 있는 것 같다.
넷째, 과음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음식점에서 과음을 하는 경우가 많다. 2차에도 가기 전에 이미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과정에 벌써 취하곤 한다. 2, 3차에서 술이 취하는 것은 별도로 하고 말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동북지방의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지나치게 과음을 하지 않는다.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취한다는 것이 그들의 기본 생각이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도 강제로 권하지 않고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껏 마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술주정뱅이도 적을 수 밖에 없다.
서울의
도심지 음식점이나 유흥가 곳곳에서는 술에 취해 고래 고래 소리지르거나 방뇨하고, 주위 사람들과 시비를 거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추태는 그들 중국인들에게는 구경꺼리가 될 뿐만 아니라, 흉이 되고 있다.
다섯째, “깐뻬이(乾杯)!”하면,
정말로 건배한다.
우리는 술자리에서 흥이 나면 자주 건배를 외친다. 기분이 내키면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건성으로 건배를 외쳤을 뿐, 그들의 술잔을 살펴보면 그저 조금 비웠을 뿐이다. 우리에게 있어 건배라는 말은
영어로 이야기하면 Cheers!에 해당할 뿐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깐뻬이(乾杯)!하면 반드시 잔을 비운다. 왜냐하면 잔을
비우자(乾杯)고 하였으니 잔을 비우는 것이다. 북부로 가면 잔을 머리위에 거꾸로 세워 턴 다음 잔을 비웠음을 보여 주기까지 한다.
요즈음은 때로 우리처럼 건성으로 깐뻬이를 외치기도 하지만, 원래의 의미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원탁에 둘러 앉아 상호간의
거리가 있을 경우는 탁자에 잔을 톡톡 부딪히면서 깐뻬이하기도 하는데, 이는 앉은 채로 한 자리의 참석 인원 모두가 같이 건배할 수 있어 편리한
점도 있다.
물론 중국인이라고 우리와 전혀 다른 인간은 아니다. 술은 좋은 친구와 만나면 천잔으로도 부족하고 말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반마디도 많다(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고 생각하는 그들이다. 그러므로 기분이 맞으면 술배는 따로 있다(酒有別腸)고 하며
권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술을 마시면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酒後吐眞言)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웬만하면 자신의
주량을 생각하여 스스로 절제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 일반적인 중국인들의 음주법이기 때문에 그들과의 술자리에서 너무 우리식의 주법을 강요하여
어색한 분위기로 만들 필요는 없겠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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